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휴식을 취할까? 필요성이나 본질, 목적 등에는 변화가 없겠지만 휴식을 취하는 방식만큼은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현재만 봐도 그렇다. 예전엔 경치 좋은 곳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천천히 산책하는 것이 휴식이었다면, 요즘은 스파, 마사지, 사우나, 요가, 명상 등 전문 시설에서 이를 담당한다. 미래엔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등을 활용해 짧은 시간 내에 몰입적인 휴식을 제공하는 방법들이 많아질 것이다.
트렌드를 연구하지만,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사람으로서 현실 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물리적 감각이 매끄러운 기술과 가상으로 대체되는 것이 기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흐름은 흐름이다. 또 오히려 바쁜 라이프스타일에 치여 사느라 잊고 지내던 감각을 되살려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복잡해지고 도시화된 사회에 지친 미래의 사람들은 이런 몰입적이고 오감을 자극하는 디지털 휴식 방법을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활동처럼 즐길 것이다. 지나치게 빠르고 정신없는 디지털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디지털 기술로 만든 느리고 평화로운 공간으로 들어간다. 역설적이지만 디지털로 발생한 생활 방식상의 문제를 다시 디지털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증가한다.
요가 스튜디오 플라이 런던(FLY LDN)은 스튜디오 안에 4K 디스플레이를 설치했다. 요가는 디지털과 가장 거리가 먼 운동 중 하나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수련으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취하는 동안 기술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하지만 이곳에선 초고화질 디스플레이를 도입해 사람들이 좀 더 잘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파도, 해변, 산 등 자연 풍경을 보면서 도시의 요가 스튜디오에서도 자연과 같은 분위기를 느낀다.
여기 미래의 휴식에 대한 비전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미국 럭셔리 이스케피즘(Luxury Escapism)팀이 설계한 오들리 새디스파잉 스파(Oddly Satisfying Spa). 일반적인 스파와 전혀 다른, 새로운 개념의 스파를 제시한다. Oddly Satisfying을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뭐라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희열? 만족감? 따위의 묘한 쾌감을 일컫는다. 이들은 Oddly Satisfying에 해당하는 콘텐츠를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올리기도 했다.
http://instagram.com/luxuryescapism
특히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끈 슬라임이 Oddly Satisfying을 대표하는 한 예다. 왜 하는지 모르겠고 왜 보는지 모르겠는데 계속 보게 되고 만지게 되는 것. 화려한 제빵 기술을 선보이는 영상이나, 약간은 역하지만 모공 속 피지를 짜는 영상, 그것도 아니면 한창 유행했던 피짓 토이까지. 이들 모두 ‘묘한 쾌감’이라는 범주에 해당한다.
사람들이 무의미하지만, 묘한 만족감이나 쾌감을 얻는 행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마음을 진정시킨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래서 이 감각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경험적으로 디자인했다. 가상현실이나 식물의 바이오 데이터 등의 기술을 활용해 사람들의 묘한 쾌감을 일깨운다. 식물이 생성하는 데이터를 소리로 전환해 명상에 도움이 되는 백색 소음을 듣는다. 가상현실을 보면서 기분 좋은 촉감을 가진 물건을 만지작거린다. 한 시간이 넘는 코스로 진행돼 있으며 디지털, 스마트폰 등에 매몰돼 있던 현대인의 시각, 청각, 촉각 등의 감각을 자극한다.
휴식이 될까 싶지만, 묘한 감각에 이끌려 있는 만큼은 현실의 고민이나 디지털 기기로 인한 끊임없는 연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의 표현대로 럭셔리한 현실 도피다. 이미 존재하는 감각과 이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트렌드 혹은 행동을 디지털로 디자인한다. 스크린에 매몰돼 있던 현대인들은 이곳 공간을 구석구석 탐험하며 평소 잘 쓰지 않던 감각 경험을 되살린다. 디지털 시대에 상대적으로 소외된 촉감을 공간 곳곳에 녹여낸 점이 흥미롭다.
배우 겸 가수인 도날드 글로버(Donald Glover; 차일디시 감비노 Childish Gambino)는 11월 말 뉴질랜드에서 개최한 단독 페스티벌에서 뉴캐슬 웰니스 센터(The Newcastle Wellness Centre)라는 공간을 설치했다. 말 그대로 힐링 센터이다.
https://www.dezeen.com/2018/12/14/childish-gambino-newcastle-wellness-centre-installation/
감정적으로 격양된 음악 페스티벌과 차분한 힐링 센터는 낯선 조합이다. 아디다스와 패션 컬렉션을 제작하면서 진행한 이벤트인데, 앞서 소개한 럭셔리 이스케피즘의 사례와 인터렉션이나 감각 경험, 교류 등을 강조한 점이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이곳에선 첨단기술까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 가상현실이나 센서 등을 활용했다면 좀 더 미래적이고 초현실적인 휴식 공간의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건강을 테마로 하는 하얀색, 파란색, 빨간색 등 총 세 가지 색상의 방으로 이뤄져 있으며, 각 시설 안에서 사람들은 소리 목욕(Sound Bath), 코스믹 허밍(Cosmic Humming) 등의 다소 초현실적으로 들리는 체험을 한다.
하얀 방은 체험을 막 시작하는 입문 단계 개념으로, 입장객들은 마오리족과 인사를 나눈다. 또한 그곳에는 아디다스와 협업한 패션 컬렉션이 전시돼 있다.
파란 방부터는 본격적인 감각 인터렉션이 촉발된다. 다양한 소리, 촉감, 시각적 자극을 바탕으로 체험을 극대화한다. 파란 방의 이름은 진실의 방(Truth Room)인데, 원통형의 천이 천장에서부터 축 늘어뜨려져 있다. 사람들은 방에 입장해 서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타인과 상호작용할 것을 요구받는다. 사회적 상호작용에 영감을 주기 위한 공간으로, 스마트폰 사용은 금지된다. 원통형 천에 들어간 사람들은 시각이 차단되는데,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시각적 신호를 제거한 후 오로지 자신의 직감과 추측으로 타인과 연결되는 경험을 한다.
빨간 방은 촉감이 강조된 방으로 매우 부드러운 물질로 가득 뒤덮인 방에서 휴식을 취한다.
요즘 리테일 업계에서 많이 도입하고 있는 가상현실도 미래 휴식 공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록시땅은 미국 맨해튼에 체험형 매장을 오픈하면서, VR 헤드셋을 쓰고 록시땅의 고향인 프랑스를 탐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고객이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동안 직원이 손 마사지를 해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향이다. 향을 강조하는 브랜드인 만큼 라벤더나 버베나 등의 향기로운 핸드 제품을 사용해 마사지를 하는 것이다. 마사지를 받는 고객은 실제 프랑스 마을에 도착한 것처럼 몰입적이고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을 느낀다. 잠시 나마지만 프랑스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을 제공하는 게 목적이라고.
https://www.retaildive.com/news/loccitanes-new-nyc-flagship-boasts-experience-rich-concept/530582/
스크린 요가 사례를 제외하면 모두 낯선 대상과 물리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디지털 시대에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감각인 촉감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가상현실은 게임처럼 자극적이거나 신나는 것에 주로 사용될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명상이나 자연과 교감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많이 내놓고 있다. 외부로부터 주변을 철저히 차단해주며 사용자를 전혀 다른 공간으로 초대한다. 가상현실만이 제공할 수 있는 압도적인 시각 경험에 청각, 촉각, 후각 등의 감각을 함께 프로그램화하는 식이다. 지금이 시각에 편중된 디지털 시대라면 미래는 오감을 압도하는 디지털이 대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