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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ks Jul 25. 2024

법학적성시험은 배경지식을 요구하는가

컴공생, 로스쿨에 도전하다 (2)

법학적성시험 성적이 로스쿨 입시 성적에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근 몇 달간은 로스쿨 준비=시험 준비였다. 주변에서 도대체 무슨 시험이냐고 물어보면 보통 이렇게 답했다.


"수능국어 비문학 어려운 버전이야."


굳이 법학을 전공할 생각이 없더라도, 주변에 LEET를 아는지 물어보면 '수능 국어 고득점자가 실력을 다지기 위해 풀어내는 악명 높은 시험' 정도로는 인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고등학생 때 LEET를 풀어본 사람도 있었고, 어려운 수능 비문학 정도로만 설명해도 주변 사람들은 쉽게 이해해서 편했다.


다만 위의 설명은 사실 반만 맞는다. 1교시 언어이해 영역은 저 설명으로 퉁칠 수 있지만, 2교시 추리논증 영역은 세부 유형이 언어이해보다는 다양한 편이라 저렇게 한 마디로 줄여 말하기가 어렵다. 2교시의 구체적인 시험 구성은 나중에 다뤄보겠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시험 내용이 정말 궁금하다면 법학적성시험 공식 홈페이지에서 역대 기출문제를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정답도 제공된다. 악명에 비해 제시문의 중심 주제는 대체로 난해하지 않아 가볍게 읽을 만하다. 변별력은 시간의 촉박함과 문제의 함정에서 만들 뿐이다.


즉, 수능 비문학과 언어이해는 '문제를 풀기 위한 정보는 제시문에 다 있다'는 면에서 유사하다. 법학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 과학기술 등 다양한 주제의 제시문이 주어지는 데 해당 분야에 대한 전공지식이 없더라도 제시문만 읽으면 답을 찾을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실제로 출제진은 전공에 따른 유불리를 줄이는 데 상당한 신경을 쓰는 모양이다.


특정 전공 영역에 대한 세부 지식이 없더라도 대학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마쳤거나 마칠 예정인 수험생이면 주어진 자료에 제공된 정보와 종합적 사고력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문항을 구성함.

-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2025학년도 법학적성시험 시행계획 공고


대신, 전제가 있다. 대학 졸업생 수준의 교양 상식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로 어휘에서 그런 의도를 많이 느낄 수 있다. 법학을 전공할 필요는 없지만 제시문에서는 "자연법"과 "실정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철학을 전공할 필요는 없지만 제시문에서는 "선험적"과 "실천적"이라는 표현을 언급한다. 물론 '계시(啓示)모델성'같이, 전공자조차도 듣도보도 못했을 이상한 번역어도 쓴다. 다만 그런 상식 밖의 용어는 그 의미를 몰라도 문제를 푸는 데 지장이 없게 만든다. 달리 말하면 "자연법"은 상식적으로 알 것이라 가정하고 패러프레이즈(e.g. '절대성을 가진 규범적 현실에 법이 구속된다고 보는 견해')를 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제고(提高)" 같이 학술적 성향이 강한 아티클에서 특히 자주 사용하는, 개인적으로는 현학적이지 않나 싶은 용어들도 즐겨 쓴다. '끌어올림', 하다 못해 '향상(向上)'이라는 대체 표현이 더 쉽지 않을까.


따라서 평소에 학술적인 글을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가 언어이해 문제를 얼마나 수월히 풀어내는지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다. 대학 교양 수업에서의 읽기 자료나 아니면 '지대넓얕' 류의 교양서 정도면 충분하다. 본인의 지적 흥미를 위한 것이라면 전혀 상관없지만 시험 성적을 높이기 위해 현재 전공하지도 않는 분야의 전공서를 읽는 것은 오버킬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오히려 배경지식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는 실수도 주의해야 한다. 제시문의 정보로는 '추론할 수 없는 사실'을 추론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대표적인 실수 유형이다. 또는 전공 지식에 대한 어설픈 활용으로 제시문과 상충하는 결론을 내놓을 수도 있다. 나는 2017년 수능 6월 모의고사 19번에서 실제로 내가 알고 있는 인공 신경망에 대한 전공 상식 제시문이 충돌한 경험이 있었고 (관련 이의제기를 소개한 포스트), 그 뒤로 "수능 비문학을 풀 때는 내 배경 지식은 활용하면 안 되겠구나" 굳게 마음먹은 과거가 있었다.


그러나 LEET 기출 공부를 하면서, 물론 그런 부작용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배경지식을 배제하는 전략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LEET의 제시문은 어쨌든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현실을 소재로 한다. 법조인 또한 현실의 상식을 함께 활용하여 논리를 전개하지, 법조문의 축자적인 의미만을 갖고 늘어놓는 궤변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렇기에 법학적성시험에서는 없는 철학자를 만들어내 헛소리를 하거나, 지구가 평평하다는 둥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세계를 마치 진실된 과학 지문인 양 기만하지는 않는다. 의도적으로 전공자만을 타겟해서 낚아먹으려는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공평하게 모두를 속이기 위한 함정을 내놓을지언정...


나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그렇기 때문에 2024년 LEET의 k-익명성 지문이든, 2025년 LEET의 트랜잭션 지문이든 상당히 친숙한 소재여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작년 시험에서는 다 아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제시문에 함정이 있을까봐 꼼꼼히 읽은 바람에 시간이 부족하여 한 지문을 통째로 날리는 실수를 하였지만, 이번에는 다른 제시문 대비 1.5배의 속도로 빠르게 훑어만 보고 상식에 상당히 의존하여 문제를 풀어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럽게 26번 한 문제를 틀리긴 했지만, 보통 LEET 수험생 중 문과가 많아서 마지막 언저리에 위치한 과학기술 지문을 전략적으로 버리는 수험생이 많은 것을 고려하면 선방했다고 자평한다.



26번의 1번 선지 "데이터를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잠금 기법을 적용함으로써 완전한 격리성을 보장할 수 있다."의 글만 보고 맞다고 판단해서 틀렸고, 사실 이것은 전공 지식을 활용했기 때문에 생긴 사달이었다. 트랜잭션 단위로 locking을 한다면 당연히 완전한 격리성이 보장된다. 하지만 문제에서 언급한 "데이터"에 독점적인 잠금 기법이란, 트랜잭션을 구성하는 각 연산을 실행할 때마다 locking하는, one-phase locking protocol(i.e. immediate locking)을 뜻한 것이고 이 경우에는 "트랜잭션"의 격리성에는 유의미한 기여를 하지 못한다. 즉 전공 지식도 어설프게 활용해서 틀린 것이지 실제 컴퓨터공학과 상반되는 결론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사례만 보면 또다시 전공 지식을 사용하면 안되는구나 걱정이 들 수도 있겠지만, 추리논증 과목에서도 이과 배경 지식은 유용하게 쓰였다.



추리논증 38번의 경우 사실상 고등학교 물리학 1의 주요 역학 개념을 압축한 것과 다르지 않다. mgh=p^2/m 이라는 간단한 운동 방정식을 이용할 줄 안다면 날로 먹을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 것 치고 필기를 보면 지문에서 "운동량 보존 법칙"을 왜 제시한건지 바로 이해하지 못해 애를 먹기는 하여 설득력이 있을 진 잘 모르겠다 ㅎㅎ.


결론은 다음과 같다.

문제를 풀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 배경 지식을 몰라도 풀 수 있으니 쫄지 말고, 배경 지식을 알고 있다면 복 받았다고 생각하고 적재적소에 잘 써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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