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타야(TSUTAYA) 서점
6월의 홋카이도는 산책하기에 정말 좋다. 우리나라의 봄과 가을을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다.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느낌^^
오늘은 교외로 나가 현지 일본인들의 삶 속에 쓱~ 스며들다 나오고 싶어, 여러 곳을 검색해 보다 삿포로 근처에 엄청 큰 서점이 있다는 정보를 발견했다. 어제의 지진 경험에 살짝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일본인들의 표정을 보니 '뭐~ 이 정도쯤이야!' 개의치 않는 거 같다. 친구는 삿포로 시내에서 안전하게(?) 있고 싶단다. 그래서 나 혼자 다녀오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큰 서점들은 교통이 편리한 도심 한복판에 있고, 특색을 살린 작은 서점이나 북 카페가 주로 도심을 벗어나 있는데, 이곳은 삿포로에서 기차 타고 가서 다시 버스나 도보로 한참을 가야 있단다.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서점'이라는 소개도 근사하다.
우선 삿포로역에서 이베츠역으로 이동했다.
삿포로 시내 규모는 큰 것 같지 않다. 서너 정거장을 지나니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내가 탄 칸의 승객은 나와 어르신 한 분이다. 아주 작은 책을 읽고 계셨다.
이베츠 역에 도착했다. 내리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베츠역의 첫인상!
오래되어 정겹고 따뜻한 모습!
6월인데 난로가 있다. 난로가 정리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도 신기한데 하~ 난로라니. 한 20-30년은 과거로 돌아간 듯한 역사 모습이다.
구글의 안내에 의지하면서 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지만, 내심 걱정스럽다.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좀 물어보고 싶은데 개미 한 마리도 못 만나겠다. '정말 이렇게 작은 마을에 큰 서점이 있는 게 맞나?' 내가 얻은 정보를 의심하기 시작할 즈음 저기서 버스 한 대가 온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운전사께 서점 사진을 보여 드렸다. 고개를 끄덕이시는 걸 보니 그곳에 가나 보다. 이번이 일본 여행 세 번째인데 버스는 처음 타본다. 손님은 나 한 명 ㅎㅎ.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시내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네모 반듯한 터에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지어진 집들. 자연스러운 흐트러짐조차 찾아볼 수 없는 너무 정갈한 시내이다. 그래도 삿포로 시내보다는 집과 정원이 더 크다. 아주 큰 규모의 종합 병원도 있다. 인구가 없어 보이는데 종합병원도 있고... 보면 볼수록 신기한 곳이다.
버스에서 내렸다. 구글 지도를 보면서 한적한 거리를 걷다 보니 츠타야 서점이 나타났다.
갈색 건물이 여러 개 놓인 형태였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큰 서점과 비슷한 메인 서점 건물이 있고, 그 옆으로 세 개의 건물이 더 있었는데 각각 의. 식. 주라는 큰 테마로 나누어 그 테마와 관련된 책과 상품들이 조화롭게 진열되어 있다.
메인 서점은 다른 건물들과 다르게 2층으로 이루어졌다 1층 책 진열 방식은 우리나라의 일반 대형 서점과 비슷하게 되어 있지만 훨씬 개방감이 느껴졌는데, 바로 앞뒤 면이 통창으로 되어 있어서 앞쪽에서는 넓은 주차장을 뒤면에서는 공원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공원을 바라보면서 잠시 쉴 수 있도록 카페와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반면 2층은 갈색톤의 아늑한 느낌의 공간으로 마치 다락방에 있는 것 같았다. 1층과 2층 공간은 전혀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특히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것은 만화책 섹션. 정말 엄청나게 많은 만화책이 쭉 진열되어 있다. 애니메이션 강국이 확실하다.
책뿐만 아니라 특색 있는 상품들이 함께 판매되고 있어서 일본어를 모르더라도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공원을 마주한 테이블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삿포로로 출발했다.
이번에는 걸어서 이베츠역으로 가 보았다. 올 때처럼 갈 때도 참 조용하고 한적하다. 오늘의 목적지는 츠타야 서점이었지만 오늘의 여행 목적은 한적한 마을을 걸어보는 것이었다. 나의 목적지로도 목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이곳은.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며칠간 이 마을에 머물고 싶다. 서점에서 이베츠 역까지는 걸어서 20-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역으로 가는 길에 만난 풍경들이 지금도 새록새록하다.
츠타야 서점 한쪽과 연결된 공원이다. 무성한 수풀이 있어서 짙은 나무 냄새 풀 냄새가 좋다.
나도 시골에 살고 있지만 인구가 얼마 없는 곳에는 크고 작은 빈 터가 있기 마련이다. 빈 터에는 사람 손길이 닿기 어려워 지저분해지기 십상인데, 신기하게도 이 마을에서는 지저분한 공간을 보지 못했다. 일본인들의 천성인 것인지, 이 지역의 정책인지 모르겠다.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동네를 걸을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이곳이 이베츠 역 입구이다. 인적과 차량이 많지 않다. '역 앞에 택시는 영업이 좀 되려나'싶다. 두 줄로 심겨 있는 꽃들, 풀 한 포기도 발견할 수 없다. '뭘 이렇게까지. 아무래도 마을 대청소 다음날 내가 방문한 모양이다. 사람 사는 곳은 이럴 수 없느니라'
이베츠라는 동네가 다른 여행객들에게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복잡한 삿포로 시내에서 벗어나 한적한 일본 마을을 걸어보고 싶다면 너무나 추천하고 싶은 동네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낯선 땅에서 만나보는 경험은 흥미롭다는 감정을 넘어 잔잔한 감동으로 남게 되는 것 같다.
오후로 들어서니 살짝 덥기도 하다. 삿포로로 가서 친구에게 시원한 삿포로 클래식을 한잔하자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