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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피지기 Dec 23. 2022

여덟 살이 되던 해, 나를 찾아온 병

어려서부터 나는 마음이 아팠다.

8살이 되던 해, 나는 학교에 입학하면서 몹쓸 병에 걸렸다.

물론 그 전에도 병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7살까지는 다른 병을 앓고 있었고 어떻게 보면 이 병이 없어진 게 아니라 여덟 살에 찾아온 다른 병으로 덮여 버린 것일 수도 있다.


나는 6살 때 처음 유치원에 입학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유치원에는 5살 때부터 다니던 아이들이 있었던 것 같고 약간의 텃세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단체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엄마와 떨어져서 친구도 없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집으로 가는 버스라고 들은 것 같기는 한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차를 타고 나는 첫날부터 불안에 떨었다. 그리고 친구가 없어서 매일 억울한 일이 생겼고 매일 울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었고, 선생님께 직접 찾아가서 “저는 왜 친구가 없을까요?”하고 상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을 해주셨지만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고 지금은 그때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나아진 게 없어서 그 상담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7살에는 유치원을 옮겼다. 나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잠시 기대했지만 상황은 더 처참해졌다. 옮긴 유치원은 더 엄격했고 나는 반 전체에 ‘울보’라고 소문이 났다. 나를 대놓고 깔보면서 괴롭히는 친구도 있었고, 선착순으로 줄을 서서 준비물이나 간식을 받을 때 나는 늘 꼴찌였다. 매일 마지막에 받는 것이 불공평하고 억울하다고 생각됐지만 방법이 없었다.

또 하나 억울했던 것은 내가 자주 우는 것은 맞았지만 절대로 소리를 내지 않았고 그냥 혼자 조용히 눈물만 글썽였을 뿐이었는데, 수업을 방해하지도 않았고 누구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는데 나는 이름 대신에 ‘울보’라고 불려야 했다.


나는 엄마한테 이런 상황을 절대로 말하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엄마는 내가 유치원에서 운 것을 알았다. 그게 너무 신기해서 엄마한테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엄마가 “엄마는 안 봐도 다 알아.”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정말로 보지 않고도 다 아는 줄 알았다. 엄마한테 초능력이 있는 줄 알았다.


어쨌든 내가 유치원에서 우는 것을 엄마가 알아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7살이라는 나이에 벌써 앞날의 희망을 다 놓아버렸다. 그냥 마지못해 살았다. 그렇지만 그게 바닥이 아닌 것 같고 8살이 되면 국민학교에 입학하는데 그건 더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유치원에서도 상황이 이런데 학교에 간다고 나아지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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