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현이(가명)를 처음 봤을 때 큰 키에 마르지 않고 적당한 체구를 갖고 있어 무거운 포탄을 나르는 포수(포탄을 쏘는 임무를 하는 직책)로서 좋은 신체조건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어딘가 모르게 눈빛이 살짝 불안해 보이는 느낌은 들었지만 이등병들에겐 흔히 보이는 것이라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서 적응만 잘하면 군생활을 잘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첫 면담 이후 군 생활 중 만난 병사 중 가장 난해한 친구라는 것을 알았다.
우선 첫 면담 자체도 일반적이지 않게 이루어졌다.
보통 신병 면담이라 하면 포대장실에 신병을 불러 가볍게 인사하는 차원으로 면담을 하는 식이었으나 이 친구는 본인이 직접 면담을 요청했다.
전날 야간 교육훈련이 잡혀있는 탓에 생활지도 기록부만 보고 특이사항이 없어 신병 면담을 당일 하지 않고 다음 날로 미뤘다.(부대 원칙상 전입 1주일 이내에 시행하면 되는 일이었다) 다음날 오전에 상급부대에서 즉각 대기 임무수행 점검을 했는데, 난 원래 상황실에서 포대 전체를 통제하는 역할이었고 동현이는 신병이라 임무수행이 제한되어 상황실에서 대기시켰다. 점검이 끝나고 상황이 해지되자 뒤에서 쭈뼛쭈뼛 서 있던 동현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 혹시 포대장님이십니까?"
솔직히 좀 황당한 질문이었다.
면담을 진행 안 했다고 하지만 포대에 대위 계급은 나 하나뿐이고 보통 신병이라도 계급장을 보고 내가 포대장이라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이 신병은 확신이 없었는지 아니면 말 거는 것이 서툴렀는지 사실 여부를 물었다. 옆에 있는 선임들도 그 질문이 황당하였는지 내 눈치를 봤지만 이제 온 신병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동현이는 면담을 하고 싶다고 했고 상황 종료 이후 아직 정리를 해야 하는 것이 많았기에 데리고 올라가서 면담하긴 무리가 있어 아무도 없는 상황실 뒤편으로 데리고 갔다.
동현이가 일단 먼저 꺼낸 말은 본인이 손으로 하는 것은 대부분 못 한다고 했다.
일빈적인 성인이 손으로 하는 것을 얼마나 못 하나 싶었는데 이 친구는 전투화 끝조차 제대로 못 묶어서 훈련소에 있을 때 동기들이 도와줬다고 한다. 입고 있는 전투 조끼도 혼자 못 입어서 도움을 받았으며, 본인이 부족한 것을 알기에 주변 사람에게 피해 주는 것을 굉장히 우려했고 그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병역 기피 목적으로 꾀병을 부리는 애들을 많이 봐왔고 갈수록 지능화되어 가고 있긴 하지만 한 부대의 지휘관으로서 꾀병이라 할지라도 이를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동현이의 말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지만 기피 목적이 있다는 생각은 일단 배제하고 어떠한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봤다.
하지만 본인도 원하는 바를 몰랐다. 대화를 하면서 최대한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이끌어가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고 지휘관으로서 할 수 있는 조치는 임무수행이 제한되니 현역 복무 부적합 처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고 이를 위해서는 부대 생활을 어느 정도 지켜봐야 한다. 일단 당장의 말만 듣고 판단할 사항은 아니라서 적응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직접 보고 판단해야 했다.
동현이에겐 솔직하게 현역 복무 부적합 처리절차에 대해 설명을 해줬고 행정적인 절차가 필요하기에 시간이 좀 소요되니 우선 전투임무는 배제하고 행정실에서 잡일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아침에 행정실 및 생활구역을 청소하고 잔심부름을 도와주는 정도였는데 고민을 하더니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동현이의 눈빛은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정리가 끝나고 사무실로 올라가 혹시 어제 생지부(생활지도 기록부)에서 놓친 부분은 없는지 다시 보았으나 특이사항은 없었다. 생지부 상에는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와 회사원인 아버지 밑에서 평범하게 자란 것처럼 보였다. 일단 부모님께 이 일에 관련해서 전화를 드렸고 부모님도 동현이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기에 대화를 통해 해결점을 잘 찾아보자고 하였다.
그날 오후부터 행정실에서 대기하면서 청소 및 잡일을 지시했고 중간중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청소 외에 행정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동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불안감을 느꼈다. 남들은 다 일하는데 혼자 행정실에 앉아 있는 것이 너무 눈치 보인다고 했다. 본인의 동의하에 간부들과 행정반 선임들에게 어느 정도 인지를 줘서 눈치 주는 이는 없었지만 그래도 본인은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이 친구에게 맞는 일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다른 일도 많은 간부들이 계속 붙어서 일을 시킬 수만도 없었다.
그래서 좀 억지스러운 면도 있지만 청소라는 행동에 의미를 부여했다. 청소를 대신해주는 것만으로도 전우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격려해주었고 동현이도 수긍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전입 4일째 되는 금요일 아침.
