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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노 Feb 24. 2022

영등포 테이프

친구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영등포 테이프>


친구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영화감독의 수가 여느 샐러리맨처럼 많지 않은 것은 물론 감독들 중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있을 확률은 지극히 낮으니. 평소 영화 보는 것을 크게 즐기지 않지만 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기대하고 설레게 되는 적은 분명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영화를 본다거나 좋아하는 배우의 영화를 접할 때면 보기 전부터 이상하리만큼 두근대는 적이 많았다.


친구의 영화도 그랬다. 시사회를 간 몇 친구들의 반응을 애써 무시하고 친구의 자취방에서 ‘아직 안 본 사람들의 시사회’를 시작했다. 사뭇 쑥스러워하는 친구의 말을 뒤로한 채 흑백의 화면이 펼쳐졌다. 익숙한 목소리의 내레이션이 나오자 키득대며 웃다 줄곧 영화에 집중했다. 차분한 분위기, 참으로 꾸밈없고 순수한 장면들. 영화를 좋아하는 상대방에게 "너한테 꽃 대신 어떤 영화를 주면 좋을까"라고 말하는 대사.


이 장면은 뭐야? 무슨 뜻이야?라고 묻는 물음에 막힘없이 답하는 친구의 모습이 유독 반짝여보였다. 친구는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면 우리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겠다고 약속했다. 너스레를 떨며 웃음기 가득하게 말했던 그 때와 다르게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면 웃음기는 사라지고 하나같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를 일이다.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고 축하받을 수 있는 사람들. 오래전부터 해온 약속이 곧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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