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짓 그만 하시라.
선물을 받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마도 기쁘고, 상대에 대한 고마운 감정이 들 것이다. 이 사람이 나에 대한 생각이 이렇게 깊었구나, 나를 챙기고 있구나 등 좋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아울러, 나도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싶어질 때가 많다.
나는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출판사와 작가님들에게, 과분한 선물을 많이 받았다. 그 분들의 신간을 리뷰해 드리는 기회도 얻었다. 그래서 나는 늘, 출판사에서 리뷰를 제안하지 않고 보내주신 것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는다.
그 분들이 글을 쓰시고, 책을 출간하시는 노고를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을 잊지 않고 챙겨주심에 감사하다. 그래서 나는 선물 받는 것이 좋다.
하지만, 모든 선물이 다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최근 경험을 통해, 이 일을 배울 수 있었다. 2022년 6월 20일 출근길. 모처럼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하고 지하철을 타려는데, 스마트폰 택배 앱 알림이 도착했다.
지인의 요청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응? 내게 선물 보내는 지인이 있다고? 이런 생각에 택배 알림을 유심히 읽었다. 책 제목처럼 보이는 상품명이 눈에 띄였다. 나는 처음에 출판사 측에서 내게 보내는 것이나, 혹은 내 지인 중 독립출판이나 출판사 계약을 체결한 후 책을 쓴 사람이 선물로 주는 것인가 했다.
집에 도착하여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뜯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정확히 10초 뒤에 분노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그 선물의 발신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종교 단체였다. 이름 모를 단체가, 어떻게 내 이름과 집 주소를 귀신 같이 알고 보낸 것이었다. 나의 감정선은 어이없음을 먼저 느꼈다. 그 후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내 블로그에 "불곰은 모태 대한불교 천태종 신앙을 가지고 있다"라고 그렇게 명시했건만, 이 인간들은 대체 무엇인가 싶었다.
극한 분노를 겨우 누르고 책 가격부터 살펴 보았다. 이를 알아야 반송 택배 가액을 입력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책 뒷장을 보고 극한 화를 느꼈다. 사극에서 왕들이 밥상을 엎는 모습은 애교였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책 뒷 페이지에 가격이 적힌 란에 있었던 문구 한 줄 때문에.
이 책자는 "OOO 단체에서" 전도용으로 제작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내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도용해서 전도를 하시려 하셨다... 이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는 선물이었다. 화가 가라 앉으니 두려움이 느껴졌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영화 범죄도시의 전일만 반장의 대사처럼 죄 많은 인생이기에 이런 일이 있는 것일까. 아니지... 이름 모를 종교 단체가 내 신상을 알았으니 이거 가지고 악용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일단 저 책은 반송가액 100원을 기입하여, 반송시켰다. 택배사 규정상 가액을 입력해야 했는데 책값이 무료라고 하니까 이거 뭐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 단체를 비하하려는 게 아니라, 가격이 없으니 반송 시 가액을 어떻게 입력해야 하나 생각했고, 고민 끝에 100원을 기입하였다.
책 블로그를 10년간 운영하면서, 또한 책 분야 인플루언서로서 활동한 지 1년 7개월 간 이렇게 기분 나쁘고 화나는 선물은 처음이었다. 출판사 관계자 분들도 종교 관련 책이면, 메일에 정성스럽게 "이 책은 어떤 신학자 분께서 이러이러한 목적으로 쓰신 책입니다. 리뷰 가능하신지요?"라고 황송스럽게도 먼저 여쭤봐 주시는데... 이 사람들은 개인정보보호법까지 위반하면서 이 무슨 추태인가.
오늘은 화가 난 상태에서 출근을 했고, 회사 상사 분들께 자초지종을 먼저 말씀드린 후, 관련 법제기관에 연락해서 자문을 받았다. 친절하게도, 모든 분들이 이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사유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덕에 오늘 내 과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과업 수행 90%를 달성하던 시점부터 심장이 요동치게 뛰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횡단보도에서 다리 힘이 풀려서 주저 앉았다. 아파트 단지 앞 언덕길에서는 정신을 놓을 뻔했다. 정신을 붙들지 않았다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아니지. 내가 영안실에 있었겠지.
내가 이 글을 "10년차 블로거의 꿀팁과 희로애락" 에세이에 남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저 종교 단체 분들에게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다. 나를 포함한 도서 인플루언서, 그리고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당신들에게 이용당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나는 이것을 꼭 말하고 싶었다. 아울러 이런 짓 제발 하지 마시라고.
도서 인플루언서와 책쟁이들은 책이 주는 기쁨과 인사이트, 작가님의 상상력을 순수한 마음을 갖고 책을 사랑하고 알리는 사람들이다. 당신들의 교리를 알려주기 위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나는 당신들을 욕하거나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이용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세상 가장 기분 나쁜 선물을 받으며, 끄적인다. 나와 같은 일을,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겪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