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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izelnut Jul 24. 2020

울음은 찾아오지 않았다.

   울음은 결국 터져나오지 않았다. 나는 끝끝내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은 것이다.      


   과일과 꽃이 준비되고 국화꽃이 한 다발 들어왔다. 우리는 두꺼운 겨울 옷들을 주섬주섬 벗었다. 상복으로 갈아입고 할머니 사진 앞에 섰다. 점점 몸이 떨려오는 게 느껴졌다. 갑자기 서늘해진 날씨 탓인지 갑자기 닥쳐온 슬픔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다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직원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바라보기만 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이미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 할머니를 요양 병원에 모시게 됐다고 했을 때 듣자마자 눈물이 솟아나왔다. 병을 늦게 발견한 것이 패착이었다. 그렇지만 항상 오래 살아서 미안하다는 할머니의 말을 떠올려 보면 지금 상황이 꼭 나쁜 일도 아닌 것 같았다.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 할머니는 어딘지 모르게 미련 없는 사람 같아 보였다. 작은 감기에 걸려도, 관절염이 또 도져도 병원은 얼씬도 하지 않는 모습이 꼭 그래보였다. 그저 “죽을 때가 됐나보지”라는 말과 함께 가족들을 힘 빠지게 만들었다.   

  

   요양 병원의 자동문은 아주 천천히 열렸다. 음식점이었다면 원조라는 문구를 크게 써두었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주변 어디보다도 오래돼 보이는 건물이었다. 엘리베이터도 느리고 간호사들의 행동도 느렸다. 의사선생님은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들 보다 조금 어릴 뿐이었다. 모든 게 느린 요양 병원은 다른 세상 같았다. 깨끗하지만 지저분한 오래된 벽지와 묵은 때만 붙어있는 작은 창문에 둘러싸인 할머니는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났다. 이미 그때 다 울어버렸다.     


   화장이 끝나고 작은 뼛조각들만 연기를 내뿜으며 놓여있었다. 요양 병원에서 처음 마주봤던 할머니가 순간 떠올랐다. 마치 병상 위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할머니가 순식간에 재로 변해버린 것만 같아 마음이 일렁였다. 내가 처음 요양 병원을 찾았을 때 할머니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나를 알아봤다. 눈을 너무 천천히 깜빡여서 시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지만 결국 눈동자는 확실히 나를 향했고 입에서는 내 이름이 새어나왔다. 마치 내 이름이 나올 리 없는 상황에서 불린 것 같아 깜짝 놀랐다. 그 놀라움은 작은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결국 병실 밖으로 쫓겨난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울음을 크게 울었다.     


   시간이 허락됐다면 더 자주 찾아가고 더 자주 울음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요양 병원에선 한 달 만에 연락이 왔다. 모두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기다리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 버린 것이었다. 그 비현실적인 소식은 어느 누구에게도 울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제대로 차려진 장례식장에서 울음을 참을 필요가 없었다. 울음은 누구에게도 찾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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