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에게 주어진 분량은 82억 분의 1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세계 인구수가 82억 정도 된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한 반에 30명 정도가 있었다. 세계 인구수를 반 수로 따지면 30명으로 구성된 반이 2억 7천만 반 정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수가 5천만이라고 하면, 우리나라가 164개 있는 것이다.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사람 수가 참 많다.
우리가 아마 82억 명의 사람을 다 만난다면,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부러운 점을 바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초등학생을 만나면 그 아이의 가능성이 부러울 것이고, 대학생을 만난다면 젊음이 부러울 것이고, 노인을 만난다면 연륜과 지혜가 부러울 것이다. 영어권 국가의 사람을 만난다면 영어를 잘하는 게 부러울 것이고, 나보다 좀 더 똑똑한 사람을 만나면 그 영리함이 부러울 것이다. 정말이지 다른 사람에게서 부러워할 것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82억 명의 삶이 부럽다고 해서 따라 살기란 불가능하다. 일단 나이는 내가 손 쓸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노력으로 누군가의 실력을 따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노래를 연습하고, 춤을 연습하고, 공부하고, 글을 쓰고, 작곡을 하는 등 노력하면 되는 일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다고 해서 82억 명의 삶을 따라 사는 것은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 시간에는 한계가 있지 않은가. 1년에 한 명을 따라잡는 데 성공하더라도 우리가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은 고작 100명이다. 그렇게 살면 죽음에 다다라서 나머지 (82억-100) 명의 삶을 부러워할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분량 많지 않다. 엄청 작다. 82억 분의 1의 삶만이 내게 주어졌다. 100명을 따라 사는 데 성공해도 우리가 산 분량은 82억 분의 100밖에 안 된다. 82억을 기준으로 100은 아무 숫자도 못 된다. 우리 욕심으로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지만, 우리에게는 한계가 있다. 절대적인 한계다. 우리는 그 한계를 이기지 못한다. 그럴 만큼 인간의 능력이 크지 않다.
하지만 82억 분의 1의 삶은 0에 가까운 가능성에서 나온 삶이라는 뜻이다. 82억 분의 1의 분량만큼 당신이 제대로 당신의 이야기를 쓰고 당신의 삶을 산다면,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그 삶을 충실히 산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당신이 당신의 몫을 한 것이다. 신께서 당신에게 주신 82억 분의 1이라는 그 아주 작은 극한의 가능성을 당신은 성취한 것이다.
나머지 82억의 삶을 부러워하며 사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니, 82억 분의 1의 확률로 유일무이한 한 사람인 당신 자신, 하나님께서 유일무이한 사람으로 천하보다 귀하게 만드신 당신이라는 사람에게 집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자신의 시선은 불완전할 수 있다. 하나님의 시선에서 나를 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겠다면, 이 세상을 지으신 신이 있다고 믿고 그 신의 시선에서 나를 보는 것이다. 그 신은 인격적이고 당신을 사랑한다. 그 신은 당신에게 아주 작은 확률의, 유일무이한 환경을 주셨다. 그 환경에서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나는 나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면서, 우리 함께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