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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izelnut Jul 24. 2020

최저에 갇힌 삶

   너는 항상 작은 아이였어. 같은 반 아이들 중에 나이도 가장 어리고, 또래 중에 키도 제일 작았지. 지금 생각해보면 왜소했을 뿐 아니라 행동하는 것도 작았어. 항상 움츠러들어 있었지. 어딜가나 눈치를 보고 누군가에게 기대하는 것도 작았어. 항상 작은 아이였던 거지. 그럴만했어. 집에 가면 아무도 없었으니까. 자고 있으면 어렴풋이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엄마, 아빠가 들어오시는 소리가 들렸어. 잠결에 작은 몸을 일으켜 반기면 조용히 이마에 입만 맞추고 가시곤 했지. 주말에도 엄마, 아빠 보기가 꽤나 힘들었어. 다른 때보다 일찍 들어오시긴 했지만 항상 피곤에 절어 주무시거나 티비를 보시곤 했으니까.      


   그렇다고 추억할만한 일들이 하나도 없지는 않았잖아. 생일이면 꼭 가던 햄버거 집이 있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친구들은 주말에도 몇 번 씩 먹고 오곤 했었던 것도 같아. 세 가족 생일을 손꼽아 기다리다 보면 그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햄버거 집에 갈 수 있었어. 엄마는 항상 달짝지근한 고기가 들어있는 햄버거를 시켜주셨는데, 같이 나오는 작은 장난감이 내 생일 선물이었지. 작년에 받은 장난감이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쯤 받아든 새로운 장난감은 생일을 빛내주기 충분했어.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지.      


   내가 지금에서야 너에게 편지를 쓰는 건 이제는 그때에 갇혀있고 싶지 않아서야. 내가 20년 전 나 자신에게 다시 말을 걸 수 있는 건 이제야 그때의 상황들을 이해하게 됐다는 거지. 너는 어린 나이에 항상 전전긍긍하며 살았어. 친구들이 학원에 다니는 모습을 보고서는 부럽다기 보다 무서웠어. 매일같이 학원을 돌며 공부하는 아이들을 절대 따라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다고 부모님한테 학원 한 번 보내달라고 말한 적이 없었어. 너는 가장 두려워했던게 부모님의 눈빛이었으니까. 미안해하면서 안타까워하며 쳐다보는 눈빛이 가장 두려웠지. 밤 늦게 거실에서 들려오는 한숨 소리가 가장 무서웠던 기억이 나. 엄마의 불안함이 내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왔지.      


   이제는 그때의 모든 게 최선이었다는 걸 알아. 쉬지도 못하는 빠듯한 일상에 하나 있는 딸을 데리고 큰 맘 먹고 간 동물원은 몇 번이고 사장님께 머리를 숙여 얻어낸 휴가였을 테지. 생일이라고 어떻게든 맛있는 걸 먹이려고 데려간 햄버거 집도 몇 번이고 점심을 거르며 모은 돈으로 만들어낸 추억이었을 거야. 최저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행복한 가정을 따라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난 딸에게는 그마저도 최저의 추억이었으로 자리잡게 됐지.     


   이제는 알아서 다행이야. 그때는 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었다는 걸. 사회에 나와 보니까 간절했던 엄마, 아빠를 이해하게 됐지. 상황이 최저였고, 손에 든 돈이 최저였고, 여유가 최저였지만 내가 누린 것 만큼은 최고였다는 걸 알아. 하지만 그 부족했던 마음이, 여유 없었던 상황이 결국은 지금까지도 따라다녀. 돈을 보면 벌벌 떨고, 마음껏 좋은 옷, 좋은 음식 사먹지 못하는 모습이 마치 옛날 최저의 기억에 갇혀있는 것 같아. 악을 쓰고 공부하고 이 악물고 돈을 벌고 있지만 가난한 추억에 값을 치르느라, 가난한 가정에 묶여있느라 최저의 기억에 벗어나질 못하고 있어. 가장 두려운 건 미안해하는 엄마의 눈빛을 잊고 싶었는데, 결국 나도 어린 나의 아들에게 같은 눈빛을 보내고 있을 까봐 그게 가장 두려워. 결국은 최저에 갇힌 나의 삶이 가장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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