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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 Nov 04. 2022

01   그래, 나 다시 시작한다!

언제든 이날이 올 줄 알았어. 이제 마흔 다섯이야!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나는 나의 꿈을 몰랐다. 그저 좋은 대학을 가고, 대학원을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고. 그저 이 속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또는 이미 차지한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더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갈 뿐이었다. 그런데 마흔이 다 되어 가면서, 내 인생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정말 이대로 죽을 것인가. 정말 이대로 볕이 잘 드는 어느 납골당의 유리벽 안에 갇혀, 그저 잘 먹고 잘 살다간 늙은이로, 내 이후의 사람들에게 기억조자 되지 않게 그렇게 죽어갈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들.


  사실 그랬다. 꿈은 있었지. 그 꿈이 아마 솔직한 내 꿈이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어느 교실에서 갑자기 든 생각이, 나는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아마 '인간시장', '제 5공화국' 뭐 이런 시대극을 보면서 여자기자라는 것이 내 적성에 딱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따지기 좋아하고 옳은 게 무엇인지 늘 고민하고, 뛰어다니기 좋아하고 설쳐대기 좋아하는 내 성격에 정말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 

  그러다가 이라크 내전에서 이진숙 기자가 종군기자가 되어 방송에서 나올 때 이상하게, 저게 아닌데, 저거 재미없겠는데, 하는 생각에 얼마잖아 기자를 포기했던 것 같다. 그녀의 특이한 어투, 먼지 폴폴 날리며 피폐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서 전쟁의 참사를 알리던 그녀. 그런데 이유없이 그녀의 말이 전혀 와 닿지 않았고 끌리지 않았다. 좀더 매력적인 목소리와 좀더 당차 보이는 여성이었다면 끌렸을까? 그당시 이진숙 기자는 너무 피곤해 보였고 재미없어 보였다. 심지어 본인이 너무 피곤해서 전쟁따위는 관심이 없다는 말투였다. 사실 본인은 매우 객관적인 어투로 최선을 다했을 텐데, 내가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난 아마 먼 훗날의 그녀의 답보를 이미 온 몸으로 느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으로 가진 꿈은 '작가'였다. 당시 친구들을 통해 이문열의 책을 처음 접하고, 그의 광대한 나레이션과 말빨에 그만 넋을 잃고, 글과 말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사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게 된 것 같다. 작가가 되어 이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고, 아직 죽기엔 너무 이르다고, 더 아름다운 곳을 내가 보여주겠노라고 말하고 쓰고 살고 싶었다. 세상에 절망한 사람들에게 아직 네 삶은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냥 죽기에는 아직 다들 아까운 삶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대학교 입학을 하면서 큰 삶의 변화에 적응해 가면서 너무 쉽게 평범한 삶과 타협을 했다. 그저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며, 보다 좋은 자리를 선점을 하는 게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채, 이십 여 년을 살아왔던 것 같다. 당시 경제가 호황이어서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 신입사원으로 당연하게 입사했고, 사원에서 대리로 승진하기까지 오로지 내 삶은 기업의 스케쥴, 기업의 목표대로 움직였다 내가 속한 브랜드의 목표가 내 일 년의 삶의 목표가 되고 내 기도제목이 되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이게 맞다는 주위의 함성에 만족하며 이렇게 사는 게 다들 맞게 가는 거라고 스스로 위로했던 시간들이었다. 