동현이는 나를 찾아왔고 아무래도 행정반에 있는 것이 너무 눈치가 보인다고 어차피 언젠가는 할 건데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다며 포수 임무를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걱정이 조금 되지만 현재 부대 내에도 사회에서는 신발 끈도 잘 못 묶는 친구였지만 지금은 잘 적응하고 있는 사례가 있어 겪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승낙했다.
하지만 그 날 점심
식사 후 대대장실에서 포대장들 및 참모들이 대대장님과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우리 행정보급관이 문을 두드리며 노크를 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얘기를 들어보니 김동현 이병이 창문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는 것을 다른 용사들이 붙잡았다고 한다.
군대에 적응할 마음이 생겼나 싶어 일단 체험 삼아해 보라고 했는데 본인에게는 그게 너무 어려웠는지 자살생각까지 한 것이다.
일단 조치가 우선이라 대대장님은 상급부대에 보고하고 난 올라가서 면담을 했다. 포대장실에 가니 전포대장이랑 같이 앉아 있는데 아직 진정이 안 됐는지 숨이 거칠어 보였다.
무슨 일이냐 물어도 대답을 잘 못 했다. 대화를 거듭한 끝에 짐작한 바대로 포수 일과가 본인한테 너무 어려운데 그렇다고 행정반에 있는 건 너무 눈치 보이니 앞으로의 군생활이 막막해서 그랬다고 했다. 상담도중 행보관이 어머니한테 전화를 드렸는지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잔뜩 격양된 어조로 무슨 일이냐고 어찌 된 일이냐고 물어 아침에 있던 일부터 설명을 드리니 오늘 조퇴를 하고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동현이를 바꿔달라고 해서 바꿔줬다. 동현이는 어머니와 잠시 조용조용 얘기를 하더니 다시 나한테 전화를 건네주고 오늘 언제쯤 갈지는 다시 전화해주겠다고 말하곤 끊었다.
그리고 잠시 후 대대장님한테 전화가 와서 동현이와 면담을 해보겠다고 대대장실로 보내라고 했다. 행정반에서 대기하고 있는 간부에게 동현이를 대대장실로 데리고 가라고 했고 그동안 사무실에서 필요한 면담 기록 및 서류를 준비하려는데 어머니한테 다시 전화가 왔다.
조용조용 통화했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오열을 하며 따졌다.
"왜 우리 아들 빨리 병원 진료 안 보냈어요? 부대에서 왜 그렇게 관리를 하는 거예요??"
분명 동현이가 전입 후부터 4일 동안 있었던 일을 충분히 설명드렸다고 생각했으나 전후 사정 따지지도 않고 밑도 끝도 없이 부대의 잘못으로 몰아가니 황당하고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여기서 싸워봤자 될 것이 없으니 일단 어머니를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감정이 격해졌는지 대화가 되지 않았다.
"빨리 병원 보내세요! 지금 긴급상황인데 절차 같은 거 없이 가까운 병원으로 보내고 거기로 갈 테니 그리 아세요!"
앞뒤 안 가리고 자기가 할 말만 쏟아내니 덩달아 언성이 높아졌다.
"어머니 그렇게 감정적으로 하시면 동현이만 더 힘들어집니다. 빨리 감정을 추스르고 오셔서 대화를 하자고 하셔야죠."
그렇게 두세 번 실랑이를 하다가 어머니는 잠시 잠잠해지더니 동현이를 바꿔달라고 했다. 지금 대대장님이랑 면담 중이라고 끝나고 전화드리겠다고 하니 일단 알았다며 끊었다.
동현이와 대대장님 면담이 끝나고 대대장님에게 어머니 오시는 거와 주말 동안 병원 입원을 건의했다. 대대장님은 병영 전문상담관이랑 면담 후에 판단하고 되도록이면 부대에서 간부가 밀착 관리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대화가 끝날 무렵 대대장님께 전화가 와서 나가려는데 눈치를 보니 동현이 어머니 같았다. 표정을 보니 그리 좋은 대화가 오고 가는 것 같지 않았다. 아마 아까 나한테 했듯이 안게 아닐까 하는 염려가 돼서 일단 전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통화 후 대대장님은 굳은 표정으로 어머니가 부대에서 어떻게 관리했냐는 소리를 했다며 불쾌해하셨다.
사실 부모 마음에서 우리 아이가 부대에서 잘 못 될 뻔했다고 하니 흥분하는 건 이해하지만 뭐만 하면 부대 탓으로 돌릴 때마다 정말 사기가 꺾인다.
부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를 안 한 것도 아니다. 상식적으로 손을 잘 못 쓴다고 병원에 입원시키는 경우는 없다. 또한 자살시도로 인해 심리가 불안하긴 했지만 어떠한 외상이 없었다. 이렇게 심리가 불안한 상태에선 여러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병원보다 1:1 마크가 가능한 부대에 있는 게 훨씬 안전했다.
