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틴 Jul 19. 2021

병영 부조리를 봐줄 수 없는 이유

작년 이맘때쯤 함께 근무했던 부대원에게 전화가 왔었다.

오랜만에 생각나서 전화했다며 부대원들 몇 명과 같이 얼굴 한 번 보자고 하였다. 전역을 하고도 이렇게 전화 준 게 고마워 뭐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에 날짜를 잡고 술자리에 나갔다. 오랜만에 만나 군 시절을 추억하며 술을 기울이는 것만으로 그래도 군생활을 헛하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대화가 오고 가면서 그때는 차마 못했던 말들을 하다 보니 알지 못했던 일들이 참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병사와 간부의 입장의 차이가 있다 보니 서로 이해가 가지 않았던 일들이 있었다. 

그중 한 가지를 꼽자면 그 시절 있었던 병영 부조리에 관한 것이었다.  


"포대장님, 그때 왜 연준(가명) 이를 영창에 보내셨습니까? 연준이 정도면 포대장님이 봐줄 수도 있었잖아요."


연준이라는 친구는 나름 열심히 군생활했었는데 한순간 욱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후임을 한 대 때렸다가 영창을 갔었다. 그때는 그 친구를 영창에 보내는 것이 당연한 결정이라 생각했는데 이 친구들이 당시에 말은 못 했지만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사건의 전말

그 당시 연준이는 분대장이었다. 조금 부족해도 일·이 병 생활을 열심히 했고 다른 전우들과의 사이도 좋았다. 그래서 상병이 되고 나서 분대장을 직책을 달게 됐다. 하지만 연준이는 분대장을 하면서 몹시 힘들어했다. 바로 밑에 있는 후임들 때문이다. 

후임이 2명이 있었는데 둘 다 실수가 잦고 혼내도 그때뿐이고 바뀌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몹시 힘들어했다. 그래서 참다못해 내게 와서 하소연을 한 적도 있었다. 

나 역시 그 후임들이 평소 실수하는 모습들을 봐왔기에 직접 혼내기도 하고 주특기 훈련한 것을 검사하고 부족하면 징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지만 하는 척은 하는데 큰 발전이 없었지만 직접 관리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어서 어떻게 할까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결국 일이 터져버렸다. 

연준이가 후임 중 한 명인 진수(가명)를 때렸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격 준비(포대는 즉각적인 포탄 사격을 할 수 있도록 매일 사격 준비를 해놓는다)를 하러 갔는데 그 후임이 자신이 할 일을 안 하고 오길래 뭐라 했는데 후임이 불손한 태도를 보여 가슴팍을 한대 쳤다는 것이다. 거기서 추가적인 가해가 없었고 세게 때린 것이 아니라 상처는 없었지만 폭행은 폭행이기에 이 사건으로 인해 연준이는 징계를 받고 다른 포대로 전출을 가게 됐다. 


여기서 다른 부대원들의 시각으로 봤을 때 평소 연준이는 평소 열심히 하는 친구였고 진수는 평소 태도도 별로 안 좋고 지 할 일도 안 해놓고 선임한테 무례하게 군 사람이었다. 



병영 부조리를 봐줄 수 없는 이유

이 둘의 평소 모습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연준이의 편을 드는 부대원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폭행이 들어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물론 연준이가 그리 세게 때린 것도 아니고 진수도 잘한 게 없기 때문에 지휘관의 의지에 따라 징계까지 안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사유를 막론하고 병영 부조리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이유가 크게 3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공정성이다. 여기서 경고 정도로 그쳐도 연준이는 이미 한번 데었고 다음엔 가중처벌이 되기 때문에 두 번 다시 누구를 때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칫하면 분대장이 분대원을 한 대 정도 때려도 분대장의 평소 행실이 괜찮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로 인식을 줄 수 있다. 만약 다른 부대원들 사이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잘못된 판례로 남아 해당 인원을 처벌하는데 지장을 줄 수 있다. 여기서 평소 열심히 했다는 것은 근거가 불명확할뿐더러 어느 정도 참작요소는 되나 면죄부가 되지는 않기 때문에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을 때 누구는 처벌하고 누구는 봐줄 수는 없다. 

 

두 번째는 병영 부조리에 대한 침묵이다. 병영 부조리는 보통 피해자가 말하지 않는 이상 밝혀지기 힘들다. 주변에서 대신 말을 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되면 본인에게도 피해가 가기 때문에 대부분 피해자가 직접 고발한다. 하지만 병영 부조리가 적발돼도 징계를 받지도 않고 가해자가 전출을 가지 않는 사례가 있으면 피해자는 더더욱 말하기 힘들어진다. 특히나 가해자가 포대 내의 인지도가 높을 경우나 간부들한테 신뢰받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병영 부조리는 누구든 어떠한 경우에도 처벌을 받는다는 인식을 줘야 병영 부조리를 최소화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직무유기다. 군대에는 엄연히 규정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규정이 너무 많아 모든 것이 규정대로 진행되지는 않고 모든 것을 규정할 수도 없지만 규정이 있고 없고는 큰 차이가 있다. 병영 부조리 조차 규정대로 처리하지 않으면서 부대원들에게 규정을 따르라고 한다면 누가 따르겠는가. 이는 지휘관이 기준과 원칙도 없이 기분대로 부대를 운영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또한 규정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것은 규정을 어긴 것과 같으며 이는 지휘관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나중에 상급부대에서 감사가 나왔을 때 문제를 삼는다면 지휘관이 징계를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러한 이유에서 연준이의 징계는 불가피했다. 군생활을 하면서 귀 아프게 들었던 말이 있다. 


"100-1이 99가 아닌 0이 될 수 있다."


가해자가 평소에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피해자가 고문관이든 구타유발자이든 상관없다. 

폭력을 행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고 어떤 사유가 됐던 정당화될 수 없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중 하정우가 후임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손바닥을 때리는 장면. 군필자들 사이에서 하정우가 좋은 선임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 또한 병영 부조리에 해당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창을 갔다오면 어떻게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