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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oje 주제 Nov 18. 2019

취향 일기 (1) 오- 나의 나폴리탄-!

취향 따라 쓰고 그려요

주제의 취향 일기


(1) 오- 나의 나폴리탄-!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무척 좋아합니다. 새콤 달달한 케챱과 기름이 자르르 코팅된 스파게티 면. 비엔나 소시지와 초록 피망은 옵션이 아닌 필수죠. 기름에 튀기듯 완성한 계란 프라이나 보들보들한 수란을 얹어주고, 파슬리와 파마산 치즈를 가득 뿌려주면 완성입니다. 이것이 바로 먹어보기 전까진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케챱' 스파게티 나폴리탄입니다.



나폴리탄을 처음 접한 건 학교 앞 카페에서였습니다. ‘P’ 카페는 맛있는 커피와 조용한 분위기가 좋아 자주 가는 곳이었죠. 독특하게도 이곳에선 파스타를 팔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나폴리탄 파스타였습니다. (나폴리탄이란 단어 뒤엔 스파게티가 오기도, 파스타가 오기도, 또는 아예 나폴리탄이라고만 불리기도 합니다. 여기선 각 식당에서 쓴 메뉴 이름을 살리기 위해 혼용하도록 하겠습니다.) P의 나폴리탄을 처음 맛봤을 때, 저는 사랑에 빠져 버렸습니다. 기름에 튀기듯 바싹 익힌 써니사이드업의 계란 프라이가 올라간 빨간 파스타라니! 노른자를 터뜨려 면과 섞어주고 비엔나 소시지를 포크로 찍은 뒤, 면과 함께 후루룹 먹었습니다. 그렇게 입안에 착 감기는 달짝지근한 파스타는 처음이었습니다. 은은한 케챱맛과 기름의 고소한 풍미가 어찌나 인상적이던지 다음날에 번쩍 떠오를 정도였죠. 그 길로 저는 2주에 한 번은 꼭 들러 나폴리탄을 맛보는 단골 손님이 되었습니다.




P 카페의 나폴리탄. 바삭한 흰자와 촉촉한 노른자, 기름진 파스타면, 통통한 소세지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이후 저는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의 극장판을 보고 나폴리탄 스파게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대강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케챱이 많이 사용되는 걸 보고는, 왠지 P 카페의 레시피가 '나폴리탄의 정석'은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P의 것은 분명 케챱맛은 났지만 새큼한 풍미보단 특유의 진득한 감칠맛이 더 강조된 스타일이었거든요. 얼마 후 저는 생각지도 못한 나폴리탄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제 예상이 맞았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P 카페는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사장님은 다른 곳에서 다시 가게를 시작하실 계획이라 하셨습니다. P 카페가 없어진다는 것은 제게 여러 의미였는데, 첫 번째는 그림 그리기 좋은 학교 앞 카페 중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당연히 ‘더는 나폴리탄을 먹을 곳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저는 곧 나폴리탄 금단현상을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결심했습니다.



나폴리탄 대장정을 떠나자!



저는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검색을 통해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파는 식당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서울의 몇몇 식당을 발견해냈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망원동의 식당 ‘G’였습니다. 이곳은 두세 가지의 메뉴를 주마다 바꿔가며 운영되는 식당이었고 당시 나폴리탄 스파게티가 그 주의 메뉴로 올라있었습니다. 한 주가 끝날 세라 달려가 맛을 봤습니다. G의 나폴리탄은 P 카페의 기름진 감칠맛과는 좀 다른 맛이었습니다. 케챱맛이 강해 시큼달콤했는데, 심야식당의 나폴리탄 에피소드가 떠오르면서 ‘아, 이것이 오리지널이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오리지널도 맛있었지만, P 스타일의 나폴리탄이 입에 좀 더 맞았습니다.



망원동 G의 나폴리탄. 한 눈에 봐도 P보다 케챱 색에 가까움을 확인할 수 있다. 피망, 버섯 등 다양한 야채가 식감을 살려준다.



두 번째 여정의 목적지는 건대입구의 ‘GS’ 카페. 이곳은  P와  마찬가지로 식사 메뉴를 파는 카페였습니다. 이곳의 나폴리탄을 맛본 저는 곧장 오리지널과 P의 중간과 같은 맛이란 결론을 냈습니다. P의 나폴리탄보단 케챱맛이 강했지만 G의 나폴리탄보단 덜 시고 기름졌습니다. 수란이 올라가는 것이 독특했는데, 바삭한 식감은 없어도 부드러움이 극대화되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건대 GS의 나폴리탄. 수란과 파마산 가루가 케챱 맛을 부드럽게 감싸면서 고소함이 극대화된다.



이후 저는 나폴리탄 덕분에 알게 된 식당 G와 카페 GS의 단골이 되었습니다. 재밌는 건 그 두 곳에서 더 이상 나폴리탄을 먹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연히 다른 메뉴를 맛보고선 제 입맛에 더 맞는 메뉴를 찾았기 때문이죠. 첫 시작은 나폴리탄이었으나 그 끝은 또 다른 취향 저격으로 창대할지니. 멋진 두 곳을 알려준 나폴리탄에게 이 영광을(?)!



그러던 지난 날, 제주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며 스텝으로 일했던 저는 갑작스럽게 아주 강력한 나폴리탄 수혈 욕구를 느꼈습니다. 그 길로 유튜브를 뒤적이며 레시피를 찾은 저는 P 나폴리탄 맛의 88퍼센트를 구현해내는 데에 성공하고 맙니다. 비결은 바로 굴소스! 굴소스를 케챱 양의 삼분의 이 정도 섞어 소스를 만드는 것이 그 맛의 비법이었습니다.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게스트하우스 부엌에서 선 채로 나폴리탄을 먹으며 춤을 췄답니다. 혜화 P 카페와 망원동, 건대를 거쳐 제주도 게스트하우스까지 이어지는 나폴리탄의 길고 진득한, 감칠맛이 쏙 벤 면발에 감탄하면서요.



내가 만든 나폴리탄의 아름다운 자태. 마늘칩을 올려 식감의 재미를 더했다.




* '케첩'이 맞춤법에 맞는 표기이나, 글의 느낌의 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케챱'이라 표기하였음을 밝힙니다. 나폴리탄 특유의 감칠맛과는 왠지 '케챱'이 더 어울리는 것 같그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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