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이 바뀌었다. 항상 눈앞에 보이던 풍경이 아니다. 내 손에는 계란말이가 들려있어야 한다. 소영이가 김치를 넣으면 그 옆 칸에 계란말이를 넣는 것이 나의 일이다. 수북이 쌓인 계란말이 더미에서 세 개를 골라 계란말이 칸에 넣으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쏟아져 나오는 도시락들 때문에 쉴 틈이 없다. 채워야 할 칸이 쉴 새 없이 나타난다. 지금은 내 손에 칼이 들려있다. 다른 쪽 손에는 파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핀다. 누군가 불 앞에서 뚝배기를 휘젓고 있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난다. 거나하게 취한 목소리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지연아” 불 앞에 있던 아줌마가 나를 향해 소리친다. 매서운 말투지만 바깥에는 들리지 않게 한껏 숨죽인 목소리다. 멍하니 이름 부른 사람을 쳐다보니 익숙한 얼굴이다. “응, 엄마” 나는 지금 엄마 가게에 와있다.
“피곤하면 잠시 들어가 있어, 바빠지면 또 부를게” 능숙하게 내게서 칼을 뺏어들고 등을 떠민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쪽방에 들어간다. 어지럽혀져 있는 이부자리를 각 잡아 다시 핀다. 그 속에 들어가니 따뜻하고 마음은 편안해진다. 그제서야 소영이를 안 본지 한참 됐다는 것이 생각난다. ‘맞다, 이제 나 도시락 만들러 안다니지.’ 소영이와 작별 인사하던 게 생각난다. 별 기술도 없이 간단하게 반찬들을 칸 안에 넣기만 하는 되는 일이라서 몸은 적응하기는 쉬웠다. 하지만 비슷한 나이 또래가 별로 없어 마음 둘 곳이 없었다. 허전한 마음을 채워준 것은 나보다 1년 늦게 들어온 소영이였다. 기숙사도 없고 걸핏하면 잔업을 시켜 최저임금도 못 받는 공장에 젊은 애들이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소영이도 사정은 말 안 해도 나와 별 다를 게 없는 상황 같았다.
요즘 계속 눈을 뜨면 새로운 장면이 나타난다. 어쩌다 눈을 뜨면 놀이터에 앉아있고, 또 정신 차려보면 방에 멍하니 앉아있다. 매일 공장 벨트 앞에 앉아 멍하니 반찬을 옮기던 때는 장면 바뀔 일도 없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 서럽다. 들어올 돈은 없고 내가 놓여 있을 칸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지워진 기분이다. 계속 장면이 바뀌는 것은 진득하니 한 공간에 있을 수 없는 내 처지 때문이었다. 엄마 가게가 바빠지면 주방에 나가야 하고, 오빠가 전화하면 병원에 계신 할머니 수발을 들러 나서야 한다. 내가 있을 곳은 없어도 필요한 곳은 많다. 돈 나올 곳은 없어도 돈 나갈 곳은 많다.
엄마는 자그마한 술집을 꽤나 오랫동안 운영하셨다. 나름대로 단골도 생기고 메뉴판도 한 장이 더 늘었다. 젊었을 때 시장에서 전을 부쳐 팔던 때와는 다르게 골골대는 소리도 줄었다. 주방에 하루 종일 서서 불 앞에 있는 것은 마찬가지여도 자기 가게 하나 있는 것은 또 다르다며 자주 뿌듯해하셨다. 새벽까지 술을 들이 붓다 떠나는 손님을 뒤로하고 엄마는 허리를 부여잡으며 쪽방에서 잠을 청한다. 기계한테 일을 뺏긴 나는 등 돌리며 잠이 든 엄마를 한 동안 쳐다본다.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엄마의 앓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리는 듯하다. 나는 다를 줄 알았다. 나는 그렇게 안 살 줄 알았는데, 공장에서 쫓겨난 내 신세가 이제 와서 다시 또 우습다. 엄마에서 딸로 장은 바뀌었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어두침침한 쪽방도 그대로, 든 거 없는 통장도 그대로, 파스만 여기저기 널려있는 화장대도 그대로. 지긋지긋한 가난은 장이 넘어가도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