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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삼모델 Feb 20. 2022

<드라이브 마이 카>서로 다른 사람이 상실을 극복하는법

관객들도 영화관에서 서로 소통하고 있었다.

나의 하루키

분명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었지만, 이 작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름 재밌게 읽었던 책이었는데, 빌린 책이라 여러 번 읽지를 않아서 인지 크게 기억이 남지 않는다. 영화를 본 계기로 다시 책을 빌려 다시 읽어보았다. 다시 보니, 정말 분량이 적은 단편 소설이었다. 나에게는 큰 감동이나 의미가 있는 소설도 아니었다. 처음 읽는 것만 같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은 대부분 감정 변화가 크지 않고 쿨하고 차가운 면을 지니고 있지만, 예쁜 여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사랑에 집착하지 않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 쿨하게 헤어진다. '드라이브 마이카'에 등장하는 '가후쿠'도 여느 무라카미 하루키에 등장하는 시니컬한 남자 주인공이며 아내의 바람에도 크게 내색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원작과의 차이

소설은 차 안에서 운전사인 '미사키'와 '가후쿠'가 나누는 대화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차 안에서 모든 내용이 전개되고 두 인물의 대화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많은 부분을 각색했다. 주인공이 연극으로 '바냐 아저씨'를 하는 배우인 건 소설에서도 동일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언어로 연기를 하는 실험 연극을 하는 감독이라는 내용은 원작에서도 없다. 다양한 내용을 추가하며 각색해서 그런지 소설보다는 영화로 보았을 때 느껴지는 바가 다른 큰 작품이다.


원작에서의 인물 설정도 조금 다른데, 잘생긴 배우 '다카스키'는 유부남 배우로 바뀌었고 '가후쿠'는 아내의 불륜 상대에게 나름의 복수를 위해 사생활의 약점을 캐내서 폭로하고자 친하게 지내며 술자리를 가졌다고 말하며 조금은 지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 생각에 영화는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소설 원작이 '상실'이라는 키워드로 유명한 하루키의 작품 상실의 시대 전에 나온 작품임을 감안할 때, 아내와의 사별과 딸의 죽음 등 상실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적인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상실을 극복하는 영화

하지만 원작과 다르게 영화는 상실을 채울 수 있는 수단으로써 '소통'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가후쿠 유스케'의 아내인 '가후쿠 오토'는 딸을 잃은 슬픔을 다른 남자들과의 불륜으로 채웠다. 육체적인 소통으로 상실을 채운 것이다. 반면 '가후쿠 유스케'는 그런 방식의 사람이 아니다. 서로 다른 언어로 연기를 해도 연극을 하는 만큼 서로의 언어가 달라고 소통이 가능하다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어 아내를 존중한다. 내심 아이를 다시 가지고 싶어 하지만, 아내에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결국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아내와도 끝내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다. 자신의 가치관과 현실의 괴리가 '가후쿠'를 괴롭게 했다.


반면 잘생긴 '다카스키'는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과 소통을 잘한다. 언어가 통하지는 않지만, '제니스'와 육체적인 소통을 나누고 '가후쿠'에게 술자리를 제안하는 등 소통이 능하다. 하지만 '가후쿠'는 절대 그런 방식으로 소통하지 않는다. 육체적인 소통의 결말은 교통사고와 살인 그리고 죽음이었다.


'가후쿠'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이 현실로 실현된 사례를 한국 수화를 하는 유나, 윤수 부부에게서 보았다.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음에도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사례를 현실에서 목격하고 난 뒤로, '가후쿠'는 편안한 운전 능력을 가진 '와타리 미사키'와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가후쿠에 대한 해석

나는 '가후쿠'와 운전사가 영화 말미에 관계를 가질 줄 알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 재즈가 섹스가 매번 나오기에 처음에 섹스가 나오고 중간에 재즈는 나왔으니 이제 또 섹스가 나올 차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둘이 관계를 가져버리면 육체적인 소통을 하는 '다카스키, 오코'와 '가후쿠'는 똑같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가후쿠'는 그들과는 달랐다. 서로가 다를지언정 서로를 이해하고 지속적으로 대화하는 것으로 소통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초반부의 연극 연습장면과 후반부에서 유나&제니스의 연극 연습 장면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가후쿠'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다르게 아내와의 소통을 하지 못한 이후 자신이 타인과 소통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연극에서 연기하는 것을 거부했다. '미사키'는 어머니의 죽음에 잠시 동안 즐거운 감정이었다는 사실을 '가후쿠'에게 얘기한다. '가후쿠'도 아내의 불륜을 이야기하고 서로가 감추는 것 없이 진실로 소통하고 나서야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이후, 자신도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임을 다시 알게 되고 연극에 참여한다.


'미사키'도 본인의 우울한 과거를 뒤로하고 외국(한국)으로 나가 살며 더넓는 세계를 마주하고 외로워 보이던 상태와는 다르게 강아지를 키우며 밝은 미래를 향해 살아간다.


흥미진진한 상업적인 영화가 아니라 잔잔한 영화의 3시간은 너무 길었다. 나는 재밌긴 했지만, 육체가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다. 영화를 시작한 지 2시간이 넘었을 무렵부터 외투를 부스럭거리며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많이 났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언어가 다를지언정 서로 소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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