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좀보이드
눈을 떴다. 낯선 공간이다. 추위 때문인지 온몸이 떨렸다. 여긴 어디고,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바깥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적막하다. 주변에 뭐라도 있을까 싶어 창문에 가까이 다가갔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창문으로 날아들었다. 창백한 손 두 개. 그것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세차게 창을 두드렸다. 이윽고 창이 깨지자 고깃덩어리 두 개가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것들은 괴이한 소리를 내며 꾸물거렸다.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은 공포가 몰려왔다. 더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
제목 : 프로젝트 좀보이드
장르 : 서바이벌, 시뮬레이션, RPG
개발자 : The Indie Stone
출시 날짜 : 2013년 11월 08일 (스팀 기준)
가격 : 20,500원 (스팀 기준)
'프로젝트 좀보이드'는 지난 2012년, 영국의 인디 게임 개발사 ‘더 인디 스톤’에서 내놓은 생존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생존자(플레이어)들의 분투를 그리고 있다. 아직 정식 출시를 하진 못했지만 유저들의 반응은 꽤나 좋은 편이다. 게임을 플레이한 유저와 크리에이터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입소문을 타며 현재까지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프로젝트 좀보이드의 인기 요인은 무엇일까? 사실 따지고 보면 프로젝트 좀보이드는 마냥 대중적인 스타일의 게임은 아니다. 일단 이 게임, 기본적으로 어렵다. 생존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감안하더라도 꽤 많은 걸 유저에게 요구한다.
흔히 좀비 게임이라면 좋은 무기와 장비를 얻고, 좀비들을 물리치는 영웅적인 플레이를 떠올린다(대표적으로 ‘레프트 4 데드’ 같은 게임이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전략적인 플레이를 더 요구한다. 일례로 프로젝트 좀보이드 내에서는 함부로 총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총소리 때문에 더 많은 좀비가 몰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재장전이 빠른 것도 아니라서 자칫하다간 포위되어 순식간에 죽을 수 있다.
이는 차량을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영화 <반도>처럼 몰려오는 좀비떼를 차량으로 뚫고 지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차량이 고장 날 수도 있고, 오히려 몰려든 좀비떼에 차량과 함께 통째로 포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캐릭터의 시야가 매우 제한되어 있어 언제 어디서 좀비의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 따라서 야간에, 혹은 건물 내부를 탐사할 땐 갑자기 튀어나올 수도 있는 위험을 대비해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한편 이 게임의 위험 요소에는 좀비만 있는 게 아니다. 생존 시뮬레이션답게 지속적으로 음식물을 섭취하며 굶주림과 갈증을 해결해야 한다. 연료와 전기 등도 확보해야 한다(심지어 입고 있는 옷도 해질 수 있다). 문제는 이 게임의 자원이 유한하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음식은 상하고, 물과 연료도 고갈된다. 따라서 유저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꾸준한 탐사를 통해 여러 자원들을 수급해야 한다.
또한 여러 가지 이유로 질병이나 부상에 시달릴 수도 있다. 이것들은 게임 내에서 디버프로 작용하는데 게임 플레이에 방해가 된다. 가령 감기에 걸리면 기침을 하는데 이는 소리에 민감한 좀비들을 자극하기 좋다. 다리를 다치면 이동 속도가 느려진다. 피곤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우울증에 걸리면 행동이 느려지며 질병에 취약해진다. 최악의 경우엔 죽을 수도 있다. 따라서 유저는 적절한 대처법으로 캐릭터의 컨디션을 관리하며, 디버프를 풀어줘야 한다.
만약 혹시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캐릭터가 죽는다면 골치가 아파진다. 사망 패널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이템을 잃어버리는 정도가 아니다. 이 게임에는 캐릭터의 성장과 생존을 돕기 위해 낚시, 채집, 차량 정비, 의료, 전투 등 다양한 종류의 스킬들이 있다. 스킬은 관련된 활동을 하거나 책과 TV를 보면 올릴 수 있다. 문제는 캐릭터가 사망하면 이 스킬들이 초기화된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아이템이야 죽은 자리에서 회수가 가능하지만 스킬은 다시 처음부터 쌓아나가는 것 말고는 복구 방법이 없기 때문에 꽤 큰 부담이 된다.
이렇듯 프로젝트 좀보이드의 시스템은 상당히 복잡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그건 이 게임에 엔드 콘텐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물론 여기에는 게임이 아직 정식 발매를 하지 않은 영향도 있다). 사실 게임이 어려워도 분명한 목표가 있다면 유저들은 기꺼이 난관을 견딘다. 하지만 프로젝트 좀보이드에는 결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죽음 뿐이다. 결국 유저들은 필요한 자원을 계속 수급하며 버틸 수밖에 없다. 농사, 목공, 요리 등 여러 서브 콘텐츠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유저를 계속 붙잡아둘 순 없다. 결국 반복된 노동과 죽음에 지친 유저는 게임을 떠나게 된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의 인기는 여전히 식을 줄을 모른다. 10년 넘게 발매가 지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연어처럼 꾸준히 회자되며 사랑받는다. 대관절 왜?
“최후의 시간이다. 살아남는다는 희망도 없었다.
