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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노 Oct 18. 2022

6화_만든 사람의 진심, 하는 사람의 진심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글을 쓰면서 생긴 버릇이 하나 있다. 단어의 의미에 대해 예민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게 인간관계로 확장이 되면 골치가 좀 아프다. 예를 들자면 상대와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답장이 끊기면 혹시라도 내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한 게 아닐까 전전긍긍하는 식이다.


덕분에 나의 언어는 늘 뜸을 들였다. 나의 진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봐. 혹은 내가 너의 진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봐. 그래서 우리가 싸우게 될까 봐. 우리에게 상처를 줄까 봐. 물론 이렇게 주의한다고 해서 모든 갈등을 미연에 방지할 순 없다. 우리의 진심은 가끔 의도와는 상관없이 불가피하게 왜곡된다. 그럴 땐 얼른 오해를 풀고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관계가 망가지는 걸 막을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예술에게도 충분히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씨는 아무리 직업이라도 재미없는 영화를 끝까지 봐야 한다는 게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못 만들고 사람들이 함부로 이야기하는 영화들도 거기엔 진심이 있어요. 다만 그 진심을 통하지 않게 만든 약한 재능이 있을 뿐이죠."  


(출처 - tvn 유튜브)


모든 예술에는 나름의 진심이 있다. 그 진심을 얼마나 잘 전달하는지가 예술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척도다. 테크닉은 진심을 전달하는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이를 매개로 세상과 소통한다. 고대 원시인들이 남긴 벽화를 예로 떠올려 보자. 투박하고 단순한 그림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 사람들의 삶을 추측할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벽화(예술)를 통해서 수천 년의 시간을 넘어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이는 예술의 한 갈래인 게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든 게임에는 나름대로 진심이 담겨 있다. 게임을 만든 사람의 진심, 그리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의 진심. 이 두 가지 진심이 서로 통할 때 소위 말하는 갓겜(좋은 게임)이 될 수 있다. 반대로 통하지 않는다면? 망한 게임이 된다.


2001년, 넥슨에서 개발하고 서비스한 <크레이지아케이드: 비엔비>(이하 ‘크아’)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오락실에서 즐겼던 추억의 게임을 되살려 보자는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당시 다른 온라인 게임에는 없던 2인용 플레이 시스템을 출시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실제로 후문에 따르면 해당 기능은 동생과 게임을 같이 하고 싶다는 한 유저의 요청으로 추가되었다고 한다). 캐릭터를 움직이며 물풍선을 터뜨리는 단순한 조작 방식이었지만, 이를 통해 유저들은 어린 시절 동네 오락실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넣어가며 친구들, 혹은 형제자매와 게임을 즐겼던 추억과 그때의 재미를 떠올렸다. 이 추억이야말로 크아가 전하고자 했던 진심이었고, 그 진심에 사람들이 응답했기 때문에 크아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현재는 대표적인 MMORPG 게임이 된 <로스트아크>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유저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간담회 자리에서 금강선 디렉터는 사람들이 MMORPG 게임을 즐기는 이유로 ‘인연’과 ‘추억’을 꼽았다. 게임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대화를 하고, 사냥을 하고, 레이드를 돌며 쌓은 추억들이야말로 MMORPG 장르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로스트아크>의 진심이기도 했다. 그 진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개발진 덕분에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었던 유저들은 옥외 응원 광고, 기부 행렬 같은 특별한 이벤트로 자신들이 받은 낭만을 돌려주었다.


마지막 사례로는 일본의 게임사 ‘프롬소프트웨어’가 있다. 우리에겐 악명 다크 소울 시리즈, 엘든 링 같은 게임을 출시한 것으로 악명 높은 회사다. 이곳에서 제작한 게임의 특징으로는 어두운 분위기, 높은 자유도 등이 있지만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게임의 난이도가 어마어마하게 높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소울라이크’ 라는 밈이 있을 정도다. 쉽게 말해 이 회사의 게임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렇다면 프롬소프트웨어가 이렇게 어둡고 어려운 게임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그것 역시 이들이 전하고자 했던 진심과 연관되어 있다.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그중 프롬소프트웨어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는 이유는 바로 성취감이다. 반복된 실패는 유저로 하여금 몬스터의 패턴을 학습하고 스스로 파훼법을 찾도록 유도한다. 그렇게 찾아낸 자신만의 방법으로 마침내 몬스터를 쓰러뜨렸을 때 찾아오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단계부터 마지막 자아실현의 이르기까지 다섯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다크 소울> 시리즈는 해당 이론의 훌륭한 예시가 된다. 단순히 게임을 즐김으로써 얻을 수 있는 원초적인 재미를 넘어 어려운 과제를 극복한 경험은 스스로가 한 단계 성장했다는 성취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프롬소프트웨어가 유저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진심이자 유저들이 게임에 매료된 이유다.  


(출처 - 카카오게임즈)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터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이하 ‘우마무스메’)의 사건은 내게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일본의 사이게임즈에서 개발한 이 게임은 지난 6월, 한국에서 정식 출시한 후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높은 인기는 곧 매출로 이어졌고 모두가 이 게임의 성공을 점쳤다.


하지만 퍼블리셔인 카카오게임즈의 아쉬운 운영과 소통 행보는 유저들의 불만을 쌓았고, 불과 출시 두 달 만에 마차 시위라는 씁쓸한 결과를 낳았다. 간담회도 열어 보았지만 유저들의 여론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소송까지 진행 중이다. 물론 최근에 들은 소식을 종합하면 이전에 보여주던 행보와 달리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이 게임에 대해 희망보다는 절망 어린 시선을 보낸다. 대관절, 왜?


