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피지기 Dec 21. 2022

우리 집이 이상하다고 느꼈던 몇 가지 계기

맹목적인 믿음과 맹목적인 의심

내가 초등학생 때 썼던 일기 중 일부는 아직도 우리 집에 남아있다. 거의 읽지 않고 그냥 보관만 하고 있지만 그중 한 편을 한 5년 전쯤 우연히 읽었는데 거기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우리 집 자랑은 엄마는 부지런하시고 아빠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시고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마지막으로 내 동생은 까불고 욕심부리기는 하지만 잘못하면 곧 잘못을 빈다. 그리고 인사도 잘하고 심부름도 잘한다.

이 얼마나 완벽한 모습인가? 그런데 이 일기를 읽는 35살의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을까? 마흔이 된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이다. 9살의 나에게 말을 할 수 있다면 그건 너의 착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가도 굳이 환상 혹은 동심을 깨고 싶지는 않기도 하다. 그런데 이 생각(우리 가족에 대한 환상)은 꽤 오래 지속되었고 그게 문제였던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었다. 매사에 의심이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나를 속이고 놀려먹는 친구도 있었다.

어릴 때 그런 거야 귀엽게나 봐줄 수 있지만 문제는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은 대학 때 재미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우리 과에서 가장 사기를 잘 당할 것 같은 사람 1위로 내가 뽑힌 것이었다. 평소에 활발하고 나대기라도 했으면 그냥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친구가 많은가 보다 하고 넘길 텐데 나는 거의 아싸에 가까운 사람인데 뭔가에, 심지어 별로 좋지도 않은 내용으로 1위를 했다는 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이 정도로 의심이 없는 사람인지라 내가 9살에 일기장에 썼던 '우리 집은 완벽한 가정'이라는 이 이미지도 거의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중 거의 처음으로 가장 크게 의심이 됐던 일 중 하나는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우리 집에 한 번은 미국에 사시던 엄마의 친척분이 오셨을 때였다.

아마도 엄마의 외사촌오빠이신 것 같았는데 미국에 사시다가 잠시 한국에 볼일이 있어 우리 집에 며칠 머무셨다. 이 분이 계시는 사이에 과외선생님이 밤 11시쯤 오셔서 과외를 하고 가셨다. 과외선생님이 가시자 이 분이 놀라서 이거 아동학대 아니냐는 내용의 말씀을 하셨다. 아동학대라고 하셨는지 아니면 인권침해라고 하셨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 내 생각에는 아동학대라는 내용의 말씀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몹시 당황하시고 언짢아하셨.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만 이런 게 아니라 공부 조금 시킨다 하는 집은 고등학생이면 이 정도는 흔히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학대라니? 내가 방에 있을 때 거실에서 엄마랑 그분이 둘이 나눈 대화였지만 본의 아니게 너무나 잘 들렸다. 물론 문화차이일 수는 있는데 이게 미국에서는 학대라니. 더군다나 그 시대가 이제 막 2000년에 들어선 시기, 밀레니엄이라며 들떠있던 20년도 더 전의 일인지라 그 시절에는 '아동학대'라는 말도 거의 쓰이지 않았던 때였다. 내가 당하고 있는 게 학대라니 그것이 충격이었다. 이 일로 인해 내가 처한 상황이 '누구나 다 이렇게 사니까.'라고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들었던, 내가 나를 의심하게 됐던 계기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나는 처음으로 짝사랑이라는 것을 해봤는데 좋아하는 남학생이 나를 보더니 뜬금없이 "너 혹시 자냐?"라고 한 것이다. 어찌 보면 위에 쓴 이야기보다 이게 더 충격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우와. 얘는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내 행동이 이상한가? 우리 아빠는 더 이상한데? 그럼 우리 아빠도? 우리 사촌 남동생 한 명도 특이했던 것 같은데... 그럼 얘도?' 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심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게 꼭 기분이 나쁘다, 걔가 말을 함부로 했다 이럴 일이 아니라 나는 이 일을 계기로 나 자신을 알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했고 자폐를 비롯한 발달장애(고기능 자폐와 아스퍼거, adhd 등)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게 경계에 있는 경우에는 알아채기가 쉽지 않아서 아직도 이 일은 진행 중에 있다.

내 직업도 직업이다 보니 이 쪽 계통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나에게 때로는 도움이 됐다.



물론 내가 너무 예민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단서들은 철석 같은 나의 믿음과 환상을 조금씩 깨뜨렸고 그 틀에서 나올 수 있게 해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환경이라는 것은 워낙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아직도 나는 나의 원가정에서 마흔 살인 지금까지도 정신적으로 독립하지를 못했다. 독립했다고 느꼈을 때가 몇 번 있긴 했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고 교만이었다. 그냥 나는 맹목적인 믿음에서 벗어나 맹목적인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맹목적인 믿음보다는 맹목적인 의심이 더 나은 게, 맹목적으로 믿으면 뭘 알려고 하지 않고 뭘 더 생각해볼 이유도 없지만 맹목적인 의심을 하면 계속 "왜?"라는 질문이 생기고 공부하고 알아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의심을 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외할머니는 사실 코디펜던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