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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작 Jul 26. 2023

10세는 육개장이 좋다고 했다

- 육개장 맛있나? 

공동육아를 같이 했던 조합원이 상을 당했다. 안 막히는 시간에 가면 차로 40분 남짓. 첫날에는 못 가고, 둘째 날 7시 30분쯤에 집을 나섰다. 1호는 당연히 안 간다고 했다. 거길 왜 가?라고 사춘기 특유의 눈빛을 쏘며 말했다. (무서워서 뒷걸음질 치며) 1호의 방을 나와, 2호의 방문을 여니 혼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 2호에게 우리 장례식장 갔다 올 게 하니, 2호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육개장 맛있나?"

약 3초 후, 홀연히 장난감을 떨치고 따라나섰다.


만 10세인 2호는 국밥 마니아다. 해장국, 돼지국밥, 육개장 등을 좋아한다. 우리는 결혼식과 돌잔치는 못 가더라도, 가급적 상갓집은 가자는 가풍이 있다. 물론 그래도 못 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가풍'이라고 썼다. 100% 실천한다기보다는, 그렇게 하려는 마음가짐? 이라고나 할까. 처음부터 다짐하거나 그랬던 건 당연히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기쁜 일은 가만히 있어도 기쁘지만, 슬픈 일은 애써야 하니까.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찾아가서 손이라도 잡을 수 있으니. 아무튼 그런 가풍 덕에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상갓집에 종종 갔다. 주로 밤에 가야 하는데 어디 맡길 때도 없고, 어린애들만 두고 갈 수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삶과 죽음은 함께 가는 것이고, 상갓집은 떠들썩해야 하는 곳이니. 시끄러운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절을 하고,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음식을 먹는다. 그 결과 국밥 마니아인 2호는 상갓집의 육개장이 너무 맛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육개장 맛있나?'는 질문이 아니라 독백이었던 것이다.


가는 차에서 상주가 토끼와 다람쥐(상주의 별칭이다. 이렇게 쓰니 무슨 동화나라인가 쉽지만, 공동육아를 하는 부모들은 별칭을 정해서 부른다. 지금은 그렇지도 않지만, 우리 때만 해도 자연물로 별칭을 많이 정했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모두 그 별칭을 부른다. 참고로 난 홍시다. 봉투에 본명을 쓰고 괄호 열고 (홍시)라고 썼다.)라고 하자, 2호는 말했다.


"토끼가 터전에서 하늘 보면서 별자리 알려주던 게 생생해. 토끼는 아마 잊었을걸. 하지만 난 기억해. 그때가 5살인가, 6살인가."

목소리가 아련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2호는 파란 점퍼를 목까지 올려서 정숙한 태도로 절을 하고, 토끼와 다람쥐에게 '안녕~'하고 손 인사를 했다. 국이 아쉽게도 육개장은 아니었으나, 육개장 보다 더 맛있는 우렁이 된장국이었다. 2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만약 오늘 오지 않았으면, 죽을 때 아쉬워했을 맛'이라고 평했다. 그 평이 무색하지 않게, 무려 세 그릇을 먹고, 떡을 리필받아 파란 점퍼 주머니를 동그랗게 채웠다.


그 시간 동안 상주인 토끼와 다람쥐,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다른 공동육아 조합원들이 2호에게 와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2호는 어릴 적 추억을 얘기하고, 지금 학교생활도 이야기하고, '누나는 사춘기라서 여기 오지 않으며, 라면을 먹고 있다'라는 이야기도 했다. 적막했던 장례식장에 잔잔한 웃음이 퍼졌다. 대화는 모두가 평어(반말)로 이루어졌다. 오랜 동창을 만난듯한 어른과 아이 사이의 유대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뜨끈해졌다.


공동육아는 여러 가지 특장점이 있지만 난 그중에 으뜸이 어른들이 별칭을 정해서 부르고, 아이들과 평어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요즘 유치원들은 공동육아만큼이나, 생태교육을 하고, 인지교육을 강조하지 않으며, 친환경 먹거리를 제공한다. 그래서 뭐 굳이 그 고생(이건 정말 말로 설명 안 되는 중첩적인 의미의 고생이다)을 하며 공동육아를 하냐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뭐, 굳이. 꼭 반드시 보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아마 다시 돌아가도 공동육아를 택할 것이다. 그 수많은 일을 경험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가 4세에서 7세가 되는 동안, 수많은 어른들과 평등한 관계를 맺고, 그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지지를 받는 그 경험이 너무 값지다고 생각한다. 생태교육, 친환경 먹거리를 그 구조 위에서 작동하는 것이지,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다. 언어의 힘이란 건 정말 놀라워서, 애나 어른이나 모두 그 구조 위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나도 조합원 첫해 졸업식이 아직 생생하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 졸업반이 아니었는데, 졸업생들을 하나하나 안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내 친구를 떠나보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제 아이들은 모두 졸업했고, 그때 아이들을 만나도 어색하다. 아이들은 반말을 써야 할지, 존댓말을 써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거나 피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래도 나는 혼자 아는 척을 막 한다. 4살, 5살이었던 나의 빛나는 친구들에게.



장례식을 나와, 주차장에서 본 달과 가로등들. 환하다. 


상갓집을 나와 주차장에 가보니 달이 환하다. 맞다. 대보름이었다. 우리와 2호는 두 손을 모으고 잠깐 기도를 했다. 차에 타고 가며 2호는 동그란 배를 내밀며 말했다.


"육개장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우렁이 된장국도 정말 맛있었어. 그리고 나는 정말 어른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는 것 같아."


정말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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