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인생은 일방통행
그렇게 인정하는 것이 '건널 수 없는 강은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오해와 아픔을 줄이는 길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러한 신념은 내가 '건널 수 없는 강'이라고 마음먹은 부분에 대해 '건널 수 있다'라고 설득해오거나 발을 담그는 사람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방어적 태도를 취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강이 나를 고립된 섬으로 만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물줄기가 흐르는 터로 만들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따금은 섬이 되었다가, 이따금은 강변도 되었다가 하는 듯하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사람들이 무섭다.
그리고 적당한 지점에서 적당한 방식으로 화내는 방법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 나를 침범하고 휘저어 놓더라도 경고해야 할 때를 잘 모른 채 시간이 지나서야 알아채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는 건 대다수 나의 '배려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고, 불편한 사이가 되고 싶지 않고,
집에 가서 나만의 공간에서 울적해하면 되지 굳이 이 사람 앞에서 있는 대로 감정을 다 티 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런 내 방법이, 결국에는 내 자신을 매우 힘들게 하기에 최근에 와서야 '이제는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구나, 가끔 생각 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건널 수 없는 강'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하고 한참 갔는데 돌아보면 '그걸 넘었으면 안 되었구나' 생각이 들곤 한다.
우린 분명 건널 수 없는 강을 사이에 두고도 서로를 마주 보며 웃고 적당한 거리에서 충분한 교류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누군가와 삶을 나눈다는 것은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다.
긴밀하게 깊숙이 교류를 하는 것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큰 두려움은 그러한 깊은 사귐에 대한 간절함과도 비례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언제나 신중하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상대는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게 되었다.
건널 수 없는 강도 없고, 돌아올 수 없는 강도 없고,
오직 지나온 길만이 있을 뿐이다.
오직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은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시간의 방향은 일방적이고 절대적이기에,
지나가버린 시간을 돌이킬 수 있는 마법 같은 일이 어느 날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지나간 일을 돌아보며 이런저런 의미를 곱씹고 되뇌기보다 오직 다가오는 시간 속에서 더 진실되고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만을 해볼 거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만큼 나 자신도 배려하면서, 아니 나 자신을 먼저 배려하면서.
꼴 보기 싫은 사람이든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든
뭐든 되어 볼 거다.
거북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오버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누구에게 반감을 사거나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좋은 사람만 되고 싶은 것도
욕심이니 그냥 '나쁘지 않은, 가끔 괜찮은'
사람 정도는 되자
이런 마음이 그 누구도 부여한 적 없는 족쇄가 되어 마음에 너무 많은 짐을 주며 살아온 것 같아
스스로에게 조금은 부끄럽고 미안해진 것이다.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어도 충분히 괜찮다.
웃고 싶으면 웃고, 웃기 싫으면 웃지 말아도 보고
하고 싶은 하고, 하기 싫으면 하기 싫은 대로
내 마음에 솔직한 사람으로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