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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린 May 26. 2022

명도가 짙던 어느 날, 아침

하늘이 렷했다. 하늘과 파랑 사이쯤 되는 색이 진하게 다가오는 아침이었다.
오니와 손을 잡고, 등원 버스를 타러 가는 길.
새끼 까치가 죽어 화단에 있었다. 눈을 감은 까치 몸을 파리가 윙윙 날아다니며, 파고들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종교는 불교가 아니지만, 불교를 좋아한다. 죽음을 맞이한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말이었다. 새끼 까치를 보고, 습관처럼 지장보살을 중얼중얼 왰다.

“엄마 지장보살이 뭐야?”
“음, 그냥 마법사가 마법 부릴 때 말하는 마법 주문 같은 거야. 지장보살은 죽은 다음에 죽은 이들이 좋은 곳으로 가라고 해주는 신이야.”
“신이 뭔데?”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 있는 존재?”
“신은 선생님보다 더 큰 사람이야?”
“글쎄, 엄마도 신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그럼 선생님은 엄마, 아빠보다 더 큰 사람이야?”
“엄마, 아빠, 선생님은 다 같은 사람이야. 단지 각자 잘하는 일이 다를 뿐이야. 아빠는 배에 엔진 만드는 거 잘하고, 엄마는 글 쓰는 걸 잘해, 선생님은 오니같은 어린이를 잘 보살펴주고, 좋은 것, 나쁜 것을 잘 알려주는 걸 잘해.”
“아, 그렇구나. 나는 종이 접기를 잘하고, 유니는 달리기를 잘해.”
“맞아, 잘할 수 있는 걸 조금씩 하다 보면 진짜 잘할 수도 있어.”
오니는 “응”하고 짧게 답한 뒤, 뛰었다.

죽은 새끼 까치, 지장보살로 시작한 대화는 잘하는 어떤 것으로 끝이 났다. 짧은 대화 속 아이의 질문은 손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젤리 같았다. 질문은 말랑말랑하고, 투명했다.  아이에게 내놨던 대답이 되레 내게 질문 던졌다.


‘잘하는 걸 조금씩 하다 보면 잘할 수 있을까?’,

‘잘하는 걸 스스로 만족스럽게 잘했다고 할 수 있는 날은 오긴 할까?’


질문을 잡고 있다가 답을 찾지 못하고, 나는 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명도가 높은 하늘에 눈이 시려,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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