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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린 May 02. 2022

아이 마음에 숨을 쉬게 하자

경남공감 5월호_

식물을 좋아한다. 이사를 온 뒤 새 식물을 집안으로 들였다. 이름은 ‘마리안느’, 열대 아프리카에서 온 식물이었다. 초록의 넓은 잎에 연두색 무늬가 매력적이었다. 흙이 마를 때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줬다. 행여 햇빛이 부족해 잘 자라지 못할까. 햇살이 좋은 날은 창문을 활짝 열어 광합성을 듬뿍 할 수 있게 했다. 마리안느가 있는 방을 오갈 때마다 꼼꼼히 잎의 상태를 살폈다. 영양제를 사, 물에 섞어서 뿌려주기도 했다.

눈길 한 번, 마음 한 번을 주며 마리안느를 키우던 어느 날, 잎이 누렇게 변하더니 잎이 마르기 시작했다. 봄꽃을 사러 집 근처 꽃집에 갔다. 꽃집 주인에게 마리안느를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꽃을 포장하는 주인에게 말했다.


“도대체 왜 이럴까요. 적당히 물도 주고 해도 잘 드는 곳에 뒀는데.”

“흙이 완전히 마르면 물을 주세요. 물과 영양이 너무 과해도 잎이 노랗게 변할 수 있어요.”


나의 과한 애정이 원인이었다. 화분의 겉흙이 조금만 말라도 물이 부족한가 싶어, 마시던 물을 마리안느에게 나눠줬다. 마리안느의 상태를 지레짐작한 내 마음이 문제였다.


“선생님, 쌀이 우주로 여행을 가서, 블랙홀에 빠졌어요. 그게 결말이에요.”


지난해부터 ㈔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의 문화예술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한 달에 한 번, 초등학생 3,4학년을 만나 경남지역의 작은도서관에서 글짓기 수업을 해왔다. 매번 사서들은 글짓기 수업에 참여하는 참여자가 없을까 봐 발을 동동거렸다. 책보다는 영상을 좋아하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책이 멀어지자, 글 짓는 시간도 자연히 사라졌다. 아이들에게 글짓기는 어렵고, 막막한 활동이었다. 부모들은 이런 아이 마음을 알아챈 듯, 나의 글짓기 수업에 참여자가 적었다. 작은도서관 사서들은 강사인 나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부모에게 전화를 돌렸다.


“우리 애가 글짓기 하는 건 힘들어해요.”, “글짓기 수업은 좀….”, “애들이 글짓기를 지루해하지 않을까요?”

사서의 전화에 부모들은 대답했다. 부모들의 걱정은 기우였다. 글짓기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은 눈을 반짝였다. 그림책 속 등장한 주인공을 10명의 아이가 달리기 계주하듯 자신의 상상을 이어 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주인공은 쌀, 쌀은 아이들이 원하는 장소로 여행을 다녔다. 도넛 가게, 에펠탑, 우주로 떠났다. 쌀의 여행은 종착지는 아이의 뱃속이었다가, 화장실 변기가 되기도 했다.

수업 시간 120분은 금세 지났고, 수업의 끝을 알리자 아이들은 “글짓기 달리기 정말 재미있었어요. 이렇게 재미있는 수업이었으면 더 일찍 올 걸 그랬어요” 하며 아쉬워했다. 강사인 나에게 최고의 칭찬이었다. 내게 인사하며 떠는 아이들을 보며, 노랗게 잎이 변해버렸던 마리안느가 떠올랐다. 아이들이 상상력과 모험심의 불씨를 꺼버린 건, 아이들의 마음을 지레짐작한 어른들이 아닐까?


 ‘사람이 숨을 쉬는 것은 코로 하지만 마음의 숨은 표현으로 쉰다. 표현의 길이 막혔을 때 아이들은 병들거나 죽게 되고, 표현을 비뚤어진 모양으로 하거나 거짓으로 하게 할 때 아이들의 생명은 시들어 버린다. -이오덕의 글쓰기’


‘하지 마’, ‘위험해’, ‘그만해.’ 아이가 어른에게 가장 자주 듣는 잔소리다. 글짓기 시간만큼은 누구도 아이의 상상에 ‘하지 마’, ‘위험해’, ‘그만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글짓기 속에서 아이는 쌀이 되어 우주로 여행 갔고, 블랙홀에 빠져 사라지기도 했다. 그 시간만큼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아이는 연필을 쥐고 종이에 글 쓰며, 마음의 숨을 쉬었다.


마리안느는 물을 적게 주고, 햇볕을 자주 쐬어줬더니 가지 틈 사이로 새잎을 틔웠다. 동그랗게 말린 새잎을 보며 나는 미소 지었다. 나는 아이들도 상상력의 새잎이 돋아나는 시간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아이들이 글 속에서 웃고 숨 쉴 수 있도록 해주는 건 어른들의 몫이다.


*위 글은 월간지 <경남공감> 5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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