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3.1
영화 <비밀은 없다>가 개봉했던 당시 예고편을 보았다. 정치, 어쩌구, 스릴러적인 느낌의 예고편이었다. 정치물에 딱히 관심이 없던 나는 영화 <비밀은 없다>를 관람하지 않았다. 영화를 본 건 몇 년이 지난 후, 왓챠를 통해서였다. 이후 나는 종종 생각했다. 왜 예고편이 그런 느낌이어야 했을까를.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라는 명제로 미루어보자면, <비밀은 없다>를 명백한 정치 스릴러물로 압축한 예고편은 타당한 듯도 하다. 하지만 정치판 이야기보다는 연홍의 얼굴이 드러나는 예고편이었다면, 이 영화의 흥행 여부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그만큼 <비밀은 없다>는 내게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 같은 영화이면서도, 동시에 가로 30cm에 세로 20cm의 작은 모니터로 감상했을 때에도 그 질주하는 속도감이 어마어마했던, 적어도 내게 있어 분명한 웰 메이드 영화였다. 그 중심에는 연홍이 있었다.
이경미 감독 영화의 여자들은 뭔가 뾰쪽하고 신경질적이고 과민하기도 하고, 말하자면 히스테리적이다. 뜬구름 잡거나 멍청하거나 괜히 트집 잡고 오해하려고 작정한 듯 구는 여자들. <미쓰 홍당무>에서도 그런 기이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여자들이 등장하지만, 그건 공효진 배우가 내보이는 특유의 대사 처리 방식과 연기 호흡에서 크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동시에 배우 특유의 그것으로 인해 그 히스테릭함이 얼핏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으로 무마되기도 했다. 하지만 <비밀은 없다>에 이르러, 이경미 감독 영화에서 이미 기이했던 여자들은 더 기이한 여자들로 업그레이드된 한편, 영화 그 자체가 아주 신경질적인 무엇이 되어서는 보는 사람을 아주 대차게 밀어붙인다.
<비밀은 없다>에는 흔히 이해도 안 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히스테릭한 여자로 치부되는 인물들이 가득하다. 주인공 연홍만이 아니라 연홍의 딸 민진과 민진의 친구 미옥도 그렇다. 음울하고 음침하며, 다소 주눅이 들어 보이기도 했던 미옥은 뒤로 갈수록 제 모습을 드러내며 앙칼진 목소리로 욕을 싸지르기도 했다. 듣기 싫은 목소리로 빽빽 소리를 내지르는 이 기이한 여자들은 어떤 실마리나 단서를 발견하면 당장 채내어 주도적으로 진실을 발견하고, 그 진실 앞에 상처 받은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무섭게 협박한다. 특히 신경질적으로 희번덕이는 주인공 연홍의 얼굴이 압권이다.
내게 이상한 여자의 가장 첫 번째는 엄마다. ‘엄마’는 각자 모두에게 다른 성격에다 다른 사람이겠지만 내게 있어 우리 엄마는 이상한 고집으로 똘똘 무장한 채 하루를 매일같이 반복하는 여자다. 답답해 보이는 삶이 전혀 답답하지 않다는 듯 일상을 매일같이 영위하는 사람. 그리고 이따금 아주 신경질적이기도 한데, 대다수 내가 본인의 생각만큼 해내지 않을 때 그렇다.
이를테면 자신의 세계 안에서 꼭 지켜야 하는 것들―그러니까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를 한다, 머리를 말리고 나면 바닥에 놓인 머리카락들을 정리한다, 화장실을 사용한 뒤엔 슬리퍼는 꼭 비스듬하게 누인다, 같은 것들이 다른 이―특히 나로 인해 무너졌을 때. 그녀는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어 내 옆에 앉아서는 종일 ‘그렇게 했어야지 왜 안 그랬어’ 머리카락을 하나둘씩 쩍쩍, 테이프로 찍어 누르며 내게 신신당부한다. 그리고 수십 번 더 반복한다. 왜 이렇게까지. 마주칠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하는 참으로 기이한 에너지이다. 나에겐 사소하지만 본인에겐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들로 드러내곤 하는 이 신경질은 <비밀은 없다>에서 연홍이 위기의 순간 드러내는 뾰족한 아우라와 닮아 있다.
