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브런치 팝업 스토어
브런치에 내 이야기를 꾸준히 적어 나가는 동력을 얻는 방법 중 하나는 다른 브런치 작가를 벤치마킹 하는 것이다. 10월 초에 성수동에서 열린 브런치 팝업 스토어는 자신의 이야기로 독자를 끌어들인 '롤 모델'을 찾게 해줌으로써, 한동안 잠들어 있던 글쓰기 발행 버튼을 누르게 했다.
그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했던 건,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의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경험 수준을 넘어 저명한 학자들에 의해 '검증된' 진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욕심이 앞섰다. 심리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책을 읽고 요약하면서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쳐 완성도 높은 글을 작성하여 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완벽한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은 커져 갔다. 예를 들어 '양자역학의 발전 과정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에세이를 쓴다고 가정하자. 적어도 양자의 개념을 이해하고, 양자역학을 대표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야 설득력 있는 글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해당 주제에 대해 어느 정도 학습이 이루어졌더라도 얕은 지식으로 독자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글 한 편을 다 쓰더라도 다음 번에는 적어도 이만큼은 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글쓰기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내키지 않은 데다, 학문적인 글을 계속해서 쓰는 게 시간적으로나 에너지적으로 부담스러우며, 지적 허영심을 내비치는 거 같아 불편한 감정도 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글을 다시 쓸 용기를 얻고자 브런치 팝업 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팝업을 둘러보고 나서 다시 내 이야기를 써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인생은 방탈출>이라는 제목의 책을 보고 나서였다. 방탈출 게임을 좋아하는 저자가 방탈출을 통해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를 풀어 나가는 실마리를 찾았다는 내용의 에세이이다. 해당 주제로 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덕질(하나의 취미에 꽂히는 현상)'을 구구절절 늘어 놓으면 인생의 지혜가 담긴 두루마리가 된다.
책을 자세히 읽어 보진 않았지만, 작가의 고유한 정체성을 만드는 데 방탈출이라는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만의 고유한 경험, 특히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들을 '씨실과 날실'처럼 스토리로 엮으면 '나'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겠다는 영감을 얻었다. 작가의 의도와 별개로 나에게 필요한 답을 스스로 찾은 것이다.
방탈출 같이 독특한 소재가 아니더라도, 브런치에 꾸준히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해서 커리어를 만들어 간 선배 작가들로부터 나의 브런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퇴사, 독립 등 나와 비슷한 문제 상황을 겪었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 '레퍼런스'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것이 모두에게 통용되는 정답이 아닐지라도, 막막함을 덜어내고 일단 뭐라도 시작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마치 피피티를 만들 때 템플릿이 있어야 작업을 시작하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것과 같다. 브런치에서 펼쳐지는 작가의 스토리는 독자가 자신에게 맞는 방향을 탐색하고 자신의 것으로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템플릿과도 같다.
얼마나 자주 글을 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부담을 내려놓고 내가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들을 위주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