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내가 한국어로 이야기하면 대부분 알아듣지만, 어설픈 한국판 영어는 못 알아들을 때가 많다.
미국 여행을 앞두고 언니에게 전화가 왔었다. 어떤 항공기를 이용하냐고 묻는 언니의 말에 나는 경쾌하게 답했다. “델타 에얼라인!” 그런데 언니는 아주 잠시 당황하더니 “Sorry, which one?” 이라고물었고 나는 그 즉시 눈치챘다. ‘아, 뭔가 발음이 잘못됐나 보다.’
아무래도 L발음이 이상하게 들렸나 보다 싶어서 L 발음을 최대한 길고 강하게 데을~~ 타!라고 말했다.
하지만 언니의 반응은 여전히 미궁 속. “ Um… Is that Korean one?”
헉. 뭐가 문제인 걸까? 델타는 세상 미국 항공사인데. 어쩌지 싶어서 최후의 방법인 스펠링 부르기를 시전 했다. “D E L T A!” 그제야 언니는 아주 크게 이야기했다. “Oh! 델!! ㅌ ㅏh”
E가 뭘 잘못했나 싶을 정도로 세게 찍어 누르며 그쪽에 강세를 주었다.
강세가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하며 언니의 델!타 발음을 계속 혼자 따라 해보았다. 그러다가 느낀 부분이 있다.
한 번 더 파고 들어가 보면 강세문제가 아니었다.
D를 발음할 때 그냥 곧바로 드.로 내는 것이 아니라, 혀끝을 앞니 뒤의 평평한 부분에 대고 있다가 밀면서 나는 미세한 진동의 '으'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더라.
혀가 입천장 쪽을 미는데 혀 전체에 진동이 느껴지고 ㄷ의 소리가 입술 주변이 아닌, (주로 한국어 발음이 나는 부분) 혀와 목구멍 주변에서 소리가 울리며 나온다.
아 이것이 바로 한국식 영어 발음과 미국원어민들의 발음의 애초부터 다른 느낌의 중요한 키였구나!
그리고 그렇게 D 소리를 내면 어쩔 수 없어서라도 델타에서 ㄷ 와 ㅔ 에 세게 강세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는 사실 강세 문제도 아니었고 D발음을 정확히 내는 부분에서 시작할 부분이었다.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이런 부분들을 유심히 보고 수정해 나가야겠다.
델타를 델타로 말했는데 델타로 알아듣지 못한 이번 일을 겪으며, 한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오래전 중국인 엔지니어 분의 발표를 통역한 적이 있는데, 미국에서 오래 근무하신 분이라 그런지 그렇다 할 중국식 영어 억양은 없었다. 그런데 단 하나, 반복적으로 나오는 하나의 단어가 아리송했다. 바로 “에네르기"였다.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하는 상황이었는데 도저히 알 수 없어서 어떤 전문 용어인가 보다... 하고 에네르기를 에네르기라고 통역했는데, 나중에 그분이 칠판에 쓰면서 'ok, this is 에네르기" 라며 쓴 영어단어는 energy였다.
그 또한 에네르기나 에너지나거기서 거기지 뭐. 못 알아들을 것 있겠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um.. excuse me? 를 불러일으키는 파트였다.
제2외국어로서 외국어를 배워갈 때, 걸림돌이 되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나의 모국어다.
모국어가 가진 소리가 만들어지는 원리와 모국어의 소리가 발생하는 곳 (예를 들면, 입술 주변에서 소리가 나가느냐 - 한국어-, 목구멍 부분에서 진동과 함께 나가느냐 -영어-) 등등이 모두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미국에 지내면서 이런 부분들을 더 염탐하고 에피소드들을 쌓아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