종종 우리 엄마는 무언가 궁금한 일이 생기면 본인이 납득할 때까지 물고 늘어지기도 한다. 얼핏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수준으로 저에게 중요한 것을 밀어붙인다. 폐를 끼치더라도 본인에게 중요한 문제에 아주 몰입하는 것. 그게 안기는 묘한 힘―그러니까 아주 저 바닥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어떤 꿈틀거림을 짐작할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징그럽다’고 느껴지기까지 하는 무엇. 아주 사소한 것으로 이럴진대 사소하지 않은 아주 커다란 일이 들이닥쳤을 때 우리 엄마는 얼마만큼 집요하고 신경질적일까. 엄청나게 징그러울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가능한 애틋한 불편함도 있을 것이다.
영화 <비밀은 없다>가 내겐 그랬다. 무자비하고 징그러운 동시에 이상하게 사랑스럽고 애틋했다. 우리 엄마가 종종 내보이는 불가해한 에너지를 자꾸 떠올리게 만드는.
‘공부머리가 없는’ 주인공 연홍은 글쎄, 처음에는 이상한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 대량의 김밥을 만드는 연홍은 딸에게 김밥 하나를 먹이거나, 잠깐 외출하겠다는 딸을 잠깐 타박하다가도 친구 전화번호 하나 남겨두고 가라고 말하는 소위 착하거나 따뜻한 엄마 같다. 남편의 외조에도 열심히인 그런 엄마. 그녀의 꿈은 대통령의 부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딸이 실종된다. 온다고 했던 딸이 영영 오지 않는다.
연홍은 딸의 행방을 쫓는다. 선거 운동 때문에 대놓고 딸을 찾을 수는 없어서 연홍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집요하게 딸을 쫓는다. 딸의 일기를 한 글자 한 글자 집어삼킬 듯이 읽고, 딸의 이메일을 뚫기 위해 딸로 위장해서 고객센터에 연락도 하고, 그 와중에 딸이 저에게 남기고 간 것들이 대다수 거짓이었다는 것 역시 알게 된다. 가장 잘 안다고 자부했던 딸이 실은 아주 난폭하고 불량한 청소년이었다는 사실 앞에 연홍은 조금 당황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불량한 딸이면 가출이 아닐까요, 곧 돌아올 거예요.” 말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계에서 연홍은 딸을 놓지 않는다. 딸은 이미 잘 모르겠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는 딸은 역시 이상하고, 그 이상함은 분명한 위기이기 때문이다. (집안에 도청장치가 있다는 사실을 연홍이 발견하는 장면은 그녀가 얼마나 강박적으로 딸의 실종을 대하고 있는지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경상도 출신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 전라도 출신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왔던 연홍은 딸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산하기도 한다. 내내 얌전한 서울말을 쓰던 연홍은 언제부턴가 “염병” 소리를 내뱉으며 온갖 상스러운 욕을 내뱉는다. 딸이 아무래도 죽은 것 같다는 예감은 사실이 된다.
딸은 죽었지만 연홍은 그치지 않는다. 이제 풀어야 하는 문제는 딸의 죽음이다. 그 과정에서 연홍은 딸 민진이 단순 불량학생이 아니라 실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고 유일한 친구는 미옥뿐이었으며, 자신의 남편이 저지른 불륜행각을 벌써 알았지만 자신에게 어떤 말도 않은 채 저만의 복수를 감행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집 밖에서의 모진 일들을 그 무엇 하나 엄마에게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 아니 나는 진즉에 예감했던 것 같은데, 왜 그 모든 이상한 것들을 알아채지 못했을까. 전부를 안다고 생각했던 딸에 대해 그 무엇도 몰랐다는 사실에 연홍은 자책하는 한편 주도면밀하게 복수를 계획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자”라고 내내 읊조렸던 연홍은, 공부머리가 없는 멍청한 여자라서 가능한 방식으로 남편의 미래를 박살 낸다.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저의 꿈도 모조리 내놓은 채로, 그 어떤 타협의 여지도 없이. 딸이 실종된 상황에서 그깟 정치가 무예 그리 중요하냐고 남편을 무섭게 타박하던 연홍의 당연한 방식이다.