그전에 우리는 우마무스메가 전하고자 했던 진심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 게임이 일본에서 처음 출시했을 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특히 아기자기한 캐릭터 디자인, 캐릭터를 육성하는 재미 등 서브컬처 게임으로서 핵심 유저들의 니즈를 정확히 건드린 부분이 컸다. 


하지만 이 게임이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둔 데에는 ‘경마’라는 소재도 한몫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본에서 경마는 꽤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야구와 비슷한 위치가 아닐까 싶다. 쉽게 말해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스포츠라는 것이다. 덕분에 일본 내에서 경주마와 가수의 인기는 연예인이나 프로 운동선수 못지않게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 ‘하루우라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경주마로 활동하며 단 한 번도 우승한 기록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달린다는 이미지를 얻어 당시 경기 침체로 힘겨워하던 일본 국민들에게 희망의 존재로 떠올랐다. 덕분에 하루우라라는 안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의 사랑에 힘입어 경주마로서 꽤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었다.


우마무스메는 게임 내에 이렇게 인기 있는 경마의 요소들을 잘 반영했다. 게임 내에서 육성의 대상이 되는 캐릭터들은 실존했던 경주마들을 의인화해서 만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경주마의 이름만 빌려온 게 아니라 경주마의 경기 성적, 배경 이야기, 성격, 경주마로서 장점과 단점 등을 모두 가져와 캐릭터의 전사(前史)와 능력 등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경주마가 활동했던 지역을 고려하여  캐릭터의 대사에 사투리까지 반영했다. 게임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만약 경마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해보고 싶을 정도로 잘 만들었다. 말하자면 우마무스메의 진심은 경마에 대한 일본인들의 애정과 거기에 담긴 각자의 추억에 있는 것이다.  


(출처 - 조선일보)

 

물론 한국에서는 이러한 진심만으로는 성공하기가 어렵다. 한국은 일본만큼 경마가 인기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의 일부 게임 전문가들은 우마무스메가 국내에선 성공을 거두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이 게임은 우리나라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이것이 캐릭터의 육성 시스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이 경마에 갖지 못하던 애정을 캐릭터에 대한 애정으로 치환한 것이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육성 시뮬레이션이다. 캐릭터를 키워 좋은 능력치를 갖게 하고, 이를 통해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귀여운 캐릭터들이 무색할 정도로 우마무스메는 높은 육성 난이도를 자랑한다. 실제 경마의 시스템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 캐릭터를 성장시키는데 필요한 재화나 거기에 따른 노력의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 게임의 메인 콘텐츠라고 불리는 챔피언스 미팅(유저 간의 경마 대회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며칠 전부터 준비가 필요할 정도다. 게임을 라이트하게 즐기는 모바일 게임 유저들의 일반적인 특성을 생각하면 꽤나 까다로운 시스템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에는 돈을 벌기 위한 개발사의 계산이 십중팔구 반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복잡한 육성 시스템이 캐릭터와 유저 사이에 유대감을 만드는 데도 기여한다. 괜히 우마무스메의 캐릭터들을 ‘말딸’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 어렵게 캐릭터를 육성한 만큼 그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 같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했을 때 운영사인 카카오게임즈가 보여준 방식은 씁쓸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특히 아무리 개발사가 아니더라도, 아무리 일이 많아 한 직원이 여러 게임을 동시에 담당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우마무스메를 담당하는 직원 중 해당 게임을 플레이해 본 사람이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납득이 쉽지 않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진심은커녕 게임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진심조차 제대로 헤아리려고 한 게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간단회까지 진행했음에도 불구하여 여전히 많은 유저들이 우마무스메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유가 아닐까.  


(출처 - 넷마블)

  

신기주 작가와 김재훈 작가가 함께 쓴 넥슨의 일대기 ‘플레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미래가 생긴다. 미래와 미래가 만날 때 현재가 생긴다.” 앞서 말했듯 예술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원시인의 사례에서 우리는 그들이 남긴 벽화를 통해 과거의 그들과 만난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써 현재의 역사가 탄생한다.


게임 역시 예술의 한 갈래이기 때문에 별반 다르지 않다. 게임 안에서도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 유저와 유저가 만나고, 유저와 개발자가 만나며, 개발자와 개발자가 만난다. 그렇게 게임을 만드는 진심과 게임을 하는 진심이 한데 모여 독특한 예술 세계를 만들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재미와 행복을 느낀다.


물론 항상 진심이 통할 수는 없다. 때론 오해도 만들어지고 갈등도 빚는다. 그럴 땐 얼른 오해를 풀고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나는 말했었다. 이번 사건을 보며 작년 한해 페그오를 시작으로 이어진 게임사들을 향한 유저들의 트럭 시위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당시엔 정말 심각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어떤 게임은 유저들의 진심과 함께 다시 일어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페그오다. 최초로 트럭 시위를 촉발시켰던 이 게임의 유저들은 얼마 전 개발진에게 응원의 커피 트럭을 보냈다.


그러니 이 게임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나 역시 미래를 낙관적으로 그리고 있진 않지만 다른 예술과 달리 결과물보단 지속적인 패치와 운영을 통해 더 나아지고, 더 재밌어지는 과정으로 존재하는 게임의 특성상 우마무스메도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를 하고 싶다. 그리하여 게임을 만들고, 즐기는 사람들의 진심이 다치지 않기를. 예술 안에서 즐거운 기억을 갖길 바라는 사람들의 소망이 지켜지기를 기대하고 싶다.


제목 :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장르 : 육성 시뮬레이션
개발사 : 사이게임즈
출시 날짜 : 2022년 6월 20일 (한국 기준)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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