게다가 자대에서 생활한 지 4일 정도밖에 안 된 친구가 내부 부조리 때문도 아닌데 자실시도를 한 것도 아닌데 순전히 부대 탓으로만 몰고 간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갔다. 오히려 자살을 막을 수 있던 것도 본인에게 동의를 구하고 다른 병사들에게 상태를 설명해줬기에 창가에 서 있는 동현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말릴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군대에서 뭔가 있었다고 하면 일단 부대 탓을 한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니 혹시나 이따 만나서 언성 높이는 상황까지 갈까 봐 우려스러웠다.
동현이의 부모님은 군대에 높은 분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잘 해결될 거라 믿으셨는지 타 부대 부사단장에게 전화가 와서 동현이에 대해 물었다. 군대에는 엄연한 지휘체계라는 것이 있어 지휘권이 없는 부대의 일에 대해 관여할 수 없다. 아무리 높은 분이라도 직속이 아닌 이상 압박을 넣을 수도 없고, 다만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떤 조치가 취해지는지 확인하는 게 전부다. 그것은 전화를 한 본인도 잘 알고 있지만 아는 사람한테 부탁을 받으니 일단 전화를 한 모양인데 자초지종을 잘 설명하니 알았다고만 하고 끊었다.
부모님 오시기 전 행정보급관이 동현이의 학교생활지도 기록부를 발급받으러 가면서 동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보아하니 이미 입대 전부터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다.
동현이는 내성적이고 소심하다 보니 학교 교육과정에서 손으로 하는 실습할 때 다른 아이들한테 많은 상처를 받아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친한 친구도 없었으며 입대 전에 사는 게 무의미하다고 자살생각도 했다고 한다. 또한 게임을 좋아하는데 부모님이 노트북을 안 사줘서 자살한다고 협박하고 몰래 계좌 이체해서 노트북을 구입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저녁 늦게 부모님이 도착하였다.
부모님과 대대장님, 나, 행보관, 전문상담관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다행히 분위기는 침착해서 언성을 높일 일은 없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동현이의 성장환경을 들었다. 동현이는 유아기 때 1년 정도만 어머니가 휴직을 하여 돌보았고 그 후에는 유모 밑에서 자랐다. 그리고 4살 때부터는 어린이집에 들어가고 그 후 유치원 등을 거치는 등 주로 가정보다는 교육기관에서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유아기 때 보인 이상행동 같은 것을 정확히 감지하지 못했고 중학교 때 신발 끈을 제대로 못 묶는 것을 알았지만 딱히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병원 치료 같은 것을 생각도 안 했다고 한다.
학교생활지도 기록부도 그냥 조용히 있으니 선생님들도 이상하다는 것을 전혀 못 느꼈는지 특이사항을 기록한 것이 없었다. 동현이가 대인기피증이 있고 친한 친구도 없었지만 동현이가 같이 쇼핑도 잘 다니고 놀러도 잘 다녀서 친구가 몇 명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또한 이대 전 자살생각을 한 것도 말을 안 해서 몰랐으며 노트북 사건도 애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혼은 냈지만 크게 신경을 안 쓰고 단지 손으로 하는 행동만 더딜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신체검사를 하러 갈 때도 신체검사에서 뭘 하는지 모르고 1급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만 했다.
처음에는 '입대 전에는 전혀 그럴 애가 아니었다'라고 말하다가도 자신들이 몰랐던 사실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오니까 더 이상 그런 말은 못 했고, 앞으로 치료받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동현이는 월요일에 힐링캠프(군대 내에서 복무 부적응하는 인원들을 모아서 심리치료 등을 하는 곳)에 입소하고 그 기간 동안 병원 치료도 받으면서 현역 복무 부적합에 필요한 절차를 밟아가겠다고 안내를 하고 오늘은 늦었으니 면회는 내일 하기로 하고 돌려보냈다.
다음날 면회를 마치고 주말 동안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포대장실에서 동현이와 함께 지냈다. 동현이는 나쁜 생각을 한 것을 반성했고 본인으로 인해 부모님이나 다른 간부들이 고생하는 것에 대해 걱정을 했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 같아서 본인이 그렇게 느꼈다면 다시는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주말이 가고 월요일이 돼서 동현이를 힐링캠프로 보냈고 그 후로 현역 복무 부적합처리가 되어 다시 볼일 없이 전역했다. 군생활 중 내 직속 부하가 자살시도를 한 것은 처음이었기도 하지만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드는 사건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부모님도 '진짜 나'에 대해 잘 모른다.
친구들과 있을 때 나와 집에서의 나, 그리고 부대에서의 나는 엄연히 다른 존재다. 주변 상황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사람의 모습은 변할 수밖에 없고 자기 자식일지라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본인의 바람이자 착각일 수 있다.
전역을 하기 전, 전역을 반대하는 부모님께 사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글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 부모님은 그런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예전에는 글을 쓰는 사람은 먹고살기 힘들다는 인식이 있어 내가 봐왔던 부모님은 당연히 만류할 것이라 생각하고 말을 안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런 나를 응원해줬고 전역 후에 대해 걱정은 하지만 내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다고 했다.
나 역시 진짜 부모님의 모습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 후 시간이 많이 지났고 동현이가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지만 부디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