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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구 Mar 05. 2024

감정 계좌로 진심을 입금해주세요

당해 본 사람만이 아는 침묵의 고통

인간은 누군가 자신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순간이 오길 간절히 기다린다. 하지만 상대가 내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확신할 수 없다. 특히 그 상대가 나를 아프게 만든 사람이라면,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으로 인해 고통의 골은 두 배로 깊어진다.




2023년 12월 마지막 주 목요일 새벽 6시, 학과 후배로부터 한 통의 보이스톡이 왔다. 졸업하고 한 번도 연락한 적 없어서 반갑기는커녕 오히려 불안했다. 알림을 보니 돈을 빌려달라는 얘기였다. 자기 형이 안좋은 일에 휘말려 급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단칼에 거절하려 했다. ‘지인에게는 돈 빌려주는 거 아니다’라는 격언이 뇌 깊숙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에게 부탁한 액수가 크지 않아서, 문제를 해결해줄 수만 있다면 속는 셈 치고 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요구하는 금액이 점점 늘어났다. 다른 지인에게 돈을 빌려보려 했으나 거절을 당해 내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13시 30분까지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형이 감옥에 갈 수 있다며 애걸복걸했다.


후배의 사정이 딱하지만, 냉정을 되찾으려 했다. 지인이기에 더더욱 못 빌려주겠다고 말하고 연락을 끊으려 했다. 그러나 후배는 ‘형, 제발요… ’를 반복하면서, 스마트폰 너머에 있는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훌쩍였다. 악어의 눈물에 속지 말라고 명령하는 이성과, 파탄 직전의 가정을 도와줘야 한다는 감정이 치열하게 싸웠다.


그 결과는 감정의 승리였다. 후배가 처음에 요구한 금액의 10배를 계좌로 보냈다. 월급을 받아서 일주일 내로 돈을 갚겠다는 후배의 말에 “너 말에 꼭 책임지길 바란다.”라고 답했다.


돈을 빌려준 지 일주일이 지나고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형 덕분에 일이 잘 해결되었어요. 일주일 후에 직장에서 월급을 받고 나서 형에게 먼저 보내드릴게요.” 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이것은 속이려는 자와 속지 않으려는 자 사이 전쟁의 서막이었다.


사진: Unsplash의 Growtika


후배가 월급을 받을 때가 되었는데, 회사에서 월급을 자꾸 늦게 준다며 상환일을 계속 미뤘다. 대표가 집안 사정으로 인해 급여 처리를 늦게 해준다는 둥, 후배가 다니는 회사 사정을 이해해줘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한두 번이면 이해하겠는데 세 번이나 약속을 어기자, 후배가 월급을 이미 받았으나 다른 곳에 쓴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처음보다 카톡 답장 주기가 늦어지고, 도리어 내 독촉 전화를 회피하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숨겨둔 카드패를 꺼냈다. 회사 대표님 연락처를 보내든가, 대표님과 연락한 기록을 캡처해서 보내달라고 후배에게 부탁, 아니 명령했다.


설마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후배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월급을 받았지만 집에 급한 일이 있어 거짓말을 했다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후배에 대한 옛 정과 신뢰를 잃어버리는 순간이었다. 법원에 지급 명령(합법적 독촉)을 신청하거나, 최악의 상황에는 사기죄로 고소하고 싶었다.


사진: Unsplash의 Growtika


어떤 경우에도 법적 절차는 밟고 싶지 않았다. 일단 소송을 걸면 불리한 건 나다. 후배를 믿은 나머지 차용증 하나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급 명령을 위해 필요한 채무자의 주소조차 물어보지 않았다. 내게 있는 거라곤 후배와 주고 받은 메시지뿐이었다. 이걸로는 소송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보다는 혹여나 소송에서 이긴다 해도 후배가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지 않을 거 같았다. 이미 내게서 신뢰를 잃어버린 후배에게 바라는 것은 '진심 어린' 사과였다. 빌려준 돈을 늦게 받음으로써 나 또는 공동체가 겪게 될 피해를 상상해보길 바랐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었다. 후배는 약속한 날짜에 돈을 못 갚으면 죄송하다고 말했으나 진정성이 1도 없어보였다. 그 대신, 대출 신청을 했는데 추가 서류 심사로 인해 대출이 안 나왔다느니, 부모님 지인분 적금을 깨서 대신 갚겠다느니, 예정된 날짜에 돈을 못 갚을 때마다 변명거리가 자꾸만 늘었다. 더이상 독촉하는 건 감정 낭비이자 시간 낭비였다.


게다가 후배는 돈을 갚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금 당장 돈을 못 갚겠다고 솔직하게 말하거나, 한번에 갚지 말고 조금씩 나누거나, 아니면 단기알바를 해서라도 갚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상환이 늦어도 이해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는 그 어느 것조차 실행하지 않았다.

사진: Unsplash의 Elisa Ventur


결국 돈을 빌려준 지 두 달이 지난 지금, 독촉을 포기했다. 대신에 후배가 상환일을 미룰 때마다 ’알겠어~‘라고 무심하게 답장을 보냈다. 후배의 무책임한 태도에 더이상 일희일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에게 돈을 늦게 돌려줌으로써 내가 겪는 불이익, 예를 들어 허리띠를 졸라 매며 생활비를 써야 한다거나, 아니면 독촉을 하느라, 법적 절차를 고려하느라 감정과 시간을 써야 하는 등의 상황을 이해해주길 바랐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는 “혹시 돌려주기로 한 돈 어떻게 됐어?”이다. 그러나 여전히 함흥차사다. 결국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 후배에게 배신당함으로써 발생한 정신적 고통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후배의 답장을 그만 기다리기로 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후배가 가슴 깊이 속죄하길 내심 바란다. 우리 사이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감정의 계좌로 '진정성 있는 사과 한 마디'를 보내주길 기다리겠다.



사진: Unsplash의 Hitesh Choudh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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