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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딜러 한혜미 Jul 09. 2020

마가렛 킨과 '빅 아이즈'의 비밀

마가렛 킨이 유령화가로 지내야 했던 이유

칼럼을 쓸 때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가 '다양성'이에요. 비슷한 내용/ 인물/ 주제가 반복되면, 미술에 대한 흥미를 주고자 했던 노력이 헛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이번 내용은 유령화가로 지내야 했던 여성화가이자 현재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회고전을 하고 있는 빅 아이즈의 주인공, '마가렛 킨'의 이야기예요. 원문은 어플 속 작가들의 미술관 [Sharp Spoon]에서 볼 수 있습니다.

원문보기: http://sharpspoon.kr/interview_detail?id=37






드라마를 제작할 때 캐스팅 담당자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성인배우와 닮은 아역배우를 찾는 일'이라고 한다. 너무 다르거나 맞지 않으면, 극 중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갈 때 흐름을 깨트리는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그간 봐왔던 드라마가 떠오르면서, '한 명의 인물을 표현하는 닮은꼴 두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면서 기사에서는 나름의 노하우도 적혀있었다. 다른 것을 다 포기하더라도 ''이 닮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마라인, 코 높이보다 '눈'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윤두서 <자화상>




'눈'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국보 제240호인 윤두서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자화상과는 달리 인물의 상반신이 생략된 채 얼굴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다. <자화상>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부리부리한 눈과 덥수룩한 수염이었다. 특히 매서운 눈은 마치 '바른대로 고해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강렬하다. 뚫어지도록 앞을 바라보는 모습이, 빤히 응시하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이 작품은 인물의 체격, 자세, 의복이 그려지지 않았음에도 작품 속 인물의 고집이 매우 세 보이는 느낌을 준다. 또한 가늘고 얇은 목소리가 아닌, 호통을 칠 것과도 같은 굵직한 목소리가 어울리다며 '눈'을 바라보고 상상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눈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상과 인생을 감히 유추해본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떤 성격의 사람일지, 지금의 감정은 어떠할지 떠올려본다. 눈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물을 바라보는 기능, 그 이상의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Courtesy of Margaret Keane, vulture.com




그래서 그녀의 작품에서의 '눈'은 단순히 '크다'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때로는 너무나도 빤히 응시하는 모습에 뜨끔거릴 만큼 모든 것을 관통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작가가 인물의 큰 눈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며, 왜 그녀를 앤디 워홀은 '대단하다'라며 인정했을까.


큰 눈으로 모든 것을 담아낸 미국의 아티스트, 마가렛 킨(Margaret Keane)의 비밀을 알아보자.




눈은 영혼의 창이다
-마가렛 킨



마가렛은 1927년 미국의 테네시 주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Peggy Doris Hawkins이다. 우리에게는 '마가렛 킨(Margaret Keane)'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며, 여성작가가 생소했던 그 시절부터 현재까지 현대미술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기도 하다.


마가렛의 작품은 몇 가지 재미난 비밀이 있다. 먼저,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어린아이 들이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듯한 나이의 아이들이 주인공이며, 유독 크게 그려진 눈이 작품 속 대표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부분이 있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른다면 마냥 순수하다고도 볼 수 있는데, 어쩐지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니 모든 것을 다 아는듯한 느낌이다. 오히려 무언가를 되묻는 듯한 느낌에, 작품에 따라 슬퍼 보이거나 무언가를 갈망하는 느낌까지 받는다.





<Here We Come>, 1991년 작




마가렛은 어릴 적 수술로 인해 후천적으로 소리를 잘 듣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잘 들리지 않는 것이 당연했던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사람의 목소리와 마음을 눈을 바라보며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녀에게 있어서 눈이란 상대를 이해하는 소통의 창구이자, 세상과 연결하는 다리였다. 작품 속의 유독 커다란 눈을 바라보면, 그녀가 어떠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을지 짐작하게 된다. 


