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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izelnut Aug 03. 2020

가장 좋아하는 문장, <바깥은 여름>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 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이었다.

   나는 공시생이다. 


매일 아침 버스에서 내리기 두 정거장 전에 핸드폰으로 커피를 주문한다. 사이렌 오더로 주문한 커피는 내가 카페를 들어갈 때 쯤 나와있다. 거의 첫 손님으로 입장해서 2층 창가자리에 자리 잡는다. 햇빛도 잘 들어오고 지나다니는 사람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해서 이 자리를 고집한다. 한참을 공부하다보면 알람이 울린다. 그제서야 기지개를 펴고 대충 짐만 챙겨서 맞은편 학원으로 들어간다. 선생님도 좋고 규모도 큰 학원이라서 체계가 잘 잡혀있다. 혼자서 하면 풀어지기 쉬우니까 프로그램도 잘 짜여져있는 학원에 많이 의지하는 편이다. 연초에, 연말에 두 번 크게 이벤트를 하는데, 기간만 잘 노리면 꽤나 싼 값에 등록할 수 있다.      


   학원 공부가 끝나면 머리라도 식힐 겸 사람들과 저녁을 먹으러 간다. 하루 중에 유일하게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비싼 음식은 못 먹어도 배를 든든히 채우고 공부해야 몸 안 상한다는 나름의 고집이 있다. 이번에 학원에 새로 들어와 친해진 사람이 또 인턴 때 이야기를 한다. 이름만 말하면 알 만한 데서 인턴했다고하니까 다들 관심이 넘쳐난다. 어떻게 그런데서 인턴활동을 했냐고 물으니 그냥 수줍게 아는 사람이 소개해줬다고 얼버무린다. 역시 인맥이 중요해. 사람들의 대화 주제는 인맥 자랑으로 이어진다.      


   자정이 넘어가면 공부하다가도 졸린 눈을 부릅 뜨고 학원 1층 편의점으로 향한다. 캔 커피도 사고, 핫바며 컵라면이며 군것질할 것들을 골라댄다. 차례대로 바코드가 찍히는 것을 구경하다가 낯 익은 책에 눈길을 빼앗긴다. 편의점 알바생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이 사람도 우리랑 같은 공부하는구나. 왠지 모를 동질감에 웃으며 인사를 하고 편의점을 나온다.     



   나는 편의점 알바생이다. 

편의점 알바는 간간히 앉아서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인기가 많다. 나도 공무원 준비를 하면서 여러 알바를 섭렵했지만 그 중에서도 편의점 알바가 제일 효율적이다. 졸릴 때는 틈틈이 청소도 하고 물품도 채워넣는다. 가끔 유통기한이 임박한 음식들을 가져갈 수 있어서 식비도 많이 줄었다. 이제 다음 타임 알바만 오면 바로 옆 건물 고시원에서 잠을 잘 수 있다. 눈만 붙이고 일어나면 대충 빨리 씻고 출발해야 도서관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또 대학교 시험기간이 다가오면서 사람이 많아졌다. 자리를 못 잡는 날에는 머릿 속이 캄캄해진다. 돈 안들고 이렇게나 오래 앉아있을 수 있는 곳은 도서관만한 데가 없다.      


   점심은 학식으로 대충 때운다. 시간도 절약되고 가격 부담도 없기 때문이다. 같은 자리에 앉아서 공부만 하면 잠이 쏟아지는 데 그 순간만 잘 참으면 된다. 운 좋을 때는 유통기한 다 된 커피를 편의점 도착하자마자 마실 수 있다.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하다가 우연히 같은 공부를 하는 사람을 찾았는데, 인터넷 강의를 자주 듣는다. 어깨 넘어로 구경해보니 꽤나 꼼꼼하게 가르쳐서 홈페이지를 찾아가봤다. 현장 강의가 아닌데도 생각보다 가격 부담이 크다. 아버지가 은퇴하신지 얼마 되지 않아 또 그 큰 돈을 부탁 드릴 수는 없다. 괜히 더 싸게 들을 수 있는 이벤트는 없나 뒤적이다가 이내 내가 정리한 요약 노트로 시선을 옮겨온다.  

    

   나는 금수저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너무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라 만날 일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단지 매일 책을 펴는 나의 공간은 언제까지 겨울일까 문득 두려워질 뿐이다. 버스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 편의점에서 계산하는 여러 손님들 모두 나름의 여름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풍요 속에서 나만의 추위를 견뎌낸다. 내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 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이었다. 너무나도 잘 보이는 유리 구슬 바깥의 모습에 더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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