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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한호랑이 Nov 01. 2021

요가고자의 변명

[점심요가일지]요가하면서 나같이 말 저급하게 하는 인간도 역시 나뿐이겠지

나의 점심 요가는 4개월이 접어들면서 이제 꽤 평화롭다. 차분한 선생님의 목소리와 여전한 나의 몸땡이의 어울림이 이제는 내 기준 꽤 자연스러워졌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몇가지 동작은 자세 이름만 듣고 얼추 따라가고 있고, 임희원이라면 지금쯤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내 몸을 요상하게 꺽어 병원 실려가고 등의 불미스러운 사고도 없었다. 이렇게  별 탈 없이 1시간 수련을 마무리하는 것만 해도 난 참 만족스럽다. 


난 지금도 만족스럽다. 내가 생각할 때 내가 특히 요가에 더딘 이유가 있다. 내 기질을 생각하면 나는 애초에 요가와 굉장히 먼 사람이란 말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 요가 학습에 대해선 특히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간을 넉넉히 주고 있다.

유일하게 잘 되는 자세 이 와중에도 생각은 쉬지 못한다. 
생각이 멈춰지질 않는 사람


일단 나란 사람은 성격도 급한데다가 말이나 행동 모두 '마 뜨는' 걸 못 견디는 나 같은 사람은 요가 수련의 시작부터 힘들다. 시선이든 자세든 가만히 멈추는게 거의 불가능하다. 나도 이렇게 눈 감고 숨만 쉬고 있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지 몰랐다. 나는 왜 가만히 숨도 못 쉬나. 왜 가만히 앉아있거나 서있질 못하는건가. 내가 성인 ADHD는 아닐까 하는 심각하고 복잡한 생각도 자주 든다. 요가라는 것이 내 호흡, 내 몸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도무지 100m 달리기 하듯 멈추지 않는 내 뇌 속 잡생각들은 가만히 내 호흡과 자세에만 집중하게 놔두질 않는다. 내 몸, 내 호흡에만 집중하세요 라는 말이 나오면 내 감각은 내 몸 , 내 호흡 빼고 온사방, 온군데 다 참견이다. 


선생님이 입은 요가복을 힐끗 보다가 지난 번 당근마켓에서 만난 아줌마도 생각나고(딱 봐도 XL사이즈 아줌마인데 S사이즈 요가복을 나에게 처분해주셨다. 자기가 아주 죽자 하고 살뺄라 그랬는데 그냥 살자 하고 먹겠다고 새 요가복을 만원에 넘겨주심.) 창밖 논술학원 간판 보다가  대학생때  내 전공 교재도 해석이 안되면서 논술 과외로 돈 번다고 철학서 읽었던 한심했던 시간.. 그리고 나한테 배웠던 애들이 대학은 갔을까. 취직을 했을까.. 아주 난리다. 이렇게 생각이 생각에 점프를 하다보면 극단적으로 가끔은 내 뒤통수를 찰지게 때리고 싶을 때가 있다. 이 뇌새끼야! 뭐 대단한 생각도 아니면서 제발 좀 가만히 있어라! 하고 화를 내고 싶을 정도다. 이런 생각 몇십개가 같이 드니 내가 내 호흡에 집중할 수가, 내 몸의 변화를 알아챌 수가....거의 없다 ㅠㅠ.


나같이 생각이 많은 사람은 아주 뇌를 질려놓게 하는 방법을 찾았어야 했나 싶다. 시끄러운 비트로 쉼없이 쿵쿵대는 줌바, 에어로빅, 점핑다이어트 같은 운동을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무한도전 에어로빅 선생님같은 분이 내 귓가에 꽹가리 치면서 마구마구 몰아붙인다면 그제서야 내 뇌가 좀 멈출 수 있을까?

왼쪽 오른쪽 구분 불가능한 사람

그 다음은 또 내가 요가에 젬병인 이유로는.. 거의 장애 수준으로 안되는 왼쪽 오른쪽 구분이다. 나는 이 오른쪽-왼쪽 구분 때문에 면허 딴 지 10년이 되었지만 도로에 나가질 못했다. 좌우 구분도 못하는 내가 서울 도로에 나갈 수가 없다. 가끔 다른 사람 차를 타거나 택시 탔을 때 방향을 말해야 할 때도 아주 미치는 노릇이다. 운전자가 나에게 "여기서 좌회전 하란 말이죠? "이런 질문을 하는 경우엔 바로 백치아다다병이 걸린다.  뒷자석에서 팔을 휘저으면 "저쪽인가 아아, 이쪽인데요?" 이 난리를 친다. 성격이 급해서 아저씨 눈 앞에서 손으로 화살표 만들어 방향 가르키다가 시야 가린다고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여튼 이 정도로 나는 좌우 인지가 거의 안되는 사람이다. 이런 내가 눈을 감고 선생님의 말로만 자세를 잡아야 할 때는 정말 어렵다. 선생님이 조용하게 뱉은 '오른쪽'이란 단어가 나오면 나는 그 즉시 소리없이 머릿속으로 외친다! "밥먹는 손!!" 36살 먹고 밥 먹는 손!을 열창하는 내가 너무 븅신같아서 웃음을 참느라 곤욕스러울 때도 있다. 그렇게 남들보다 한 프로세스를 더 걸쳐서 오른손으로 오른쪽을 인지하고, 오른손을 올리고 왼다리를 접는다. 


근육이 인지되지 않는 사람


마지막으로는 내 몸, 내 근육의 존재가 인지되지 않는다. 그 근육들이 거기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평생 걔네들이 거기 있었는지 모른 채 살아서일수도 있고 정말 근육이 해파리처럼 존재하지 않아서일수도 있겠다. 내가 부장가, 타다 아사나 등 기본적인 자세를 할 때 자주 듣는 말 중에, 가슴을 하늘 향해 들고 등쪽을 조이라는 지시가 있다. 이 지적은 하도 많이 들어서 그때마다  '아 맞다, 그거 또 놓쳤네' 하고 알아듣는 척 하지만 이건 뭐  "담낭을 올려보시고, 방광을 쪼여보세요" 의 느낌이다. 애초부터 인간의 가슴 근육이란 것이 내 의지대로 들어  올리고 말고 할 수 있는 부위였던가, 내 가슴은 앞으로도 전혀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이는데? 가슴은 그래 호흡으로 미약하게 나마  부풀려볼수나 있지. 내 눈으로 본적도 없는 내 등, 그것도  견갑골 사이의 등 근육을 어떻게 따로 쪼이고 풀고 조작한단 말인가.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왜 얘네들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가. 


이 정도 핸디캡이 있는 사람으로서 계속 하고자 하는 것 자체가 대단하고 거의 인간승리 감동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잘하고 있다. 내일도 일단 12시 수련 시간 늦지 않게 세수하고, 양치하고, 옷 갈아입고 엉덩이를 드는 것! 그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수련 내용이다. 일단 요가원까지 가서 요가 매트를 까는 것. 내가 가진 결핍과 장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일단 하는 것. 


그리고 임희원아.. 다 썼으니 하는 말인데 제발 앞으로 무엇인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더 이상은 이렇게 성의있게 생각하지 않았음 좋겠다. 그냥 해라 좀. 입 다물고! 긴 생각 좀 하지 말고! 정신승리 좀 멈추고 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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