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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숨 Feb 08. 2022

시시한 것들

소소하게 좋고 끔찍하게 싫은 것들

주간 <야근 없는 날> 매거진을 두 달 만에 쓰고 있다. 야근은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 내가 왜 두 달만에 글을 쓰게 됐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1명쯤 있을 수도 있다. 필히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일 거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거나 개인적으로 말해줄 수 있을 테니 여기서는 말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두 달 만에 글을 쓰고 있고 그 이유가 궁금한 사람도 거의 없겠지만,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참 시시한 문단이다. 정보량도 적어서 누군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만한 문단이다. 말장난이 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겠지만, 시시한 말장난에 웃는 걸 촌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 입장으로서는 칭찬이다. 나는 '비 와', '그럼 싸인받을 준비 해야겠네' 하는 말장난에 잘 웃는다. 이런 농담이 아주 옅게만 웃기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남의 이런 농담에 웃어주는 사람이 좋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 던진 옅은 말장난이 바닥에 뚝 덜어지는 건 너무 속상한 일이기 때문에. 웃어주는 사람이 좋고, 살짝 무심하게 농담을 이어주는 사람은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시한 말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아주 근사한 말을 인용하고 싶어졌다.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에 나오는 말이다. "문학과 도덕, 상상 속의 악은 낭만적이고 변화가 풍부하며, 실재하는 악은 음산하고 단조롭고 삭막하고 지루하다. 상상 속의 선은 지루하지만, 실재하는 선은 언제나 새롭고 사람을 놀라게 하며 매혹적이다." 영화 속에서는 매력적인 악당이 평범한 히어로를 농락하지만, 실제로 악당들은 매우 지루한 인간들이고 오히려 선한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늘 새롭고 매혹적이라는 말. 이 말은 정말 멋진 말이다.


누워서 SNS와 유튜브를 두어 시간이 넘게 보다 보면, 시몬 베유의 문장은 절대 말장난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아주 하찮고 시시한 농담을 위해서 끔찍한 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동물을 괴롭히고, 여성의 신체를 끊임없이 벗기며, 돈만 생각하라고 감히 충고한다.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건 순식간의 관심과 그 순간의 누적이다. 그걸 위해서 저 정도로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한다는 게 끔찍하고 그런 끔찍함이 너무 시시해서 자극도 되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낄 때가 많다.


반면에 내가 가끔 발견하는 건 아주 신선하고 옅은 농담이다. '(트랜스젠더에게) 너 홍석천이야?' '어, 그런 거야' 하는 성소수 농담도 좋고, 절묘한 순간에 터지는 희한한 웃음소리가 담긴 영상도 좋다. 그런 걸 발견하면 너무 기분이 상쾌해져서 솜사탕처럼 옅고 풍부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그 순간을 위해서 사이버 세상을 헤집으면서 계속 새로고침을 하는 건데... 이것도 시시하게 시간을 때우는 방식이지만, 하루 중에 없어서는 안 될 시간이 되어버렸다.


시시하면서도 옅은 농담의 제일 좋은 점은, 아주 가녀려서 특정한 입장에 있는 특정한 사람만이 웃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이 위에서 인용된 '홍석천 농담'에 웃는다면 그건 좀.. 그런 일이다. 하지만 성소수자, 특히 설명에 지쳐버린 당사자는 이 가녀린 농담이 매우 웃기고 웃을 자격 같은 게 조금 있다. 그 사람은 덜 외로워진다. 왜냐하면 이런 농담은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살짝 무심하게 달래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농담을 하는 사람을 나는 아주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시시하면서도 독특한 농담이 많았더라면 내가 두 달보다는 더 적은 간격으로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그런 세상에서는 내가 조금 덜 지치고, 덜 슬프고, 덜 아팠을 텐데 겪어본 적이 없으니. 그래도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원래 나 같은 사람이라면 2년 만에 글을 쓸 수 있는 세상이었는데, 누군가 악당을 물리쳐온 덕에 내가 두 달 만에 글을 써본 거라고. 그렇게 생각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 없지만, 내 마음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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