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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Kim Jul 28. 2021

연봉이 낮아 이직을 하겠습니다.

돈 밝히는 직장인의 합리적 선택 썰

오랜만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생겨, 최근의 개인적인 상황과 생각에 대해 좀 적어봅니다.


기존에 올렸던 글은 경험에 대한 독백성이 강한 정리 성격이 있었다면,

이번 글은 어떤 글 보다 누군가 독자가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 표현방식을 살짝 바꾸어 보았습니다.


며칠 전, 회사에 퇴사 의향을 통보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사고방식의 특징은 연역적 방식에 익숙한 듯합니다. '퇴사'라는 결론을 내기 위한 여러 사실적 사건이나 판단이 모여 퇴사를 결정했다기보다는, '퇴사를 해야겠다'라는 결론이 서고 나서 내가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를 하나하나 판단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적으로 결정했다기보다, 방식의 차이일 뿐이지 차분한 사고의 과정을 통해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스스로 합리화하고 싶어 꼭 들어맞지도 않는 '연역'이네 '귀납'이네 하는 이야기로 시작을 합니다.


 아직, 퇴사 일자가 정해진 것은 아니고 세상일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적는 이 글은 다소 성급한 감이 있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의지와 달리 큰 상황 변화가 있지 않는다면 제 퇴사 계획은 며칠 차이 정도의 오차만을 둔 이미 확정된 사실일 것 같습니다.


 퇴사를 결정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모두 제각각이겠지만, 비중의 차이가 있을 뿐 대게 비슷한 범주의 이유를 가질 듯합니다. 오늘은 개인적인 상황에 대한 글이니 만큼 제 이야기에만 집중해 보겠습니다.


저는 이래서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1. 회사의 상황


 제가 다니는 회사는 온라인 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퇴사 예정자의 회사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한 글로 성격이 변질될 수 있어, 이 부분은 조심해서 써야겠네요.


 올해로 회사생활은 12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오랜 기간 한 그룹 안에서 오프라인과 온라인 유통 플랫폼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해외에서 작지만 알찬 이커머스 플랫폼 운영의 기회를 갖게 되기도 했고요. 한국으로 돌아와 이커머스를 운영하는 우리 회사의 책상에 앉았을 때, 가슴속엔 온갖 상처와 아픔으로 가득한 상황이었습니다. 해외 사업을 철수하면서 들어왔었던 상황이었거든요.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에 들어올 때 느꼈던 가장 큰 갈증은 '그래, 그럼 대체 나보다 수십 년 더 오래 고민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커머스란 뭐야?' 하는 치기 어린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노답'이었습니다. 이커머스가 어떤 건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답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듣고,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것 중에 어떤 것도 제게 답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조직의 규모가 크고, 더 파편화된 업무 R&R 때문인지 저만큼 고민한 사람도 없겠구나 하는 다소 헛된 자부심만 늘어나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래도 최소한 저는 턱 밑까지 치고 올라오는 '회사의 생존'에 대한 위기감 속에서 이커머스의 본질과 사업모델에 대해 고민을 하며 지냈는데, 여기서 느끼는 상황은 '회사생활'에 대한 고민이 우리 사업의 생존과 성장에 대한 고민보다 더 크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주변 동료들이 그렇고, 저도 그렇게 변해 가더군요.


 회사가 잘못한 건 아니죠? 이커머스 라는게 정답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적인 부분들과 어떻게 그 성장을 관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들은 시장에 이미 기계적인 답 들이 나와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고객의 반응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부분들이 핵심적인 쟁점이 되겠죠. 그런 의미에서 조금 더 질문을 좁혀 보자면, '대체 우리 회사는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주려고 하는 거야?' 하는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정답이란 없습니다. 합의된 방향성과, 달리기가 필요할 뿐이죠. 


 이런 고민에 대한 답을 구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원인을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자면, 회사의 규모와 내가 맡은 역할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 상황의 발생, 함께 일하는 동료 또는 리더십 라인에 있는 선배, 상사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에서 오는 기대와 다른 실망감들이 그 안에 있을 것 같습니다. 


