➀우리의 기초는 믿음이다
예전의 나를 생각하면, 내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가졌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신뢰할 만한 외부의 무언가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회의에도 조금 심취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고, 과거의 생각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느낀다.
과거의 생각이 아주 쓸모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런 회의의 과정에서 모든 것이 믿음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그 생각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데카르트는 확실한 무언가를 믿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했는데, 그것은 그렇게 좋은 방법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원리와 맞지 않은 것 같다.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오감도, 우리의 생각도 믿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내 앞에 있는 달력의 색이 하얀색으로 나에게는 보이는데, 이게 사실 하얀색이 아니고 검정인데, 내 눈에만 하얀색이라고 보이면 어떨까? 내 앞에 있는 노트북은 내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일 뿐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어떨까?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고, 우리가 보는 현실이 ‘진짜’ 현실과 다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진짜’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없던 존재이고, 우리는 이 세상을 창조하지도 않았는데 지성이 있다는 이유로 세상을 다 안다고 단정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정말로 보이는 게 전부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그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적어도 사람의 눈에서는 내 앞의 달력은 흰색이고, 내 앞에 노트북이 있음을 믿는 것, 내가 존재하고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됐다. 의심을 통해 믿을 것을 확실히 하자는 데카라트의 마인드는 자기의 지성이 어떠한 옳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자부심에서 시작된 것 같다. 우리에게는 지성이 있지만, 그 지성도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 태어날 때, 그리고 성장하면서 얻게 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지성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인데, 그 지성을 통해서 확실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무지를 인정하고,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한다. ‘나에게 지성이 있구나, 나에게 시각이 있고, 세상을 감각으로 알 수 있구나.’라고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