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드립 Feb 08. 2018

엄마형 인간

임신과 마주하다

나 같은 사람도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이 내가 아이 갖기를 꺼려했던 첫 번째 이유였다.

    

가끔씩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아기들은 내가 뭐라도 말해주기를 바라는 눈빛으로 나를 멀뚱히 쳐다보곤 했고, 그런 아기에게 아이엄마는 “안녕하세요.” 해야지 라고 말하곤 했다. 뜻하지 않은 인사를 받은 나는 직장 상사에게나 보이는 업무용 미소를 급하게 지어내 보이곤 했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나는 관심 없는 아기에게 인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일종의 폭력처럼 여겨졌었다. 아기는 피곤했다. 하지만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아기를 무시할 만큼 예의가 없진 않았고, 스스로가 나쁜 사람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해 관대하지도 못했다.

     

내 아이가 생긴다면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해줄 수 있었다. 나는 상식적이고 평범한 사람이고 스스로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싫으니까. 나를 닮은 작은 생명이 울고, 웃고, 걷고, 말을 해나가는 과정을 상상하면 귀엽기는 하니까. 하지만, 할 수 있다면 피해도 무방했다. 아기가 없다고 해서 결핍을 느끼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아기가 없어서 좋은 점이 훨씬 많았다. 자유롭게 저녁 약속을 잡거나 주말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도 된다는 것. 아기가 주는 행복은 감정적인 것임에 비해 아기가 없어서 얻어지는 것들은 너무나 분명했다. 멀리 두고 보면 경제적 여유를 포함해서 말이지.     


만약에 나의 남편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아마도 나의 아기는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남편은 자식을 갖고 싶어 했다. 하지만 갖고 싶은 이유가 명확하거나 간절하지도 않았다. ‘생기면 정말 좋겠다’였지 ‘생겨야만 한다’는 아니었다. 부모 둘 중 하나라도 생겨야만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 노력이란 걸 하게 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아마도) 손만 잡아도 아기가 생기는 몸은 아니었고, 그런데도 딱히 노력이란 걸 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만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아기의 존재를 알게 된 그 아침을 기억한다. 그 아침이 되기 이틀 전에 나는 친구 H를 만나서 곧 떠나게 될 방콕 여행에 대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나의 생리 주기가 여행의 전반부와 겹치게 되면서 물놀이를 반쪽밖에 못하는 상황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 기분이 이상해져서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속옷에 피가 묻어있었다. 급하게 처리를 하고 돌아와 친구에게 말했다. “나 생리 터졌어! 방콕에서 신나게 놀 수 있어!” 잘됐다 신난다 즐겁게 얘기를 하고 집에 왔는데 이어져야 할 생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생리 초기에는 그런 적도 있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넘기고 있었는데, 그 증상이 이틀째 되는 아침이 되어서야 나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마침 화장실 수납장에 남아있던 테스터기를 해보았는데 그 때 나는 아기의 존재를 알게 됐다. 나는 육성으로 내뱉었다. “헐~” 피의 정체는 생리가 아니라 착상혈이었던 것이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찾아온 새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이나 반가움이나 감사보다는 당장 이틀 뒤에 출발해야 하는 방콕 여행이 걱정이었다. 무려 열흘 정도의 일정인데다가 숙박비 등은 이미 상당부분 지출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산부인과로 갔고, 아직 주수가 얼마 안돼서 아기집은 확인할 수 없고, 피검사를 해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테스터기가 두 줄이 나왔다면 임신이 아닐 가능성은 희박하다 했다. 피를 뽑고 집에 와있자니 병원에서 전화가 왔고, 역시나 내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상상도 못했던 그 시기에, 별을 자주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기는 그렇게 느닷없이 나의 인생에 별동별처럼 휙! 하고 찾아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