이야기가 막바지에 치닫기까지, 영화 전반에는 강박적 기운이 만연하다. 이 기운은 영화의 호흡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영화의 호흡은 정말 일상적이지가 않은데, 특정 대사가 나오는 타이밍이나 특정 장면이 출현하는 방식에 '모난 리듬'이 있다. 이 리듬이 연홍의 내적 상태를 압축적으로 내보인다. 딸을 잃은 한 여자의 마음이 어느 모난데도 없이 정갈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걸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비밀은 없다>는, 영화 그 자체가 연홍의 집요한 성정이 되어 연홍을 밀어재끼고, 연홍은 단지 밀려나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주도적으로 리듬을 잡아챈다. 그런데 이 밀고 당김이 다소 물러지는 순간이 있다. 영화의 가장 마지막이다.
이 영화가 진정 복수극이고자 했다면 엔딩은 연홍이 남편(의 지위와 성공)을 박살 내는 장면이어야 했을 것이다. 후로 뉴스 장면 같은 것들이 연달아 나오면서, 당선자 김종찬의 섹스 동영상 파문이니 어쩌니 하는 장면이 첨가되면 더욱 평이하고 익숙하지만 속은 시원할 복수극이 완성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밀은 없다>는 그러지 않는다. 애초에 누군가를 죽여 버리는 복수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이미 잘 아는 연홍은 죽여 버리고 싶은 남편을 죽이지도 않았다. 죽이지 않고 살아남은 자의 미래를 박살냄으로써 다른 의미의 통쾌함을 선사하긴 하지만, 영화의 목적은 그런 통쾌함에 있지 않다. 영화의 엔딩은 아주 사적이다.
연홍은 딸이 묻혀있던 숲에 웅크리고 앉아 딸을 그리워한다. 복수에 도달했더라도 그게 실패일 수밖에 없는 건, 딸은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그때 연홍은 미옥을 만난다. 연홍은 미옥이 딸인 줄로만 알았을까, 얼른 달려가 덥석 안는다. “민진아, 추웠지. 괜찮아, 엄마야.” 죽은 딸이 여기 있을 리가 없다는 건 연홍이 더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건 딸인 동시에 딸의 유일한 친구 미옥―딸의 죽음과 그 이유를 알고 끝까지 (제 나름의) 복수를 가늠해온 동지와의 포옹이다. 그리고 연홍이 “우리 딸이 지 엄마는 좋다 하디?”라고 물을 때, “엄마는 멍청해서. 그래서 지가 지켜줘야 한다고 그랬어요.” 딸의 마음이 살아남은 미옥의 입을 타고 연홍에게 닿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엄마와 딸’이라는 이 견고하고 무서운 관계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우는 얼굴로 내보인다. 복수니 스릴러니 정치니 하는 것들은 그 무엇도 아니게 된다. 영화가 내내 숨 막히게 달렸던 건, 이 마지막을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줄곧 있던 기이한 속도와 리듬 덕분에, 가장 마지막의 판타지 같은 평온함, 그리고 이어지는 울음이 커다랗게 왔다.
보통의 삶과는 영 상관없이 돌아가는 ‘정치하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기필코 악을 썼던 여자들 사이의 정서적 연대가 마지막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비밀은 없다>가 숱한 정치 스릴러물과 다르게 읽히는 이유이다.
혜정
201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