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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노 Dec 13. 2022

LUCKY

선물 받은 아이비가 말라버린 그날, 더 이상 식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워낙 키우기 쉬운 아이, 예민하지 않은 아이라는 특징에 걸맞지 않게 아이비는 시들었다. 핑계일 테지만 일상에 지친 내게 또 다른 생명을 돌볼 여유까지는 없었다. 물을 제 때 갈아주거나 관심을 가지고 쳐다보는 빈도 수가 낮았다. 간단히 말해 애정을 쏟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키우지 않겠다는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다. 체리 몰딩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보다 촌스럽지 않게, 혼자 사는 공간을 삭막하지 않게 만드는 데 식물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키우기 쉽다는 말에 현혹되어 무려 씨앗부터 직접 심어야 하는 '식물 키우기 세트' 구매했다. 빨갛게  익은 미니 방울토마토가   구석에 열려 있는 부조화가 나름 매력적이지 않을까라며 씨앗의 종류를 골랐다. 손바닥에 4-5 정도 놓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은 씨앗들을 조심스럽게 흙에다 심은  전용 LED 켜주었다. 며칠이 지나도 도무지 새싹이 올라오지 않아 이번에도 실패라며 생각이  때쯤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차이지만 흙에  균열 사이로 보이던 흐릿한 녹색은 퇴근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루가 다르게 줄기가 굵어지고 잎이 많아졌다. 식탁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그것을 늘 밥 먹기 전에 챙겨주고 빛을 쬐어준다. 줄기끼리 얽혀있을 때면 투박하지만 어쩌면 가장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풀어주며 정성을 다하고 있다. 빨갛게 열매가 열리면 따먹을 계획이 점차 잔인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밖의 나뭇가지에 흰 눈이 쌓이기 시작한 오늘, 유독 방 안의 그것이 더 새파랗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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