  회사의 성장 정체가 보여주는 지표들은 그런 상황에 대한 결과물로는 꽤나 가슴 시리면서도 정확한 결과물이었던 셈이죠. 쐐기를 박았습니다. 


2. 회사에서의 나의 위치, 평가


 해외 주재원 생활을 돌아오고 나면, 많은 이들이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역할의 변화에서 오는 부적응입니다. 소위 C-level이라고 불리는 고위 매니징 롤에서, 단순 업무 정도 수준의 역할이 주어지는 상황으로 변화가 오기 때문에 역할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저의 경우에도 꽤나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또 이런데 적응은 빨랐던 것 같습니다. 편하게 생각하면 같은 월급 받고 일이 줄어든 셈이니까요.


 그런데 정작 더 큰 문제는 '역할 갈등'이 아니라 '역량 갈등'에 있었습니다. 해외에서의 생활과 매니징 롤을 통해 얻게 된 값진 경험들이 한국에서는 쓸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우선 팀 내에서는 저도 한 명의 팀원일 뿐이고 직접 리딩 해야 할 팀원은 없습니다. 개인적인 성향은 리더십 쪽에 강점과 니즈가 분명한데, 이런 역할이 주어지진 않으니 애써 키워 놓은 역량은 의미가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의 회사에서는 10년 정도 더 기다리면 비슷한 기회가 생길 수는 있는 정도의 구조입니다. 이커머스 전반에 대한 이해 역량도, 각 영역에서의 전문성을 오래도록 길러오도록 조직구조가 짜여 있는 지금의 회사에서는 각각의 영역에 비하면 전문성이 떨어지고, 전반적인 이해 역량을 활용하기엔 직급이 낮습니다. 


 이 회사에서 원하는 해당 직급에 기대하는 역량과 제가 가진 역량이나 경험의 fit이 서로 맞지 않는 셈이죠.


3. 회사생활 성적표


 한국의 12년 정규 교육과정과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매 학기 성적표를 받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성적표가 없으면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알기가 쉽지 않죠. 입사 후 처음 몇 차례의 인사평가 결과를 보고 난 후에, 저는 오히려 다른 결정을 했습니다. 


 당시의 인사평가가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납득할 수 없는 결과였기에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없는 회사에서의 인사평가는 애초에 보지 않겠다.라고 결론을 내린 거죠. 인사팀이 보면 놀랄 일이죠? 이런 직원은 입사할 때부터 걸렀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엇나가기 위해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부당하다고 느끼는 인사평가로 인해 자존감이 떨어지고 업무에 지장을 받는 게 싫었습니다. 사실 동료와 상사로부터의 평가는 인사평가 아니어도 더 진지하고 정확하게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계속 생활을 함께하는 동료들에게 본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피드백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상사뿐만 아니라 동료들과 저에 대해 더 직접적으로 피드백을 듣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덕분에 사원-대리-과장이 될 때까지 한 번의 누락도 없이 잘 성장해 나갈 수 있었죠. 물론 이런 배경에는 엄청난 운도 있었습니다. 승진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게 마련이니까요.


 같은 그룹 안에서의 전보였지만, 지금의 회사에 오기 전까지 저의 회사생활에 대한 태도와 열정은 항상 일관되어 있었습니다. 지난해, 해외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막 돌아와 받게 된 제 연봉이 적힌 근로 계약서의 금액을 진지하게 보게 되기 전 까지는 말이죠.


 승진과 해외 파견, 전보 등을 거치며 연봉에 대한 부분을 굳이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룹의 공채로 입사했고, 안정적인 회사의 지원 아래 성장에 초점을 맞추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거든요. 연봉은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적어도 주변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실제로도 얼마 전 까지는 그랬고요.


 회사생활의 성적표는 근로계약서에 적힌 연봉입니다.


