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의 물방울과 그 이후 @2014
지난 포스팅-종과 횡의 법칙(2)에서는 '종과 횡의 법칙'을 Personal Computer라는 기술 물방울의 역사와 엮어서 예시로 설명했었다. 다음으로 WWW과 Mobile의 기술 물방울을 다뤄보고자 하는데, 아마 Personal Computer의 예시에서 '종과 횡의 법칙'이 어떤 구조인지 충분히 이해되셨을 것 같아, 그 정도 상세함으로 다루지 않고(그러면 지루할 듯), 조금 더 간결하게 설명해보고자 한다.
WWW의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WWW를 언급함에 있어서 이 분 얼굴 한번 안 보고 넘어갈 수가 없다. 모두들 한 번은 들어보셨을 'Tim Berners-Lee'
1980년대 CERN(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이 분은 정보를 관리하고 검색하는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이분의 연구를 기반으로 Hypertext, 지금은 기본 중의 기본 HTML, WWW, HTTP, URL 등이 만들어졌다. 이러다 보니 WWW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게다가 이렇게 고안한 기술들을 특허도 내지 않고 WWW의 발전을 위해서 무료로 풀어버린다. 그러니 Sir. 가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온다.
WWW가 뭐냐?라고 생각하면 HTML(문서들끼리 정보에 따라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언어)로 작성된 문서들이 서로 거미줄(Web)처럼 연결되어 있는 공간이라고 정의하면 될 것 같다. 이런 공간을 탐색하고 문서를 읽는 창이 웹브라우저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데, 이 공간이 워낙 방대하고 문서가 많다 보니 그것을 찾아다니기 위한 길라잡이가 google, yahoo와 같은 검색 엔진의 시작이다.
1990년에 WWW는 이미 제안되고 시작되었지만, 일반인들이 WWW를 서핑하기 위해 필요한 통신 인프라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몇 년 더 걸리다 보니, 실제 일반인들에게 'WWW = 인터넷을 한다'라고 동일시하기 시작한 90년대 중후반이 WWW의 물방울이 종에서 횡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아마 여러분들이 집에서 01410으로 전화 걸어 몇 시간 동안 집전화를 통화 중 상태로 만들어 부모님께 욕먹던 시절에서, 우리 집 인터넷 깔았다며 좋아하기 시작한 시절로 넘어갈 때가 그때쯤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결국 위 시점 전(1994~2000년 정도?)이 '종'의 구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는 WWW가 일반화되기 이전으로, 따라서 세상의 어떤 Problem을 풀어내는 기회보다는 이 기술 자체가 조금 더 완성도 있게 발전하고, 횡의 구간으로 원활하게 접어들 수 있게 하는 기술과 사업들이 더 관심받는 시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할 수 있을 의미 있는 투자로 해외에서는 아래 같은 회사들을 생각해볼 수 있고. (훨씬 더 많겠지만 일단 생각나는 대로..)
Macromedia (웹페이지 저작 툴 드림위버, 멀티미디어를 위한 플래시 - 2005년에 Adobe가 인수)
Netscape (대표적인 웹브라우저. MS 익스플로러에 차츰 자리를 내주었지만.. - 1999년 AOL이 인수. 창업자 마크 안드레센과 멤버 벤 호로비츠는 그 유명한 VC인 안드레센 호로비츠를 설립함)
Sun Microsystems (워크스테이션. 닷컴 붐에 힘입어서 엄청난 판매를 하며 성장했었음 - 2009년 오라클 인수. 비노드 코슬라는 그 유명한 코슬라벤처스를 설립함)
몇 해 정도 시차가 존재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사하게 아래 같은 회사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나모인터랙티브 (웹페이지 저작 툴 - 2000년 코스닥 상장)
하이홈 류 - 개인 홈페이지를 쉽게 템플릿 형태로부터 제작하는 것만으로 서비스 성장 (싸이월드도 개인들의 이런 니즈를 일부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음)
기업 홈페이지 제작 상장사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데,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는 사업만으로도 상장을..)
이후 H/W와 인프라적인 측면으로는 전용선이 집집마다 보급되기 시작하며 종-횡의 전환을 가속화시켰다고 보인다. 또한 S/W, 서비스적으로는 위의 수많은 기술/서비스를 통해 WWW의 세계가 무서운 속도로 팽창함에 따라, 이 세계를 쉽고 빠르게 탐색하고 다닐 수 있는 '검색 엔진'이 또한 종-횡의 전환을 견인했다.
그 이후에, WWW(인터넷)의 대표 서비스 카테고리인 4C (Communication - e-mail/Instant messenger, Community - Facebook, Contents, Commerce - Amazon)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 생활 속으로 너무나 깊이 들어와 있기에 추가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만 기억할 것은, 지금은 없으면 살 수 없는 이런 대중화된 인터넷 서비스들도 횡의 구간이 시작되며 세상의 불편함을 인터넷을 통해 풀어보고자 하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Mobile의 시대
Mobile의 시대는 이미 여러분들의 기억과 현실 속에 모두 생생히 존재하는 것들이다 보니, 간단히 아래 사진으로 갈음해보고자 한다.
