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기록하는 일상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집 앞 산책로를 걸었다.
무더운 낮과 달리 저녁엔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연고도 없는 이 지역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할 때, 이 산책로는 처음으로 동네에 정을 붙이게 해준 곳이다.
가을엔 단풍으로, 봄에는 꽃으로, 여름엔 무성한 초록 풀숲으로 모습을 바꿔가며 날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 걷는 즐거움이 있었다.
예전에 이모가 해줬던 말이 생각난다.
이모도 결혼 후 타지에 처음 정착하고 마음 둘 곳 없을 때 날마다 산과 같은 자연을 찾아 걸었다고.
그리고 덧붙였던 말이 인상 깊었다.
서울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람 귀한 줄 모르는 것 같다고, 그래서 서울보다는 한적한 곳이 좋다고 했던 것 같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이모는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자취를 하며 직장 생활을 했는데, 그 당시에도 시끌벅적한 도심보다는 자취방 근처 넓고 트인 공원을 좋아했었다.
그때는 아이였던 내가 어느덧 그때의 이모만큼 나이가 들어서 결혼도 하고, 낯선 곳에서의 신혼 생활도 경험했다. 어느덧 이곳에 산 지 4년이 됐고, 이제 또 이곳을 떠나 전혀 다른 먼 타지로 이사 갈 준비를 하는 중이다. 오랜만에, 어쩌면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저녁 산책을 하다 보니 새삼스레 처음 이곳에 이사 와서 매일 산책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예전 이모가 했던 이야기들에 많이 공감 됐다.
나도 매일 산책로의 자연 속을 걸으며 위안을 얻었고, 그렇게 적응해 나간 이후에는 빡빡한 서울보다 훨씬 여유롭고 살기 좋은 이곳을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산책하며 찍은 사진들을 지금은 주말부부로 떨어져 지내는 남편에게 보내주었더니 남편도 참 좋아했다.
이곳은 나 혼자서 열심히 걷기도 했지만, 남편과 함께 걸었던 추억도 많은 곳이기에 그도 남다른 애정이 있는 것 같다. 이 동네에서 보내는 마지막 주말인 이번 주말에 같이 산책하자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렇게 남편과 한번 더 걸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