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칼럼미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딜러 한혜미 May 15. 2020

천재 예술가들의 스승,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승 이야기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천재 예술가들의 스승'을 주제로 Sharp Spoon에 기고했습니다.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승으로 불리는 르네상스 예술가, 베로키오의 이야기입니다.

원문보기: http://sharpspoon.kr/interview_detail?id=25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




이 작품은 다양한 패러디 및 각종 매체에 등장해서 대중들에게 친숙한, 르네상스의 대가 보티첼리의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이다.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는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 작가로 부드러운 곡선과 시적 세계를 작품에 표현했다.

바다 거품 속에서 탄생한 비너스는 사랑과 미의 여신이다. 정중앙에 서있는 그녀는 부끄러운 표정과 몸짓인데 커다란 조개껍질을 타고 해안에 막 도착한 듯 보인다. 왼쪽에는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그의 연인이자 봄의 님프인 클리로스를 안고 비너스 쪽으로 바람을 불고 있다. 마치 비너스가 그의 꽃바람을 타고 해안에 무사히 도착한 듯 보인다. 오른쪽에는 비너스의 수행원이자 계절의 여신인 호라가 외투를 들고 비너스를 맞이한다. 데이지 등 봄의 꽃이 그려진 천으로 추측된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대체로 해석하는 재미가 있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임에도 굉장히 사실적인 묘사로 표현방법 또한 매우 뛰어나다. 인물의 미묘한 표정 변화가 담긴 섬세한 묘사와 부드러운 곡선은 그의 독자적인 화풍이다. 처음부터 그가 예술성을 꽃피울 수 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르네상스의 한 공방을 다니며 작업에 몰두했는데, 그가 다녔던 화풍은 당시 르네상스의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있었던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운영하던 이는 제자 육성에 힘을 썼던 예술가로 보티첼리의 스승들 중 한 명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Restored)>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도 보티첼리만큼이나 뛰어난 예술가이다. 그는 과학과 의학에도 능했으며, 다방면에서 출중했기 때문에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천재화가로 불린다. 대표작인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등으로 후대에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위의 <최후의 만찬>은 그가 약 2년에 걸쳐서 완성한 작품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기 전날의 상황을 그렸다. 당시 '최후의 만찬'은 예술가들에게 인기 있는 주제였는데, 다빈치는 그린 <최후의 만찬>은 구도와 인물이 다른 작품들과는 차이가 있다. 당시의 작품들은 주로 예수를 배신한 유다의 배반에 초점을 맞췄는데, 다빈치는 화면의 조형성으로 작품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해석을 앞두고 과학과 수학적인 견해도 뒤따르며,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독창성과 작품성을 모두 가졌다고 평가받는다. 혹자는 르네상스의 전성기가 이 작품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의 예술성과 천재성은 공교롭게도 불우한 가정환경 덕분에 일찍 발견되었다. 그는 피렌체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다름 아닌 서자로 태어난 것이다. 어머니는 그를 버리고 떠났으며, 서자였던 신분상 대학에 들어갈 수 없어서 어린 나이에 공방에 보내졌다. 그리고 그 공방이 보티첼리를 포함해서 당대 많은 예술가들의 작업이 이뤄지는 곳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선배 예술가들의 예술성을 가까이서 보며 자신만의 예술성을 구축했고, 이는 그의 천재성에 뒷받침되면서 세계적인 작품들을 남기게 된다.


이렇듯 많은 예술성과 천재성을 가진 예술가들을 배출한 르네상스의 중심에는 한 공방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이들을 공통적으로 가르친 스승이 있다. 뛰어난 예술가이자 천재 예술가들의 스승이었던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 1435-1488)이다.





니콜라 드 라르므생이 제작한 베르키오 초상화


스승: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
@네이버 통합검색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본명은 안드레아 디 치오네(Andrea di Cione)이다. 그는 조각가이자 스승이었던 도나텔로로부터 공방을 물려받았는데, 초기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업적을 그대로 계승했다. 규모가 꽤 큰 공방임에도 베로키오는 효율적으로 잘 운영했다고 알려진다. 훗날의 르네상스 대표화가들이 제자로 들어왔는데 페루지노, 산드로 보티첼리, 기를란다요,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있다.


쟁쟁한 제자들 덕분에 오늘날에는 베로키오를 '제자들의 명성에 가려진 예술가'로 부른다. 그러나 그는 스승 이전에 회화와 조각에 뛰어난 르네상스 예술가였으며, 청동제 미술을 제작하는 기술이 뛰어났다. 주요 작품으로는 <작은 꽃다발을 안은 부인>, <피스토이아 대성당 제단화>, <다윗>, <클레오니 기마상> 등이 있다.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다윗(David)>, @italianways.com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다윗>은 1476년에 제작된 청동상이다. 정확하게 파악된 인체의 묘사가 특징인 작품이다. 작품을 보면 다윗의 발 앞에 골리앗의 머리가 있다. 그런데 골리앗의 머리 표현이 꽤 생생하다. 사실적인 얼굴 근육과 곱슬거리는 머릿결, 그리고 털의 묘사는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흥미로운 건 베로키오가 같은 주제로 작업한 스승인 '도나텔로'에 대한 도전으로 이 작품을 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는 예술가였다. 메디치 가문은 당시에 유망한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가문이었는데, 가문의 인정을 받은 화가라는 점에서 뛰어난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 베로키오는 메디치가의 대리석 묘비와 제단화, 공식 연회를 위한 작품들의 제작받기도 한다.


