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누가 무엇이 바이러스인가
영화 ‘괴물’에서 송강호는 결국 미군에게 붙잡혀 바이러스 검사를 하게 된다. 새빨간 바닥의 수술실에 사지가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송강호가 두개골을 열기 위해 누워있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이 꼽는 명장면이다. 흔하지 않은 수술실의 빨간 바닥과 수술 장면에는 잘 쓰지 않는 cctv 시점의 평행한 카메라 각도는 관객들에게 장면에 대한 생경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마취제도 들지 않는 송강호는 맨 정신으로 머리를 열어 뇌 검사를 진행하게 된다.
수술 장면은 통제 당국의 고집을 보여준다. 괴물과의 접촉으로 인한 바이러스는 없다는 것이 영화 속 설정이다. 단순히 수술 중 쇼크로 죽은 미군이 있을 뿐 괴물과 접촉해서 직접적으로 사망한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 정부는 이 사실을 믿지 못하고 반인륜적인 수술을 강행한 것이다. 바이러스가 없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처음 정부 차원에서 발표한 내용을 번복할 수가 없어서, 혼란이 가중된 사람들을 더 이상 혼란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서, 아님 정부 마저도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국민들은 바이러스의 존재에 대해 철썩 같이 믿게 된다.
실제로 바이러스가 사회에 침투한 현실에 영화 ‘괴물’은 비유에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혼란을 몸소 겪어야 하는 시민들과 이를 해결하고자 통제하는 정부의 관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 현실과 맞닿아있다. 정부는 불필요한 두려움과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투명한 관리를 약속했다. 확진자의 경로를 모두에게 오픈하고 집단 감염의 사태를 발 빠르게 알린다. 현재 얼만큼의 병상이 마련됐는지, 완치가 된 환자는 얼마나 되는 지 모든 것을 시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혼란에 직접 맞대응하는 방법으로 사태를 헤쳐나가고 있다.
사회에 전염병이 돌고, 자연 재해가 덮치고, 재앙과도 같은 일들이 벌어지면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정부에서 질서 유지를 위해 협조를 부탁해도 개개인의 생존권이 달린 상황에서 두려움과 이기심은 불쑥 불쑥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공공 보건 차원에서 모두에게 공개된 확진자의 경로가 일방적 질타에 이용되기도 하고, 악의적으로 루머를 퍼뜨리는 경우도 종종 발각된다. 정부의 투명한 공개 방침은 개인 인권 문제와 대치돼 갑론을박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영화 후반부에 한강에서 시민들과 경찰들이 대치하는 시위 광경이 펼쳐진다. 시민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송강호 가족을 돕자는 내용이 얼핏 보이게 된다. 시민들은 사회를 병 들게 하는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판단을 내렸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실체도 없는 병균이 아니라 사실을 은폐하고 강압적인 질서 유지만을 힘쓰는 정부에 분노하게 된다. 결국 괴물 역시 정부가 준비한 독극물로 처리되는 것이 아닌 한 가족의 치열한 혈투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회를 혼란에 빠지게 한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확실히 판단해야 더 이상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