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틴 Feb 13. 2020

부대에 내려오는 미신

미신이라는 것은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미신들은 과학적인 것보다 이해가 쉽고 자극적인 내용들이 많아 근거가 불명확함에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군대가 주로 교외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보니 산으로 둘러싸이고 사람도 많지 않다. 밤이면 자연스레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어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귀신 목격담 중 다수가 군대에서 있었을 때인 것은 괜히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근무를 서거다 훈련을 하다 한 번쯤 목격담이 나오면 잠 안 오는 날 생활관에서  불 꺼놓고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병사들 사이에선 주로 귀신 목격담이 많이 전해 내려오는데 간부들 사이에서는 귀신 목격담도 있지만 미신들도 같이 내려온다. 이런 이야기들은 주로 부대에서 오래 근무한 부사관들에 의해 전해 내려왔는데 당시 우리 부대에 내려오던 미신들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첫 번째. 큰 나무는 자르지 마라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큰 나무에는 영혼이 서린다는 미신이 내려온다. 크고 오래된 나무일수록 신성시 여겨 

 마을에서 가장 큰 나무에 제사를 지내거나 기우제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 아직도 교외지역으로 가면 몇 백 년 된 나무들이 마을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다. 

군부대들은 대부분 이런 교외지역에 있고 산을 끼고 있는 경우가 많아 부대 내에 큰 나무도 많다. 우리 부대 역시 큰 나무들이 많았는데 이런 큰 나무 자르는 것을 금기시했다. 예전에 두 번 정도 큰 나무를 자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마을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한 번은 우연이라 쳐도 두 번째엔 찝찝해질 수밖에 없다. 


예로부터 큰 나무는 신성시해왔다

그러다 하루는 상급부대에서 부대에 큰 나무를 베라고 지시가 내려온 적이 있다. 포병의 화포들은 항상 적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데 그 앞에 걸릴만한 나무들은 모조리 베라는 지시였다. 

처음 지시를 받았을 때 이미 행정보급관한테 나무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터라 부사관들이 반대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상급부대의 지시라는데 거기다가 미신을 들이대며 반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주임원사가 그냥 우스갯소리처럼 대대장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는데 대대장 역시 찝찝하면서도 명확한 명분이 없으니까 '정 찝찝하면 자르기 전에 막걸리라도 뿌리고 자르라'라고 지시했다. 

결국 우리 포대 구역에는 큰 나무가 3그루가 잘려나갔는데 다음날 행정보급관이 꿈에서 3명의 저승사자가 자신의 집에 찾아오는 꿈을 꿨다며 찝찝해했다. 그래도 다행히 나무를 잘랐다고 누군가 죽거나 하지는 않았다. 

 


두 번째. 사격장의 무명고

명절 때면 합동차례를 지내고 항상 행정보급관이랑 부대 뒤에 있는 영점 사격장에 올라갔다. 사격장에 올라가는 길 한쪽에는 비석 없는 작은 무덤이 하나 있다. 얼핏 보면 그냥 흙이 쌓인 정도로 착각할 수 있어 행여나 실수로 밟을까봐 노끈 같은 것으로 주변에 경시 줄을 쳐 놓았다. 그 작은 무덤은 포대를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분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17살쯤 되는 소녀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명절 때마다 이곳에 술 한 병과 약간의 제사음식을 갖고 올라와 절을 올리곤 했다. 부디 부대에 큰 사고 없게 해 달라는 일종의 고사인 것이다. 재밌는 것은 이러한 고사를 지내는 것이 우리 포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 포대별로 명절 때 이런 의식을 치르는 장소가 따로 있었다. 행정보급관이나 포대장들 성향에 따라 이러한 행사를 지내기도 하고 안 지내기도 했는데 어떤 포대에서 계속 자잘한 사고들이 일어나자 한 동안 고사를 안 지내서 그런 거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행정보급관과 나는 명절때 마다 꼬박꼬박 올라갔고 덕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큰 사고 없이 암가룰 마칠 수 있었다.  



세 번째. 여군 휴게실 괴담

이것은 미신보다는 실제 경험자가 있는 하나의 괴담이다. 

부대에는 여군 휴게실가 하나 있다. 간부 휴게실과는 별도로 여군들의 휴식을 위해 만든 곳인데 원래 있던 여군이 전역을 해서 당시 부대에는 여군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방치하기도 뭐해서 그냥 간부 휴게실처럼 사용했다. 하루는 중사 한 명과 상사 한 명이 전날 당직근무를 서고 자고 있었다. 그날은 쉬는 날이었고 둘 다 집이 차를 타고 30분은 가야 되는 거리라서 좀 자고 난 뒤 가려고 했다. 한참 자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자고 있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여기 여군 휴게실 아니에요?"

여자 목소리에 둘 다 잠시 잠에서 깼고 상사가 잠결에 그 사람 얼굴도 제대로 안 보고 "네 아니에요."라고 대답했다. 물론 여군 휴게실은 맞지만 여군이 없다 보니 간부 휴게실처럼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당직을 서고 피곤하다 보니 그냥 대충 대답했다. 그 사람은 "죄송합니다"하고 그냥 나갔고 두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다시 잤다. 

그렇게 한참을 자다 중사가 먼저 일어나 짐을 챙기려 지휘통제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당직사령을 서고 있던 중위에게 물었다.

"OO 중위님 아까 들어온 여자 누굽니까?"

당직을 서고 있던 중위는 "무슨 여자 말입니까?"라며 되물었고 오늘 부대에 들어온 여자는 없다고 했다. 

중사는 소름이 끼쳤다. 혼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상사와 같이 있으면서 분명히 여자가 들어왔었고 그 여자의 질문에 대답한 것도 본인이 아닌 상사였다. 

위병조장에게 전화해서 다시 확인해봤는데 오늘 여자가 들어왔다는 기록도, 나간 기록도 없었다.

곧이어 상사가 일어나 지휘통제실로 들어왔고 혹시나 자신이 꿈을 꾼 건가 싶어 다시 물었다. 


"O상사님 아까 저희 잘 때 여자 한 명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안 그래도 물어볼라 했는데 그 여자 누군데 여기 들어왔냐?"



과연 그때 그 여자는 누구일까를 추측해봤지만 위병소 기록도 없고 귀신이라고 하기엔 건물이 새로 지은 지 몇 년 되지도 않았고 그동안 딱히 여군과 관련된 사건도 없었기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어찌 됐든 간에 그 후로 다시 여군이 들어올 때까지 여군 휴게실은 아무도 가지 않았다.

그 후 1년 뒤에 새로 여군이 들어왔고 그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분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고 그곳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다. 무슨 일 없냐고 물어봐도 딱히 별일 없다고 했다. 다행히 여군 휴게실에 귀신이 들린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때 그것이 뭐였는지에 대한 의문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간부가 생각하는 '잘하는 병사'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