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2020년도 끝나간다
재택엔 단점이 없었다. 지금도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이 너무 피곤하다. 그렇지만 나조차도 잘 모르는 미래를 위해서 참아야지. 일 년을 돌아보게 되네, 나의 2020년. 코로나 19 때문인지 정말 아무 정신없이 지나가는 듯했지만, 연말로 갈수록 내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는 여러 부분에서 한 해의 마무리를 짓게 된다. 어느 해보다도 한 해동안 나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했다. 혼자여도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큰 목적이었다. 나를 찾으려고 멀리 떠나려고 했던 계획은 온 세상에 도는 전염병으로 인해 실패하게 되었지만, 그 문이 닫히는 동시에 다른 문이 열리기도 했다.
짧게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터에서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어쩌다보니 계속 일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웹디자인이라는 업을 그림만큼 사랑하지 않는다. 그 둘은 완전히 다르다고 학부생 때부터 생각했었다. 입시 이후부터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 디자이너가 되고싶었던 적은 진로를 정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생업이라는 게 꼭 내 호, 불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내적 갈등도 심하게 하고 내 심정을 백 프로 이해해 주지 못할 주변인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었다. 그 과정들을 지나며 나 스스로가 내 현실을 받아들이니 많이 편안해졌다. 거기에 보탬이 된 큰 요소는 바로 작업실이다.
올해 초에 구한 작업실은 집에서 20분 거리의 미술학원 2층. 학원의 원장님과 선생님들이 운영하시는 곳이다. 신기하게도 미술학원 2층으로 올라가면 앞뜰에 정원이 있는 구옥의 가정주택 건물이 나온다. 그 주택 안을 개조해서 작업실로 만든 곳인데, 큰 나무가 있는 그곳이 흡사 비밀의 정원같기도 하고 작업실 안에 들어서자마자 코에 퍼지는 재료들의 냄새가 여긴 나와 딱 맞는 공간이구나 라는 느낌을 주어 곧바로 계약했다. 이번 달이 벌써 6개월 째다.
퇴근 후엔 작업실을 간다. 매일 가진 못한다는 것과 퇴근 후의 체력으로는 오랫동안 그릴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초반에는 기쁨만큼 슬픔도 컸다. 아침에 회사로 가는 지하철을 타는게 아니라 이 작업실로 와서, 해가 떠 있는 동안 그림을 그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다. 그렇다고 괴로움 때문에 작업실 가는 것을 관두는 게 더 불행할 것 같아서 그만두고 싶진 않았다.
짧지만 유일하고도 완전하게 행복한 순간이기에.
그리고 그 우울함이 강하게 오는 슬럼프의 시기가 있었는데, 그 시기가 지나니까 인생의 어떤 것들은 내가 도무지 아쩔 수 없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 같다. 나에겐 직업이 있고, 매일 가진 못하지만 그래도 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언젠가는 그곳에서 하루의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생산적으로 살아갈 날을 꿈꾼다. 당장은 현재의 일과 병행해야 해서 느리더라도 말이다.
어차피 느리게 가는 상황이 싫다고 해도 당장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재택 근무 기간을 통해서 나에게 재택근무라는 근무형태가 잘 맞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신체 리듬이 안정되어 건강과 체력이 훨씬 좋아졌다. 한 달 만의 내근이었던 오늘 오랜만에 본 팀원은 나에게 인상이 너무 밝아졌다고 까지 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집에서 만든 음식으로 세 끼 식단을 꾸리고, 출퇴근길 지하철에 끼여 타는 고생을 하지도 않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스트레스가 훨씬 줄었기 때문이다. 퇴근 후에는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와 취미 활동을 하면서 평온한 저녁을 보냈다. 매일 끓여 먹는 따뜻한 보리차도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되었다. 요즘 코로나 19로 인해서 좋아하는 운동을 못하는 게 슬프긴 하지만. 일상을 잃어버린 사람이 나뿐인가, 다들 어렵고 힘든 상황이니까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을 잘 살아가면서 꿈도 잃지 않는다면 절망만 있진 않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시간을 쏟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허락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게 남을 사람들은 남고 떠날 사람들은 떠나는 체험을 의식적으로 생생하게 한 해였다. 떠날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떠난 경우도 있었다. 내가 앞으로 맺을 인연에 대해 더 신중해져야겠다고 처음으로 경험을 통해 배웠다. 내가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진심으로 기뻐해 줄 사람이라면 편하게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었고, 아닌 경우는 시샘을 하거나 비꼬는 것이 느껴져서 괴로웠다. 그런 관계들은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누군가를 만날 때는 이제부터라도 상대방을 섭섭하게 만들지 않을 만큼 더 관계에 신경 쓸 수 있는지 신중히 고민하기로 마음먹었다.
내년에 이루고 싶은 것들이 분명 있지만, 지금은 모두가 코로나로 인해 어렵고 힘들다. 당장의 끼니도 해결하기 힘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황창연 신부님의 유튜브를 보고 신부님이 말씀해주신 것은 주변의 어려운 이웃이 얘기하는 '가장 힘든 순간'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릴 때라고 한다. 사실 그게 얼마나 괴로운 건지 나도 아예 모르진 않아서, 내가 따뜻한 집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가까운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시간들이 거저 얻어진 게 아닌 세상 반대편 누군가의 희생 때문이라는 생각을 요즘 들어하게 된다. 그래서 내 즐거움을 조금은 덜어내고 너무 거기에 빠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김웅열 신부님도 유튜브 커뮤니티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모금을 여셨는데 연초까지 한다고 하시니, 미사에 참례하지 못해서 봉헌하지 못한 헌금들을 신부님 말씀처럼 그곳에 후원하는 것이 좋겠다. 신부님은, 교회의 살림에 보탬이 되는 것보다 현재는 교회 밖으로 눈을 돌리고 손을 뻗어 어려운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가야 한다고 하셨다. 나에게도 갚을 빚들이 남아 있지만 난 그래도 현재 가진 게 많은 사람이다. 따뜻하게 지낼 수 있고 출퇴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나 자신만을 생각하고, 나만을 위해서 사는 삶은 피폐하다. 결국 그 욕심은 끝도 없다. 어떤 조건을 걸고서 나중에 해야지 라고 말하는 삶, 혹은 이만큼만 줘야지 하고 좁게 한정 짓는 삶은 너무 갑갑하다. 그 안에서만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랄까? 발전도 행복도 없는 삶이다. 나는 지금 나에게 지극한 사랑을 퍼붓는 존재 덕분에 그 무한성을 알게 되었다. 나눔의 무한성 말이다. 사랑을 주는 것에는 끝도 없고 한계도 없다. 그리고 그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보이지 않는 신의 은총은 숨결을 가진 사람의 형상을 통해 나에게 그걸 알려주었다. 보이지 않아도 믿는다고 말로는 말해도 한참을 부족한 인간이기 때문에 손을 잡고 대화하고 온기를 나눌 사람들이 옆에 없다면 사랑이라는 존재를 느끼기에 힘든 것 같다. 내가 성인(Saint)이라면 조금 달랐을지도. 하지만 나는 너무나 나약하기 때문에 인간의 온기를 필요로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도 온기를 품고 그걸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숨고 싶지도 않고 등을 보이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그 마음만큼은 매순간 진심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