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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딜러 한혜미 Jul 15. 2020

그들은 왜 얼굴을 가렸을까

초현실주의 대가 르네 마그리트가 표현한 세계

인사동에서는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데요, 어떻게 전시를 구성했을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그런데 일이 어찌나 많은지.. 바빠서 방문이 계속 미뤄지는 게 슬펐던 마음으로 작성했던 글이에요. 원문은 어플 속 작가들의 미술관 [Sharp Spoon]에서 볼 수 있습니다.

원문보기: http://sharpspoon.kr/interview_detail?id=30






종종 나의 상황에 빗대어서 작품을 바라본다. 덕분에 몇몇의 작품은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데, 상황에 따라 매번 다른 감동을 주는 그의 작품은.. 여전히 사랑이다.




르네 마그리트 <연인들 II(The lovers II)>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땐, 수많은 영화의 영향으로 '죽음'이 연상되었다. 얼굴을 천으로 가리는 모습은 주로 영화에서 공개처형을 앞두었을 때 등장했기 때문이다. 두 인물의 얼굴이 천으로 가려진 것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럼에도 키스를 하는 모습에 애틋한 느낌보다는 무섭고도 음산했다.


어느 날 다시 만난 이 작품은 로맨틱하게 다가왔다. 코로나 19라는 전염병으로 마스크를 쓰며 서로를 바라보는 요즘의 연인들도 연상되었다. 마치 천 너머의 서로를 확인하듯 '그럼에도 사랑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이후보다는 현재의 상황에 집중되면서, 부러울 정도로 애틋하고 달콤했다.


글을 쓰는 지금은 또 다르다. 이제는 '얼굴을 가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집중된다. 현대사회 새로운 유형의 연인들이 떠올랐다.(물론 이 작품이 그려진 시기는 온라인 또는 모바일 만남이 등장하기엔 한참 전이다) 현재의 우리는 지역과 인종, 그리고 나이에 상관없을 정도로 관계망 형성이 넓고 자유롭다. 이런 분위기 속에 온라인과 모바일 등 비대면으로 시작하는 만남이 넓게 퍼지면서, 얼굴을 바라보며 호감을 느끼는 연애와는 다른 시작을 하고 있다. 서로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 채 각자의 해석으로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 <연인들>과 묘하게 겹친다. 사랑하는 이와 천을 두르고 키스하는 것이 아닌, 천을 두른 이들이 키스를 하며 사랑을 찾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들 II> 참 신비하다. 전체적인 구도는 큰 기교 없이 심플하다. 작품 속 화면의 벽과 천장은 실내를 표현한 듯하며, 붉은 상의를 입은 사람과 정장을 갖춰 입은 사람이 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키스하고 있다. 그들을 'The Lovers'라고 부를 뿐 성(둘의 의상으로 보아 남성과 여성으로 유추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유추'라고 생각한다)과 인종, 나이와 외모, 감정과 상황 등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다. 키스하는 그들의 얼굴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인지, 혹은 인상을 쓰며 억지로 맞추고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연인들>을 두고 그가 직접 발표한 뚜렷한 해석은 없다.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어머니의 죽음'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전해질뿐이다.





르네 마그리트 <연인들 I(The lovers I)>




르네 마그리트는 양복 재단사였던 아버지와 모자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어머니의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그러나 13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우울증으로 자살한다. 그의 어머니는 천(잠옷)에 얼굴이 가려진 모습으로 강에서 발견되었으며, 어린 소년이었던 그는 장면을 목격했다.


불행한 가정사가 있음에도 이를 극복하듯 보였다. 그의 아버지는 먼저 떠난 아내를 대신해 그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었고, 이는 그를 원만한 인간관계를 가진 인물로 성장시켰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이 작품을 두고 '어머니의 죽음'을 언급했다. 천으로 가려진 어머니의 죽음을 본 그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작품 속에 얼굴이 가려진 인물을 등장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그는 터무니없는 추측이라며 일축해버렸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 작품과 어머니의 죽음을 연관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어머니'와 연관 지어 바라보면, 그가 표현하고 싶었던 철학적인 '사랑의 본질'이 납득된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단순하게 한 사람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존재가 아닌, '사랑'을 처음으로 베풀며 '사랑의 시작'을 알려주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대상'이자 '본질'을 알게 해 준 어머니가 천으로 가려진 마지막 모습은, 그 본질과 한계에 의문을 품기에 충분하다. 어린 그에게 내재된 어머니의 마지막은, 죽음을 넘어서 그의 세계를 강하게 흔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작품을 다시 바라보니, 조금은 쓸쓸해진다.





