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러 갔다.아침에 일어나자, 쌓이는 눈이 보였다. 미리 예매를 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을 날씨에 언 길을 조심스레 걸어 공연장을 찾는다.
한 해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더라도, 연말이 되면 누구나 마음을 풀고, 감상적인 기분에 빠지게 마련이다.
유명한 배우의 죽음등 흉흉한 분위기에서 빅토르 위고의 원작인 이 작품은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폭력적인 사회, 약자에게만 비정상적으로 엄격한 사이코패스 공권력, 돈이라면 양심과 가족도 버리고 범죄까지 도모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비교적 현실적으로 표현된 것 같다.
주인공 장발장은 빵을 훔쳤다는 이유로 십 구 년을 구형받고, 사회에 복수심을 키우다, 하룻밤 재워주고, 음식을 준 성당에서 물품을 훔치고 나오려다, 잡히는데 값나가는 은촛대를 주며, 친구에게 준 선물이라 감싸 준 신부에게 감화되어, 신분을 숨기고, 열심히 일해 성공한 사업가가 된다. 그 이후는 잘 알려진 대로 신분을 숨긴 장발장을 쫓는 자비에르, 장발장이 운영하던 공장 노동자로 해고되어 거리의 여자가 죽어 남긴 딸 코제트를 극진히 키워내고, 코제트와 사랑에 빠진 마리우스를 혁명 현장에서 구해내기도 한다. 극 중에서 묘사하는 장발장은 대단한 능력가에 사랑의 구현자. 한마디로 성인영웅이다. 자신을 극도로 집요하게 쫓던 자비에르를 구출하기도 하고(자비에르는 직업적 윤리에 회의를 품고 자살한다.) 코제트에게 부성을 표현하고, 코제트를 사랑하는 마리우스를 목숨을 걸고 구해주기도 한다.
장발장의 죄책감이나. 자비에르의 회의가 나이브하게까지 느껴진 건 내가 사는 사회가 너무 척박하기 때문일까.
이제 사회는 선하게 열심히 사는 자를 비웃고, 죄책감을 느끼끼는커녕 범죄를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면상을 들이밀고 다니는 자들이 성공하는 사이코패스 전성시대이며, 직업적 윤리로 범인을 집요하게 쫓는 경찰은 드라마에서나 존재하기에.
아프자마자 장발장은 요양원으로 보내버리지 않을지
빅토르 위고가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보면 기겁을 했을지도.
빙판 길에 폭설에도 많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공연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낮 시간이 짧아져 날이 금방 저문 느낌이다.
지난하고, 분주하고, 공권력의 폭력에 시달린 나에게 레미제라블의 힘없는 민중이 낮설게 느껴지지 않았다.부조리한 한 해 고생한 나에게 주는 뮤지컬 관람 마무리는 따뜻한 녹차 한 잔.
어쩌다 난 이런 어른이 된 걸까?창 밖으로 쌓이는 하얀 눈을 보며, 쌓여가는 나이에 현타를 느낀다. 다이어리를 사야겠다. 내년을 설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