물론 그녀의 작품이 처음부터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 불던 추상화 열풍에 많은 추상화 작품들이 매체와 경매를 휘어잡았듯, 당시의 미국도 추상화가 주를 이루던 시기였다. 이러한 열풍은 당시의 배경과도 맞물린다. 세계대전 후 미국으로 건너온 여러 유럽화가들 사이에서 '미국스러운'미술 작품이 필요했던 미국은 잭슨 폴록에 열광했다. 자유롭게 물감을 흘리고 뿌리는 모습에 미술업계가 그야말로 추상화 열풍이었다. 그 와중에 빤히 바라보며 큰 눈을 가진 소녀라니, 당시 미국 평론가들은 그녀의 작품을 혹평했다.


그러나 평론가들의 혹평과는 다르게 대중은 점차 그녀의 작품을 받아들였다. 이해할 수 없는 심오한 추상화들에 비해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큰 눈인 '빅 아이즈'는 그녀의 시그니처가 되며 점차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정확히 말하면, 당시에는 그녀가 아닌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었던 '월터 킨'의 시그니처로 알려지며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마가렛과 월터의 모습 @Courtesy of Margaret Keane, vulture.com




월터를 만나기 전, 마가렛은 첫 번째 남편과의 이혼 후 딸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생계의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그녀가 사랑했던 그림이었지만, 무명 화가인 그녀가 그림으로 생계를 책임지기에는 버거운 현실이었다. 또한 당시 미국 사회의 미술업계 분위기는 남성들에 의해 움직이던 시기였다. 여성화가였던 그녀가 주목받기란 더욱 어려웠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이해해준다고 믿는 두 번째 남편인 월터 킨을 만났다. 그와 가정을 꾸리는 것은 당시 딸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녀에게 있어서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와의 결혼 후 그녀는 남편의 성을 따랐는데, 무심코 작품에 기재한 남편의 성 'KEANE'이 그녀를 '유령 화가'로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작품 속 아이들의 큰 눈만큼이나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두 번째 비밀은, 바로 그녀의 '사인'이다. 사건이 잘 마무리된 지금에야 에피소드로 소개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사실 그녀는 잘못 기재한 사인으로 자신의 작품을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던 유령작가로 전락했다.





<제1 성배>, 1962년 작




이후 그녀는 계속해서 그녀의 성이 되기도 한 남편의 성으로 사인을 했다. 그사이 그녀의 시그니처인 '큰 눈'은 점점 업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녀의 남편인 월터는 자신의 성이 쓰인 것을 내세워서 그의 이름으로 그림을 판매했다. 이후 작품의 캐릭터가 담긴 상품들도 판매하는 등 다양한 곳에서 수익을 창출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그림이 인정을 받을수록 그녀는 더 큰 암흑 속에 빠지게 되었다.


마가렛은 그림을 그리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 자신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흔쾌히 낮은 비용에도 그림을 그려줄 만큼 애정이 가득했지만, 남편에 가려진 채 어둠 속에서 그려야 했던 작품들은 더 이상 그녀를 기쁘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유명세와 경제적인 부를 맛본 월터가 그림 작업이 중단되는 것을 흔쾌히 수락 할리 없었다. 결국 마가렛은 월터의 협박에 못 이겨 누구도 알지 못하게 자신을 꽁꽁 숨기며 계속해서 그려야 했다. 그녀의 딸조차 몰랐을 정도이니, 그녀가 감내했던 고통이 어느 정도였을지 가히 상상이 안된다.


그러던 와중에 점차 그녀의 작품은 '대중 미술'로서 이름을 알렸다. 그녀(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남편인 월터)는 유명해질수록 딸과 세상을 속이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상황에 고통스러워했고, 결국 작은 용기를 내게 된다. 바로 처녀시절 사용했던 이름(마가렛 도리스 호킨스)의 약자인 'MDH Keane'로 서명을 하는 것이었다.





