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20살 때는 대학교에 가기 전 떨리고, 설레고 기대감이 가득했다. 우리 학교는 서울에 있는 몇 안 되는 널찍한 캠퍼스가 있어서 잔디밭에서 짜장면도 시켜 먹고, 축제마다 활기 넘치는 분위기에 괜히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전면 유리로 되어있는 천정 높은 도서관에서 가끔 책을 빌려 읽으며 미래에 나는 뭘 할까 상상하며 설렜다. 생각해 보면 내가 공부했던 기계공학은 싫었지만 우리 학교는 꽤 좋았던 것 같다.
10년 전 지금쯤이면 멋진 커리어우먼이 돼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머나먼 나라에 와서 1학년에 다시 입학을 하고 있는 나. 처음 도시에 도착해서 사야 할 것들 때문에 시내에 갔다. 쇼핑몰은 하나 있고 시내가 너무 조그맣다. 이런.. 그래도 Asian Market이 있었다. 라면 몇 개와 간장, 고추장 등을 샀다. 날씨가 너무 좋았는데 나의 마음은 먹구름이 낀 것 같았다.
드디어 학교에서 입학식 등 여러 행사를 시작했다. 학교 사람들과, 학교를 다니는 한국인들을 처음 만나는 날이었다. 이런 것들이 나에게는 너무 스트레스지만 사교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용기를 내 말을 걸었다. 생각보다 1학년으로 들어온 한국인들의 나잇대가 다양했다. 그리고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전교생은 1학년만 거의 200명이 될 정도로 많았다. 반이 10개 정도로 나뉘었다. 우리 반에는 나 포함 한국인이 4명이나 되었다. 우리 반에 있는 여자 한국인 분은 외국에서 살다 와서 그런지 처음엔 한국인과 잘 어울리지 않아 약간 당황스러웠다. (지금은 엄청 친해졌지만)
학교에서 신입생들을 위한 학교 투어를 했다. 외국인들이 많았는데 특유의 외향적인 느낌이 적응이 안 된다. 우리 반은 인도인들이 아주 많았다. 파키스탄 등 다른 나라출신도 조금 있었다. 나는 조용히 있고 싶은데 다른 친구들은 말을 많이 하고 싶어 해서 기가 빨렸다. 그래도 대부분 한국에 호의적이고 착한 친구들이다. 외국 친구들은 (아시아권 아닌) 매우 텐션이 높아서 아마 우리나라 대부분이 외국에 가면 극 내향인으로 보일 것 같다. 내가 늙은 건지 성격이 바뀐 건지 그런 행사에 다녀오면 힘이 쫙 빠진다.
입학식을 갔다. 빨리 졸업하는 날이 오기를.. 거주증 등 직접 가서 신청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아주 골치 아팠다. Register Office에 가서 계속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해야 할 것들을 다 진행했다.
학교 첫 주에는 수업 중간에 너무 답답하고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그때마다 친구가 다독여줘서 적응을 잘할 수 있었다. 학교 건물이 약간 이상하게 지어져 있고 제대로 교실이 안 나와있어 수업 강의실 찾는 것도 어려웠다. 한국에서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과제 등 깔끔하게 성적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어떤 수업은 쪽지시험을 몇 점 얻지 못하면 진짜 시험자체를 볼 수 없는 것들도 있고, 모든 과목이 다 자신만의 시스템이 있었다. 머리가 아팠다.
학교 홍보 영상과는 달리 학교는 정말 조그맣고, 도서관은 한국 도서관에 비하면 너무 시설이 낙후되어 있었다. 나에게 이렇게 장학금도 주고 공부를 시켜주는 학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야 하는데 자꾸만 불만이 생기는 나에게도 짜증 났다. 거기에다가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회성 좋던 나는 다 어디로 사라져 버렸다.
선배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유급을 정말 많이 한다는 것을 들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 무서워졌다. 1년이 나에겐 너무 긴 시간이다. 시간뿐만 아니라 돈도 그만큼 낭비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너무 무서워서 학교 첫날부터 남아서 공부를 했다. (사실 그건 좀 오버였다고 생각한다. 배운 게 없어서 공부할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