 알고 있지만, 무시하고 지냈던 시간이 너무 오래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전엔, 성적이 좋은 걸 알았으니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될 만큼 자만했던 거였죠. 그 자만이 결국은 칼이 되어 돌아옵니다. 역시 회사에 있는 제도들은 잘 활용해야지, 혼자 잘났다고 무시하면 큰 코 다치는 거였어요.^^;


 2018년 이후로, 2021년 현재까지 단 1원도 오르지 않았더군요. 해외 주재원 시절엔 주재 수당과 기타 혜택에 묻혀 잊고 지냈다가, 2020년에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 현타가 온 겁니다. '20년에 이 부분에 대해 회사생활 처음으로 챌린지를 했습니다. 그런데 변화가 없더군요. '21년 연봉에 대한 결정이 최종적으로 소급 적용되었던 얼마 전 결과에선 회사의 전향적인 '업계 수준에 맞춘 상향' 조정 의지와 달리 제 성적표는 직원 중에 인상률이 낮은 수준에 해당되는 아주 깜찍한 결과가 적혀 있었습니다.


 나의 역량과 노력이 이 회사가 원하는 바와 맞지 않는구나!


 어쩌면 작년에 알았어야 했고, 어쩌면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평가의 결과를 보고 벌써 받아들였어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충격적인 성적표를 눈앞에 들고 보니, 그동안 보지 않고 지냈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가 회사에서 업무를 잘 못하고 있었거나, 저의 노력과 성과가 이 회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던 거겠죠? 퇴직하신 전 임원분이나 이직을 한 전 동료들이 해당 회사로 오라고 러브콜을 하는 걸로 봐서는 업무 역량 자체가 영 딸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역시 지금의 회사와 fit 이 안 맞는다는 결론입니다. 제가 부족했다는 결론으로 너무 치달으면 가슴이 아프니까 이렇게 결론 내리겠습니다. ^^


 그런데 사실, C-level 매니징 경험을 통해 얻는 재밌는 사실도 있습니다.


 같은 경력기간에 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 사람보다, 여러 회사를 거친 사람이 훨씬 더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연봉을 성적표로 이해해 보자면, 그 경험을 인정해 줘서 그렇다고 봐야겠죠? CMO로 일하던 시절에도 많은 직원들이 연봉 인상에 대한 챌린지를 했습니다. 하지만 꽤 유동적인 급여 인상 체계를 갖춘 상황이었음에도 이를 다 맞춰 주긴 쉽지가 않았죠. 결국 이직을 통한 grade와 연봉 인상이 개인적으로는 최적의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최근엔 외부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network의 확보가 중요한 리더십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 모로 이직을 통한 경험과 역량의 확장이 개인과 회사에게 서로 도움이 되는 상횡이 된 겁니다.


 회사에서 제 미래를 위해 나갈 수 있는 신호를 이렇게나 많이 주고 있었는데, 눈치가 없었던 거죠.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자조적이 되겠죠? ^^ 네, 그보다는 사실 Career 시장에서의 성적표 산출 방식이 바뀌었는데 적응이 느렸다고 보는 편이 맞겠습니다. 교외 활동과 봉사활동 점수가 입시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는데, 국영수만 열심히 파는 학생이었던 거죠.


 지금의 회사에서 좋은 연봉 인상의 결과를 갖지 못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분명히 부족한 부분이 있었을 테고, 경쟁 상황에 대한 상대적인 부분, 혹은 제가 미쳐 알지 못하는 상황이 있었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저는 빨간약을 먹어 버렸습니다.


 지금 저는 지금까지의 저의 노력에 대해 더 나은 성적표를 제시해 주는 곳과 대화 중입니다. 앞으로 어떤 역량을 더 키워 나갈 수 있을지, 그동안의 역량에 대해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지 fit을 살펴보는 중입니다. 국영수를 열심히 했는데, 교외활동 점수가 중요해졌다고 하더라도 학교마다 전형은 다를 수 있잖아요?


 인생의 중간쯤을 살고 있는 지금입니다.

 스무 살엔 이쯤 되면 인생이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인생은 흔들리고 새로 배우고 나가야 할 길이 멀어 보입니다.


 아마도 20년 후에도 같은 생각을 하겠죠? 그러기를 바라 봅니다.

 삶이 너무 정해진 듯하고, 이미 다 아는 것 같은 순간보다 기대와 설렘이 더 많은 삶이 계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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