Rene Magritte Photo by Steve Schapiro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는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이다. 그는 브뤼셀에 있는 왕립 미술아카데미에서 그림을 시작했으며, 이후 광고 디자이너와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예술가에 대한 열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1926년에 브뤼셀의 한 화랑을 만나서 작품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오늘날의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 대가'로 불리지만, 초현실주의가 익숙하지 않았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그의 작품이 혹평의 대상이었다. 첫 개인전은 실패로 끝났으며, 이 계기로 그는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로 떠난다. 당시 파리에서는 초현실주의를 그리는 여러 예술가들이 활동 중이었다. 르네 마그리트도 그들과 어울리며 점차 자신의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세계를 구축해갔다.


                          

나는 실제로 테이블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그린다
-르네 마그리트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반역(La trahison des images)>




파이프가 그려진 그림 아래에 불어로,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혀있다. 그의 작품들은 <인간의 조건>, <꿈의 열쇠> 등 철학적이고 심오한 이름이 많은데, 이 작품의 제목은 <이미지의 반역>이다. 이미 마르셸 뒤샹이 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전시를 한 후였지만, 대중들에게는 '파이프를 그린 작품을 두고 파이프가 아니라는' 그의 메시지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사실 이 작품의 의미는 단순 명료하다. 나의 초상화가 나라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듯, 파이프를 그린 그림은 실제 존재하는 파이프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단지 우리가 '파이프'라고 부르는 것을 그렸다는 것 외에는 파이프와의 연관성도 없다. '기존의 권위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는 '반역'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작품의 제목이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한번 더 상기시킨다. 이미지와 언어의 관계를 뒤틀었을 뿐인데,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사고가 달라진다.


이런 그의 미술세계는 점점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덕분에 그는 생전에 유명한 작가의 대열에 합류했다. 작품으로 당시의 상황을 묘하게 꼬집었으며,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끊임없이 전해주었다.


생전에 유명했던 그는 사후에 더 유명세를 얻는다. 흥미로운 건, 오늘날에도 우리는 그의 작품 세계를 현대사회에 맞춘 현재 진행형으로 만날 수 있다. 팝아트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을 모티브로 하는 여러 대중문화들을 통해서이다.





좌) 르네 마그리트 <골콩드(Golconda)>, 우) 매트릭스 2 포스터 @네이버영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는 중절모와 잘 갖춰진 옷을 입은 인물이 종종 등장한다. 실제 그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잘 갖춰진 정장과 중절모를 즐겨 착용했다.


<골콩드(또는 겨울비)>는 그런 인물을 한 명이 아닌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수많은 그의 분신들로 나타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르네 마그리트가 그의 분신을 비처럼 내리게 하듯, 영화에서도 스미스 요원이 자신을 무한하게 복제하며 작품을 연상시켰다.





좌) 르네 마그리트 <피레네의 성(The castle in the pyrenees), 우)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틸컷 @네이버영화




<피레네의 성>은 한눈에 봐도 매우 무거운 바위의 성이 해변 위에 떠있는 모습을 그렸다.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육중하지만 하늘과 파도는 매우 평화롭다.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브가 되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우리나라에서 2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보유할 만큼 인기가 많았던 애니메이션인데, 그의 작품이 그려진지 약 50년이 채 되기도 전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외에도 여러 음악가의 음반 표지와 게임에서도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초현실주의 예술가들도 그의 작품을 오마주하고 있는데, 이쯤이면 사후에 더 유명해진 예술가임이 확실하다.


이렇게 르네 마그리트의 세계가 담긴 그림들은 오늘날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사회인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흥미롭기 때문이다. 똑같은 인물이 여러 명으로 복제되어서 비처럼 내리고, 낮과 밤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으며, 달걀을 바라보며 새를 그리는 모습을 어떻게 웃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창의적이고 기발하지만 철학적이고 유쾌하다.



코로나 19의 멈추지 않은 전염으로 많은 이들이 갑갑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과거 많은 예술가들은 세계전쟁이 준 현실의 막막함을 초현실의 세계로 벗어났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에게는 예술이 곁에 있다.

잠시 마나 그의 작품세계를 통해 잠시나마 힘든 시기를 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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