  직장을 다닌 채로 결혼과 출산, 육아의 시간을 지나면서 그렇게 이십 여년의 시간이 흘러 나는 어느새 마흔 다섯의 출발점에 서 있다. 그냥 그 함성에 맞춰 열심히 달려갔다면 지금쯤 나는 내 벽골당의 칸을 몇 칸 더 올렸을 테고 가장 양지 바르고 빛나는 골든 칸, 고객의 눈 높이 칸에 내 죽을 곳을 확보해 놓았을 테고, 죽어서 반짝반짝 빛날 수 있었겠지만, 이제 나는 이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의 내 목숨의 목표를 하필이면 정확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삶은 살아서 반짝여야 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가졌던 막연한 작가로서의 꿈이, 그저 미루고 미뤄져 마흔 다섯에 이루어지는 것. 더 늦지도 말고 더 이르지도 말고 딱 마흔 다섯에만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이 지금 내 앞에 있다. 말과 글을 통해 세상을 살리고, 아직도 너의 삶은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있는 거라고, 자신을 부숴가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괜찮아, 살 만해, 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데드라인을 마흔 다섯으로 정해 놓은 것은 별 의미는 없다. 그저 내가 미룰 수 있는 마지노선이 언제일까, 언제까지 게으름 피울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다가, 시대의 전설 박완서 님의 등단이 마흔 다섯이셨다는 말에, 나의 마지노선도 마흔 다섯으로 정해 버렸다. 적어도 시대를 바꿀만한 글을 남기려면 마흔 다섯에는 등단을 해야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고, 그걸 핑계로 한 해, 두 해 미루다가 올해 드디어 비킬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마흔 다섯이 되고야 말았다. 


  마흔 다섯이 되던 밤, 한 친구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이제 드디어 니가 늘 말하던 마흔 다섯이 오는구나!"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내가 무심결에 지나치며 한 말들이 돌고 돌아 내 귀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말에 책임이 있다. 나는 올해는 꼭 시작해야만 했다. 그 시작을 무엇으로 할까 매우 많은 고민을 하다가 이 '브런치'라는 것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어쨌든 나를 도와줄, 내 시작의 등을 밀고 갈 그런 도우미 하나는 있어야 이 상황에서도 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한다. 그리고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나는 사실 육아나 아이 키우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도 없다. 여기 브런치에서 육아에 대해 말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한 것 같다. 그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상을 말로 풀어낸다는 것은, 정말 그 지루한 삶을 대단한 미사여구로 억지로 지켜내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인 것을 잘 안다. 나는 간단히 말해, 그 삶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할 말도 없다. 나는 아이야말로 내 인생의 증거이고 내 인생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해 줄 동료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내가 노력해서 아이를 잘 키울 수도 없고, 내가 노력 안해서 아이를 망치지도 않는다는 것을 지금은 잘 안다. 아이는 아이의 길을 갈 것이다. 그 길을 찾기 전에만 먹여주고 도와줄 뿐이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 산다는 건, 온통 지장받는 일 투성이다. 뭘해도 아이들의 스케줄과 맞춰야 한다. 또한 조용한 시간은 오로지 밤뿐이다. 따라서 나의 작가 활동은 밤에 벌어지는 나와 내 게으름과의 사투다. 이 사투는 내 본성을 누르고 내 이성으로 내 꿈에 다가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좀 건강도 상할 것이고, 친구도 잃을 것이고, 아이들에게 성질도 좀 낼 것이다. 손해가 좀 있겠지만, 마흔 다섯에 시작하는 것치고는 이득이 많을 것 같다. 왜냐하면 쉬운 도구인 브런치를 만났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별거 아니다. 또는 어떤 이들에게는 '별 거'인 이야기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들에 대한 묵상들. 그 주제는 때로는 비누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주전자가 될 수도 있다. 이십 여 년 전에 사라진 시내버스 8번 버스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옆집사는 건너건너의 그녀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남자, 눈이 오면 생각나는 다른 남자에 대한 고만고만한 추억들일 것이다. 그저 오징어나 씹으며 소비하면 딱 좋을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그 글의 끝에서, 산다는 것이 이토록 아름다운 일임을 잠깐 찡하고 잠들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내 글의 이유일 것이다. 그동안의 꿈을 트위터에서 혼자 재잘거리는데에 쏟았다면 (@sona1124) 이제는 보다 생산적인 여기에 글을 쓸 것이다. 왜냐하면 내겐 변명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흔 다섯까지 가져보지 못했던 삶의 변명, 변명없이 그동안 성실하게 살았으니, 이젠 신에게 이것 저것 변명 좀 대면서 삶을 좀더 연장시켜도 되지 않을까? 마흔 다섯까지 큰 목적없이 산 내 삶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다. 내 삶의 변명 만들기, 오늘부터 시작. 지금 2018년 1월 30일 밤 0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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