베로키오의 작품들은 엄숙하고 숭고한 아름다움과 엄격한 사실주의가 있다. 보티첼리도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펼치다가 훗날 자신만의 독자 화풍을 구축하는데, 그가 배운 사실주의가 스승인 베로키오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역시 어린 시절에 베로키오의 공방에 들어감으로써 다양한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했으며, 결과적으로 베로키오 덕분에 자신만의 천재성을 입증했다.


이렇듯 베로키오는 메디치 가문이 후원하는 예술가이자, 르네상스 최고 예술가들이 다니던 공방의 스승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너무나도 뛰어난 제자 덕분에 회화 활동을 멈추고 조각에만 전념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일화가 담긴 베로키오의 대표작 <그리스도의 세례>를 소개한다.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그리스도의 세례>




<그리스도의 세례>는 그리스도가 30세에 고향을 떠나 요한에서 세례를 받은 이야기의 작품이다. 성경의 '…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이라는 구절을 표현했다.


베로키오는 인물의 표정, 근육과 배경의 섬세한 묘사로 작품을 표현했다. 성경에서 하느님의 영으로 기재된 비둘기는 하늘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나타냈으며 하느님의 두 손이 추가되었다. 예수가 입은 옷은 당시 피렌체에서 수출되는 작물이다. 베로키오는 성경 속의 해석과 현실의 시간을 작품 속에 함께 표현했다. 이로써 성부(손), 성령(비둘기), 성자의 삼위일체를 강조했는데, 어쩐지 삼위일체에 속하지 않은 천사에게 눈길이 간다.









가만 보니 천사의 표현이 다른 인물들과 차이가 있다. 천사가 두른 파란 천은 작품의 오른쪽에 있는 인물의 파란천 보다 자연스럽다. 머릿결과 인물의 표현도 다르다. 그런데 천사에게 눈길이 가는 건 당시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작품으로 베로키오는 많은 찬사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붓을 내려놓았다. 당시의 사람들이 찬사를 보낸 그림 속의 등 돌린 천사는, 그가 아닌 제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렸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고 알려진 뒷배경도 다빈치가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유명한 예술가들은 자신의 공방으로 문하생들을 키웠으며, 문하생들은 대표작가가 의뢰받은 작품을 그리며 그림을 배웠다. 당시 공방의 작업환경도 비슷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베로키오에게 문의가 온 작품들은 그의 공방에서 제자였던 문하생들이 함께 작업을 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세례>는 다빈치뿐만 아니라, 기를란다요와 보티첼리도 함께 작업했다고 알려졌으며, 오늘날에 알려지지 않은 이름 없는 여러 제자들이 함께 참여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그리스도의 세례>를 다시 바라보자. 인물들의 근육 표현방법과 그들이 입은 옷의 천 주름, 머릿결과 앞 배경 및 뒷배경을 찬찬히 비교해보니 미묘하게 차이를 보인다.


덕분에 이 작품은 '스승을 능가하는 천재성을 보인 제자'의 일화가 더해져서 오늘날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았다. 물론, 그가 다빈치의 천재성에 붓을 내려놓았다는 것이 억측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한 베로키오의 심경을 담은 자료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정말 그에 의해서 회화를 관두었는지 알기 어렵다. 덧붙여 베로키오와 제자들의 관계를 공방을 운영하는 대표와 문하생의 관계로 바라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의문을 둘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이후 베로키오는 조각에만 전념했다. 또한 의도가 어찌 되었건, 베로키오가 인도한 길로 다빈치는 당시의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하며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기회를 얻었다.


오늘날 베로키오를 바라보는 미술사적인 시각은 다양하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니, 제자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명성으로 '가려진 스승'이라는 의견이 많다. 만약 그가 현대에 와서 이러한 의견들을 접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가려진 스승이라는 것을 오명으로 생각할까, 혹은 천재 예술가들이 그를 거쳤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할지 묻고 싶다. 만약 나였다면 나보다 더 유명한 제자에 질투가 느껴지면서도 그 사람의 인생 한편을 함께 했다는 사실에 기쁘지 않았을까.


만약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베로키오의 공방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베로키오라는 인물이 제자 육성에 힘을 쓰지 않았다면 분명 우리가 아는 미술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다빈치는 물론 보티첼리와 기를란다요를 우리가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다. 그의 제자였던 기를란다요는 훗날 거장 미켈란젤로의 스승이 된다.


스승이라는 단어가 주는 해석의 차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나는 스승을 월등하고 뛰어난 사람보다는, 길을 인도하는 모범이 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베로키오는 어떤 스승이었을까.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많은 스승들이 그들의 제자를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스승의 날, 나와 내 주변의 스승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서 글을 작성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부의 세계'보다 더한 현실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