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없는 사회>와 <현대 사상과 문화의 이해>를 읽으며
요즘 읽는 책은 한병철 선생님의 <고통 없는 사회>(2021)다. 두 번째 읽고 있는데,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롭다. 한병철 선생님의 책은 여러 권 읽어봤는데 항상 ‘긍정성’, ‘부정성’을 다루시는 것 같다. 한병철 선생님은 부정성과 타자가 제거되고 모든 게 수용되기만 하는 긍정성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즉, 단절되는 것, 차단하는 것, 거부하는 것, ‘아니’라고 하는 것 등이 모두 제거되고, 모든 것을 연결하고,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면역 체계가 없는 부정성이 제거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책인 <현대 사상과 문화의 이해>(진 에드워드 비스, 1998)도 같이 읽고 있는데 한병철 선생님이 말하는 ‘긍정성의 지배’가 포스트모더니즘과도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긍정성의 시대에는 어떠한 기준을 거부한다. 기준이 있다면 기준에 맞지 않는 것도 있으니 그렇게 ‘기준에 맞지 않음’이라는 부정성은 긍정성의 시대에선 사라져야 한다. 신념은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선택하고 행동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데, 그런 기준도 사라진다. 무엇이 옳은 신념인지 고민하지 않는다. 어떠한 견고한 신념을 쌓아가는 것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있고, 그렇기에 폭력이 될 수 있다. 부정의 특성을 가진 기준, 신념은 사라져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렇지만 신념이나 기준 없이 인간이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누구나 기댈 기준과 신념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도 자신이 무언가를 선택할 때, 그게 더군다나 중요한 선택이라면 무작위로 아무거나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모든 선택을 무작위로 선택하겠다고 마음먹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 또한 그 사람의 ‘신념’이다. 우리 마음속에 우리가 어떠한 결정을 하고 선택을 하는 이상 기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친구와 이야기하며 ‘선택은 배제를 낳는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배제는 부정성을 지니며, 이 배제의 부정성이 기준과 신념의 특성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 ‘선택’은 부정성을 지닌 해선 안 될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선택을 안 하고 살 수는 없다.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삶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선택하는 이상 배제하는 것이 생기고, 선택과 배제의 기준이 생긴다.
신념과 기준이 필요하지만 이를 거부하는 시대 속에서 나타나는 게 신념의 유행이라고 생각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나 자신에게서 깊이 있는 통찰과 내부적 탐색을 통해 신념을 쌓아 올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신념을 쌓는 것은 배제도 함께 쌓는 것이기 때문에 차별적이다. 그렇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도 기댈 무언가는 필요하니 사람들은 유행하는 담론에 편승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는 말의 출처, 권위가 사라진다고 한다(비스, 1998). 담론은 여전히 형성되지만, 출처가 사라짐과 함께 책임도, 깊이도 사라져 담론은 의미 없는 말의 무리가 되는 것 같다. 담론이 유행에 따라 변화되고, 그 유행하는 담론은 깊이가 없다. 진정으로 깊이 있는 담론과 사상은 만들어지지 않고 휘몰아치는 담론의 유행 속에서 사람들은 기댈 수 있는 신념에 편승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