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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한호랑이 Oct 18. 2021

[작사의 시대 9기] 장례식에선 못한 나는 살겠다는 말

10/13) 어제의 일을 일기로 쓴 뒤 그다음 편지로 바꿔보세요

이번주는 아주 소소한 일상을 노래 가사로 바꾸는 훈련이다. 일단 일기를 쓰고, 그 일기를 편지로 바꾼다. 그리고 그 편지로 노래 가사로 만드는 방법이다. 일기 정도에나 있을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이 어떻게 노랫말이 될 수 있는지 배우는 과정이다. 우리는 일기를 쓴 다음에 서로의 일기를 듣고 또 열렬히 서로 공감하고 응원하느라 3시간이 순삭... 편지까지 써야 하는데 편지는 쓰지도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어제가 너무도 일상답지 못했다. 큰 사건이 있었다.


어제는 남편의 제일 친한 친구의 와이프 발인날이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친구였는데 신혼여행 내내 아파서 돌아오자마자 검사를 받았고 유방암 판정을 받았었다. 5년 전 그날부터 이제껏 투병하다가 지난 주말 이 세상을 완전히 떠났다. 오빠는 주말, 월요일 대체휴가일도 내내 장례식장에 있다가, 화요일 어제 새벽 5시에 나가서 화장터까지 운구도 도왔다. 그 커플은 결혼하자마자부터 둘이 투병하고 간호하느라 회사도 못 다녔고 그동안 사람도 못 만났으니 손님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 친구는 꽤 유명한 네이버 블로거였다. 5년 전 소개받을 때 잠깐 블로그 구경하고 이제야 다시 와본다.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패션 관련 정보로 블로그를 운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항암 일기로 바뀌어 있었다. 남편이랑 병원 나옴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는 내용, 약마다 치료마다 얼마나 아픈지 부작용은 무엇인지 남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고 남긴 정보들,  또 암이 재발해 임신 5개월에 아기를 하늘나라에 보낸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너무 살고 싶어서 그런지 아기 장례식날에 오히려 담담했다는 이야기.. 스크롤을 내리면서 오전 내내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나란 인간이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매일 마시던 믹스 커피 대신 드립으로 커피를 정성껏 내려 마시고, 머리도 감고 설거지까지 끝내고 제일 좋아하는 요가복으로 갈아입고 요가 수업에 안 늦고 갔다. 오후엔 평소답지 않게, 기한이 한참 남은 일까지 미리 딱 부러지게 했다.


남편은 점심시간 맞춰서 갑자기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회사에 있다가 부대찌개랑 조각 케이크를 포장해 전달해주고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점심 잘 챙겨 먹으라며. 나는 그 찌개랑 반찬을 아끼는 그릇에 덜어 맛있게 먹었고 케이크까지 남편 사랑 따박따박 받으며 살아온 여자처럼 잘 챙겨먹었다.


살고 싶어 하던 젊은 여자의 글을 눈물 흘리며 읽다가 갑자기 요가도 하고 밥도 잘 챙겨 먹는 나. 또 사랑을 떠나보낸 친구를 며칠간 위로하다가 갑자기 사랑꾼이 된 내 남편.


같이 괴로워하고 슬퍼하다가
보란 듯 내 하루를 야물딱지게 살아낸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우리 건강하자. 우리 싸우지 말고 진짜 서로 아끼면서 잘살자'라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착하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였다. 누군가의 죽음과 상실을 보고 충분히 슬퍼하고 위로하기도 전에 우리끼리 있다고 이래도 되는 걸까. 울고불고 같이 슬퍼하고 괴로워하다가 보란 듯 내 하루를 야물딱지게 살겠다고 하는 이 마음이 너무 가볍고 얄미럽다. 오늘 아침까지 그들의 마음이 어떨지 너무도 절절히 이해돼서  내 마음 저 깊은 곳 끝까지 찌르르르 아팠는데, 또 그 마음 한편에 ‘내 삶은 달라' 라며 똑부로지고 매몰차기까지한 태도는 무엇인란 말인가.


혼란스러웠다. 나랑 내 남편이 선한 사람들인 건 맞는 건가 의심까지 되었다. 이 친구의 아까운 죽음과 또 그 죽음으로 인해 내가 얼마나 슬픈지, 내가 얼마나 이 슬픔에 마음이 힘든지  알아달라는양  나는 꽤나 많은 사람들한테 소문내듯 알렸다. 엄마, 아빠, 시어머니, 친한 친구들은 또 채팅창으로까지.. 하지만 내가 얼마나 맛있게 부대찌개를 챙겨 먹었는지, 건강해지겠다고 어찌나 요가도 열심히 했는지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한바탕 남의 슬픔으로 울어내면서 내 일상의 먼지들을 게워내고, 얌생이 모범생처럼 몰래 다시 힘내서 살고자 했다. 누구보다도 크게 흐느끼다가 금세 모드를 바꿔 내 일상을 정리하고 정비하는 내 모습에 많은 생각이 오간다. 남의 슬픔을 먹고 내 행복을 키우는 모습에 마음이 편하진 않다. 무엇인가 창피하고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또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슬퍼서 목메게 울다가도 어느 순간 냉수 한 잔 마시고 정신은 차려야 하는 건 맞는데 나는 그게 사실 너무 잘되는 것, 거의 슬퍼하는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다는 것. 그것에 좀 놀랐다.


뭐가 인간다운건지 잘 모르겠는 밤이다.

내 마음과 태도가 평균적인건지 모르겠는 날이다.

살겠다는 이 마음을 조금 자제하고 숨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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