프리는 처음이라서요
프리랜서는 직장인보다
두 배는 부지런해야 해요.
자기 먹잇감은 자기가 찾아 나서야죠.
얼마 전 프리로 잘 나가는 S의 말이 비수처럼 콕 박혔다. 아니 누가 모르나. 프리랜서가 아닌 사람도 다 안다. 어젯밤은 분명 일찍 일어나겠다고 굳게 결심했는데, 다음날 아침이면 침대와 한 몸이 되고 싶다. 잠깐만 눕자, 30분만. 그러고 보면 열두 시. 당황스럽다. 남들 출근해서 밥 먹을 동안 난 잠만 잔 거야?
늑장 부리는 일상과 마감에 닥친 일상을 뒤섞여 보냈다. 그렇게 프리를 선언한 지 9개월. 게으른 나날들이 떠오르면서 죄책감도 밀려왔지만, 하나둘 되짚어보니 재미난 일들도 많아 그 기억을 잊지 않고 싶어서 기록해둔다. 9개월 동안 초짜 프리랜서가 좌충우돌하며 경험한 이야기 모음.
퇴사를 한 날부터 지금까지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다. 미팅, 회식 같은 공적인 모임부터 개인 약속까지 급격히 줄었다. 이는 불필요한 자극을 걸러내는 필터가 되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극이 물밀듯이 몰려오니까. 그런 날에는 몸이 녹초가 돼서 돌아왔다. 프리랜서는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하루의 통제권이 온전히 나한테 달려 있는 게 아닌가! 2~3주 동안 처음 맛보는 자유가 꿀같이 달았다.
한 달이 지나니 이렇게 적막할 수가 없다. 나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게 이리 어색했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괜히 유튜브라도 틀어둔다. 사람과 부대끼는 게 이래서 필요한가 보다. 프리랜서는 좋은 자극을 직접 찾고 맛봐야 했다. 실력 있는 사람부터 인사이트까지 모두. 고민하다 나와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커뮤니티를 찾았다. 생존을 위해 매일 두 시간씩 공부하는 뉴러너클럽.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배우고 대화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다. 일상을 바꾸는 노하우를 배우고 그에 따른 변화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어서 더 재밌다. 콘텐츠 업계에서만 놀다 보면 내가 아는 세계가 전부인 듯한데, 영업, 커머스, 병원, 연기, 채용 등 다양한 업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경도 점차 확장된다.
하루를 관리하는 게 이리 어려운 건 줄 몰랐다. 그중 제일 어려운 건 일찍 일어나는 것. 눈뜨자마자 이불을 걷어차는 건 매일의 과제다. 과제가 하나 더 있다. 일하는 시간, 쉬는 시간, 밥 먹는 시간도 모두 내가 컨트롤해야 했다. ‘영상 하나만 볼까?’하는 늪에 빠지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난다. 하루에 쓸 에너지와 컨디션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게 프리의 임무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생활 습관부터 싹 바꾸는 중이다. 올빼미형에다 운동하기 싫어하는 인간이지만, 뉴러너 멤버들의 생생한 후기를 듣기 때문. 그 말에 솔깃해 일과 중 명상을 하거나 산책한다.(최근에는 느림보 러닝도 시작!) 꽉 붙잡고 있는 생각을 흘려보내주는 게 명상과 달리기라는 걸 알고 할 수 있는 선에서 해본다. 비 오는 날, 러닝하면 기분이 두 배로 짜릿하다. 시도해본 사람만 아는 쾌감이 있다.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고, 단순한 원리를 무시한 채 어떻게든 일만 어리석게 하려고 했다. 마음과 몸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안 후부터 하루의 밀도가 달라졌다.
퇴사를 하고 나서 6개월 동안 포폴을 정리하지 않았다. 알음알음 들어오는 일감만 받는 소극적인 형태로 일한 프리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콘텐츠 종사자와 인사를 나눴고 직접 연락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포폴이 없다면? 나를 알리는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는 꼴 아닌가. 부푼 마음으로 자료를 긁어모아 포트폴리오를 재빨리 만들어 컨택했지만 기대했던 제안은 결국 오지 않았다. 다만, 내가 하는 일을 어떻게든 말할 필요성을 느껴 이후에도 SNS에 관련 해시태그로 글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프리랜서에디터 #에디터일기)
그로부터 한 달 뒤, 외주 연락이 왔다. SNS에 관련 게시물에 많이 보였다며. 지인 기반으로 일하는 프리 에디터 업계라, 생각보다 관련 해시태그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초보 프리에게는 블루오션 아닌가! 앞으로도 더 많이 사용하는 걸로. 덕분에 외주사와 재밌는 프로젝트로 함께 하고 있다. 내 이야기로 제안을 받는다는 건 무엇보다 신난다. 나라는 사람이 잘 걸어 나가고 있다는 게 증명되는 셈이니까. 앞으로도 날실과 씨실을 잘 꿰어 나만의 내러티브를 잘 짜 보기로 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자꾸 꺼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노필터룸을 지속한 지 벌써 넉 달째다. 정제된 기록보다는 날 것의 생각을 남기고 싶어 기록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질타보다는 무엇을 써도 안전한 지대가 너무 필요했다. 이 작고 귀여운 모임에 여섯 명의 멤버들이 함께한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분들의 민낯을 마주하다니. 낯선 사람이 건네는 안부와 응원이 힘이 되기도 한다.
공개 계정에 글을 남길 땐 잘 써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업로드 창을 닫곤 했다. 노필터룸을 시작한 뒤로는 말하고 싶은 게 이리 많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 (벌써 94개의 글이 축적됐다) 앞으로도 내가 남기는 글이, 타인의 시선에서 더 자유로워지기를!
프리랜서는 결국 시간이 전부예요.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판이 달라져요.
한 주 내내 회사 일만 하면
직장인이랑 비슷한 거 아니에요?
동료와 대화를 나누다 현타를 세게 맞았다. 맞다. 나는 시간이 전부인 사람인데. 외주만으로 일주일을 꽉 채우니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흐릿해졌다. 한 해 자유롭게 일하는 기간 동안 내가 과연 하고 싶은 건 무엇일지 고민했다. 일(work)과 삶(life), 창작자(creator)의 영역으로 크게 나눠 정리했고 매달 업데이트를 해보려고 한다. 올 한 해는 매 순간 몰입하고 생각한 대로 뻗어 나가야지. 묵은 감정과 기억은 훨훨 보내주고 나의 가능성을 믿어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