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노블, 이수연 <어쩌다 보니 가구를 팝니다>
고성 여행 중 숙소에서 <어쩌다 보니 가구를 팝니다>를 잠깐 펼쳤는데 이내 몰입해 끝까지 보았다. 그래픽노블, 문학에 일천해 조심스럽지만, <세일즈맨의 죽음>(아서 밀러)의 문제의식을 현대 한국 배경의 그래픽노블로 새롭게 표현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작과 중간중간 꿈속 장면을 넣어 긴장감을 주는 스토리가 참 탄탄하고 섬세하다고 느꼈는데 무엇보다, 표지에서부터 단박에 느낄 수 있듯이, 색과 붓질로 사람들의 복잡한 마음과 공간의 분위기를 이토록 잘 표현하는지 참 놀랍다. 책에 텍스트가 없어도 일러스트만으로 메시지가 직관적으로 전달될 것 같다.
주인공 곰 사원은 실적으로 모든 것이 좌우되는 회사의 가구 방문 판매원인데 <허먼과 로지>(거스 고든)의 전화 판매원 허먼처럼 상품 판매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곧 실적을 위해 집집을 방문하고 의도하지 않게 사람들의 마음과 일상을 돌아본다. 영업 사원은 ‘손님이 아니기 때문’에 집이 평소대로 노출된다. 독박육아로 지치고 외로운 쥐 고객, 남편과 사별 후 혼자 고독하게 사는 돼지 고객을 비롯해 이들은 곰 사원에게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곰 사원은 적극적인 판매 행위보다 그들의 마음을 들어주다 무실적자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데, 상사와 동료 직원과의 관계, 고객과의 만남, 그리고 집에 관해 반복해서 꾸는 꿈을 통해 자신을 잃어가기도 또 새롭게 자신을 찾아가기도 한다.
책장을 덮고, 오랫동안 은행원으로 근무해 온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과로로 입원한 동료를 병문안했는데 그녀가 백발이어서 깜짝 놀랐다는 얘기. 그간 염색으로 감추었으나 머리가 다 희도록 영혼을 갈아 넣어 일하다 결국 건강을 잃었다는 일화였다. 그 사람에게도 ‘존버가 승리한다’ ‘회사 밖은 더 큰 지옥’이라는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삶이란 것 자체가 ‘모두에게 처음’이어서 혼란스럽지만, 자식이 죽어 인터넷을 해지하려는 사람에게까지 상품을 권하라고, 고3학생에게 강요하는 사회(영화 <다음 소희>)이기에 삶은 더욱 고통스럽다.
모든 사람은 어쩌다 보니 지구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극소수를 제외하곤 대다수가 어쩌다 보니 현실에 맞춘 직업을 선택해 밥벌이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럼에도 ‘인생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더라도’ 두려워 말고 ‘어떤 선택을 하든지... 새로운 의미를 또 찾아낼’ 거라고 이 책은 말한다. 우리의 생이 상자에 갇힌 벼룩 신세지만 머리를 한번 쾅 박을지라도 한번 뛰어보라고.
아직 4월이지만 <어쩌다 보니 가구를 팝니다>를 나의 올해의 책으로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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