이것은 당신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프로젝트 좀보이드는 꽤나 영리한 방식으로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한다. 일단 이 게임의 개발자들은 아직 게임이 정식으로 발매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유저들에게 모드 제작을 허용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권장하는 편이다. 모드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이 실제 게임에 반영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는 제작된 콘텐츠가 한정적인 게임에 있어 가뭄에 단비 같은 요소다. 유저들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구조를 정착 시키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던 엔드 콘텐츠의 부재도 유저들의 모드를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 서로가 만든 놀이 속에서 유저들은 반복적인 플레이 패턴에 의한 피로를 해소한다. 게임사 역시 미리 만들어진 모드로 다음 업데이트의 영감을 얻고, 게임 개발에 있어 보다 적극적으로 유저와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게임의 높은 난이도 역시 장점으로 비칠 수 있다.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가 복잡하고 디테일하다는 건 그만큼 게임 속 세계가 사실적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로젝트 좀보이드는 오픈월드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방대한 크기의 맵과 다양한 상호 작용 요소를 제공한다(가령 좀비떼를 만날 경우 유저는 소리에 민감한 좀비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사이렌 등을 통해 좀비떼를 한쪽으로 유인하는 전략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생존이라는 미션 외에는 유저의 행동에 딱히 제약을 두지 않는 자유도 역시 매력적이다. 치명적인 사망 패널티는 유저가 캐릭터에 가지는 애착을 더욱 깊게 만든다. 덕분에 유저는 이 가상 현실 세계에 훨씬 깊게 몰입할 수 있다.
한편 프로젝트 좀보이드의 매력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장르를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재난 장르와 구분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만의 특징은 일상이 붕괴되었다는 것이다. 재난 장르는 재난으로부터 구조되어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는 그런 걸 기대하기가 어렵다. 돌아갈 일상이 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우리가 실제 삶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종종 한다는 것이다. 일상의 붕괴는 지구 멸망 같은 거대한 사건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니다. 단적으로 지난 3년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는 사람들의 일상에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변화는 아직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마스크 쓰기가 해제되었지만 아직도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이미 비대면 등으로 대표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좋든, 싫든 간에 우리의 일상은 3년 전과 달라져 버렸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일상의 붕괴는 여러 얼굴로 우리를 찾아온다. 영화 <밀양>에서 신애는 남편과 아들을 연달아 잃는다. 이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신애는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가 새로운 시작을 해보기도, 종교에 의지하기도 하지만 상실은 그녀의 삶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뒤흔들고 파괴한다. 상현이 곁에서 그녀를 열심히 돕지만 그렇다고 남편과 아들의 죽음이 없던 일이 되진 않는다.
영화 <패터슨>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미국의 패터슨 시에서 버스를 모는 주인공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고 있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자신의 비밀 노트에 시를 쓰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데이트를 나간 사이 키우던 개가 주인공의 비밀 노트를 물어뜯어 놓았다는 걸 알게 된다. 따로 복사를 해두지 않았기에 이를 되돌릴 방법도 없었다. 이에 주인공은 깊은 상실감을 느낀다. 하지만 개에게 벌을 주고, 독설을 내뱉어도 그 공백은 메워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키우던 반려동물의 죽음, 졸업, 은퇴, 이사 등등. 끔찍한 비극부터 사소한 해프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유로 우리의 일상은 붕괴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우리의 남은 삶에도 영향을 준다. 불행하게도 이를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이별 후 새로운 연인을 만난다고 해도 그 사람이 옛 연인과 똑같을 수 없듯이, 사건의 여파와 무관하게 붕괴 이후는 그 이전과 분명 다르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변화한 일상에 적응하는 것이다. 해야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의 사이를 맴돌며 하루하루를 꾸준히 견디는 것이다. 영화 <패터슨>에서 자신의 시가 사라진 이후, 주인공은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산책을 나섰다. 그곳에서 이 도시로 여행을 온 일본인 남성과 우연히 만났다. 가벼운 담소를 나눈 후, 여행자는 주인공에게 새 노트를 선물로 건넸다. 그 노트 위에 주인공은 새로운 시를 써 내려간다. 다시 시를 쓰는 것으로 본인의 공백을 메우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밀양>의 주인공인 신애의 삶도 마찬가지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신애는 아들과 함께 밀양에 내려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것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후 아들마저 목숨을 잃자 그녀는 이번엔 종교에 귀의했다. 하지만 종교 역시 그녀를 구원하지는 못했고, 아들을 죽게 만든 사람과 세상(신)에 대한 분노에 휩싸인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는다. 물론 여기까지의 서사를 보면 신애의 삶은 정말 비극적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그녀가 끊임없이 발버둥 친다는 것이다. 전락하는 와중에도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애를 쓰는 신애의 모습을 보면 우리 삶을 움직이는 내밀한 동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는 프로젝트 좀보이드 속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엔드 콘텐츠의 부재는 유저로부터 이곳을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앗아갔다. 하지만 덕분에 유저는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히려 악착같이 움직인다. 좀비들을 물리치며 필요한 자원들을 수급하고, 농사를 짓고 발전기를 설치하는 등 장기적인 생존을 대비한다 요약하자면 재난 장르와 달리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에서 구원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온다. 붕괴된 일상 속에서 꾸준함을 빌어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이야 말로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핵심이다.
"다시 네 생을 찾고 싶니? 그럼 심부름을 해다오. 불때기 3년, 나무하기 3년, 물 길어오기 3년…신이 되는 법은 이런 거야. 지루한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칭찬받지 못해도."
"지친 하루를 보낸 용사들은 금빛으로 물든 머리를 하며 씩씩하게 집으로 향한다. 전리품은 하루를 무사히 끝냈다는 긍지와 내일을 시작할 용기다."
- 고아라 작가, '대신 심부름을 해다오' 中 -
생존을 위한 지루한 발버둥은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있는 당신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었다. 산다는 건 그런 거다. 이게 도움이 될까 싶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지루하고 지난한 일을 반복하는 것. 하지만 그와중에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것. 이를 통해 당신을 움직이는 삶의 내밀한 동력을 발견하는 것. 그렇게 생의 의지를 다지는 것.
이 글을 읽는 와중에도 우리는 스스로를 구하고 있다. 부디 그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3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