이 시점이 Mobile의 물방울에 있어서는 종과 횡의 전환이 일어나는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해도 모두 거부감이 없으실 것이라 믿는다. 이 시기 전에는 이동통신사의 종속적 사업 환경 속에서 세상의 문제를 'Mobile'로 풀어내는 시도가 다채롭게 발생하기 어려웠고, 또한 H/W(A.K.A. 피쳐폰)도 이를 뒷받침해 주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폰의 출시/확산과 함께 Mobile 기기가 전화를 위한 수단에서 다양한 기능(특히 WWW를 웬만큼 편리하게 사용 가능. 또한 전용 앱을 누구든 만들어서 스토어를 통해 배포 가능)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충격적인 변화였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디씨갤의 포스팅과 댓글이 있었는데, 댓글의 수위 상 링크만 걸어봄.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superidea&no=216684)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고, 처음에는 기존의 PC 환경 상의 WWW 서비스들이 그대로 표시되는 것에서 출발하거나, 또는 간단한 퍼즐 게임류나 유틸리티 성 앱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Mobile에서라면 Mobile만의 특성(개인화, 이동성, 실시간 등)이 잘 반영된 서비스들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는 똑똑한 분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분들이 2010년대 초반쯤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나오셔서 창업을 하셨던 것 같다. 참고로, 카카오벤처스(당시 케이큐브벤처스)도 2012년에 만들어져서 이러한 인재 팀에 '사람만 보고 투자한다'는 철학으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투자를 집행했었다 (1주일에 1건?)
용두사미 같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Personal Computer, WWW, Mobile 3개의 물방울들을 종과 횡의 법칙의 방식으로 함께 표현해보면 아래와 같다. (드디어 서론이 끝났습니다!)
새로운 물방울에 대한 갈망
위의 3개 물방울들로 인해 인류의 삶이 엄청나게 편리해진 점은 너무나 감사하고 뜻깊은 일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몇 가지 문제들이 고민되기 시작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그다음 물방울이 절실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또한, 그 물방울이 종의 구간을 지나는 기간 동안 유의미한 기술을 R&D하고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는 것이 나의 일이기도 했고.
첫 번째 문제는, '정보의 폭증과 소비 환경의 부조화'이다.
사용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기의 화면은 PC에서 Mobile로 변화하며 점점 작아지고, 인터페이스 또한 키보드와 마우스의 편리함에서 화면 상의 터치와 키보드를 사용하는 것으로 제한되어 가는데, 그런 환경 속에서 소비해야 하는 정보의 양은 무섭게 증가하고 있었다. 아래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이 구글이 인덱싱 한 문서의 수를 당시에 살펴봤을 때, 2008년에서 2014년까지 6년 만에 10배가 증가했다. PC 화면보다 훨씬 작은 해상도의 스마트폰으로 같은 검색 결과를 확인하는 것도 버거울 텐데 오히려 확인해야 할 정보의 양은 10배나 늘어난 것이다. 만약, 스마트폰을 넘어서 그다음으로 스마트워치 류로 진화한다거나 음성만으로 인터페이스를 가져가야 할 수도 있는 AR 무엇인가로까지 진화한다면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검색어 추상화 과정에서의 정보 손실'이다.
사람은 여러 가지 감각을 통해서 또는 어떤 생각에 꼬리를 무는 과정에서 궁금한 점들이 떠오르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느낀 그대로, 생각한 그대로 검색 엔진에 입력할 수 있는 수단은 당시에 없었다. 예를 들어 휙 지나가는 빨간 스포츠카를 보고 차량 이름이 궁금해서 검색을 하려고 한다면, 개구리 모양/문 2개/동그란 헤드라이트 등등 특징들을 기억해내고 이것을 검색 창에 어떤 텍스트로 입력하면 좋을지 추상화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당연히 이 과정은 비효율적이고, 정보 손실 또한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새로운 기술 물방울이 나타나고, 그것이 종의 구간을 거치며 성숙되며,
첫 번째 문제 상황의 작은 디스플레이/제한된 인터페이스 상에도 사용자가 딱 필요한 내용만을 그 환경에 맞춰 뽑아서 보여줄 수 있다면, 이 문제 상황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더 나아가 사용자별 특성이나 맥락, 그리고 딱 그 시점의 사용자를 둘러싼 상황 등까지도 감안해서 맞춤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고.
두 번째 문제 상황에서, 또한 그 물방울이 사람과 유사한 시각/청각 인지 등을 할 수 있어서, 휙 지나가는 스포츠카를 잽싸게 스마트폰을 꺼내서 사진 찍는 것만으로도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게 할 수 있다면, 이 문제 상황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그 물방울이 바로 Machine Learning / AI (Deep learning)
그래서 나는, 2014년 당시부터 ML/AI를 키워드로 하는 좋은 팀이라면 어떻게든 투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었던 것 같다. 'Personal Computer', 'WWW', 'Mobile'의 물방울들을 경험하며, 왜 그다음으로 ML/AI가 올 수밖에 없다고 믿으며 투자했었는지를 아래와 같이 그림으로 축약해서 표현할 수 있겠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Lunit, Standigm, Dable과 같은 ML/AI를 기술 키워드로 가지고 있는 훌륭한 스타트업을 초기에 만날 수 있었고, 대표님들과 말씀 나눌 수 있었던 기회는 나에게 너무나 큰 행운이었다. (언제나 감사한 마음 가지고 있습니다. 백승욱 의장님, 김진한 대표님, 이채현 대표님)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 또한 이런 생각들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큰 행운을 흘려보내지 않고 꽉 붙들어 매어 마구 들이대고 투자할 수 있지 않았었던가 싶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