마가렛 킨의 사인 비교/ 좌) 1962년 작품, 우) 1991년 작품




하지만 모든 작품에 그녀가 원하는 사인을 할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작품들은 주로 그녀가 좋아했던 화가 '모딜리아니'와 같이 긴 목의 여성을 그린 작품이었다. 특히 그러한 화풍은 보티첼리와 달리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그렇게 사연을 가득 안은듯한 큰 눈을 그린 작품들과는 다르게 또 다른 그림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물론 월터는 이를 두고 '그림을 그리는 부부'라며 홍보까지 했다고 알려진다.


그 와중에도 유령화가로서 남편의 그림을 그려야 했던 이유는, 남편이 그녀가 다른 낌새를 보이면 딸을 이용해서 협박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녀에게는 스스로와 딸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가장 유명했던 그 시기에 마가렛은 가장 큰 블랙홀에 빠졌다. 


그녀의 작품도, 그녀 스스로도 자아가 분열될 만큼 그 시기의 그녀는 '유령'이었다. 그녀가 점점 어두워질수록, 월터는 폭력적이고 강압적으로 변했다.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월터와 이혼을 결심했고, 뒤이어 그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크고 어려운 것을 실행했다.


바로 그녀를 밝히는 것이다.





<증거물 #224>, 1986년 작




그동안의 작품을 그녀가 그렸다고 밝히는 것은 꽤나 큰 용기가 필요했다. 단순하게 바라보면 그녀의 권리를 찾는 일이었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월터의 이름으로 팔리는 것에 동조해서 사람들을 속이고 수익을 창출한 일이었다. 이것은 곧 범죄를 공모한 것으로도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대중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하기 어려웠다.


또한 월터 역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30년간 자신의 작품이라고 속여왔는데 한순간에 인정할리 만무했다. 결국 1986년 하와이의 한 법정에서 최종 판결이 난다. 그리고 그 판결은, 그녀가 그려온 그림으로 밝혀졌다.


판사와 배심원들이 보는 가운데 월터와 마가렛은 흰 캔버스를 받았다. 그들은 자신의 저작권을 위해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림을 그려야 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그리는 것을 거부하던 월터와 다르게 마가렛은 <증거물 #224>를 그렸고, 이로써 자신을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작가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증거물 #224> 속의 소녀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오묘한 표정이다.


여담으로, 월터는 마가렛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하기 전에 파산했다. 이후 마가렛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마가렛이 월터로 인해 겪어야 했던 고통 속의 세월은 아무도 배상할 수 없게 되었다.




<전원 탑승>, 1992년 작 




그럼에도 마가렛은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도 비로소 미소를 보였다.


<전원 탑승>은 그동안 슬퍼 보였던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이 밝은 얼굴로 모두 함께 그녀를 축하하는 느낌이다. 수달과 곰, 나비, 꽃을 든 소녀, 그리고 호랑이까지 그녀가 아는 모든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비로소 자신을 세상에 밝힐 수 있게 된 희망과 그녀가 있던 하와이의 밝은 날씨는 그녀의 그림을 변화시켰다. 





영화 '빅 아이즈'포스터 @네이버 영화




이후 그녀의 이야기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 아이즈'로 세상에 한번 더 소개되었다. 비록 팀 버튼 감독이 만든 영화로 더 홍보가 되면서, 영화의 내용 대신 감독의 전작과 비교되며 악평을 받기도 했다. 물론 그녀의 아이러니한 인생처럼 이 영화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혹평속에서 마가렛 역을 맡은 에이미 아담스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늘날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을 직접 두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미 90세를 훌쩍 넘겼지만, 여러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이 여전히 소녀같이 밝고 활기차다.


커다란 두 눈, 빅 아이즈로 세상을 매료시킨 예술가 마가렛 킨.

그녀가 그린 커다란 눈은 이제 무엇을 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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