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숨 Nov 22. 2021

예전 일기 읽기

왜지 내 글이 제일 재밌어

오늘은 야근 없는 날. 새로운 매거진을 만들어 봤다. 말을 많이 하고 싶기 때문이다. 많이 쓸 수 있을까? 오래 쓸 수 있을까? 이 매거진도 또 하나의 일감이 되어서 스스로 채근하게 만드는 강박 기제가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일단 오늘은 기분이 좋다.


왜냐하면 4년 전에 쓴 일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말에 쓴 일기였다. 이 노트북에 저장된 일기 중에 가장 오래된 일기다. 지금은 만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제대로 헤어짐을 고하고 헤어졌거나 흐지부지 헤어졌거나 내 나름으로는 헤어졌다기보다 그저 안 보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돌이켜보니 성별을 짐작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 위로받은 일들이 쓰여 있었다.


1. 엄청 떨었던 발표 중에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는) 팀플 같은 조 사람들이 열심히 발표를 들어주고 끝난 뒤에는 잘했다는 거짓말을 해줬다고 한다. 2. 자취하던 집 앞에 있는 술집에서 당시(지금은 안 보는) 친구가 맥주를 들이켜면서 오랫동안 사랑한 사람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3. 잠에 못 드는 날에 (역시 안 보는 사이가 된) 사귀던 사람에게 잠이 안 온다고 했더니 파도 소리를 상상하라고 말해줬다고 한다. 4. 그리고 지금도 만나는 친구가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며 따뜻함을 느꼈다고 한다.


예전에 쓴 일기를 읽다 보면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생각보다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었구나 하는 감상과 나는 생각보다 자책을 심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고마움을 느낀다. 몇 년 뒤에 다시 읽어도 괴롭지 않은 일기를 쓸 정신이 있었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75%의 확률로 안 보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 당시 내게 위로를 줬던 사람들. 이제는 그 사람들도 그때의 그 사람이 아닐 테니 그 사람들에게 '지금의 나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수상 소감 같은 걸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런 순간이 어쨌든 간에 삶에 있다는 게 항상 약간은 신비롭고 고마워서.


그렇다고 뭐가 엄청 많이 고마운 건 아니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