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지인 jiin mia heo Mar 23. 2022

자 절하고

 “자 절하고”


 한결 같은 큰아빠의 목소리에 절을 한 번. 다른 사람들이 일어서는 소리가 들릴 즈음에 후다닥 일어선다. 잠시 제사상을 바라보다가 다시 또 절을 한 번. 아직도 일어나기 적당한 타이밍을 찾기가 어려워 귀를 쫑긋 세운다. 그 시절 큰집의 안방에는 머리가 하얗게 새지 않은 우리 아빠, 항상 대학생일 것만 같았던 사촌오빠, 여전히 애기 같지만 정말 애기였던 사촌동생, 사실은 제사가 미치도록 지루했던 어린 나, 그리고 내 기억 속에 항상 같은 얼굴을 하고 계시는 큰아빠가 있다.


 제사상 위의 사진으로밖에 만나뵙지 못 한 할머니, 새벽의 전화는 좋은 소식이 아니란 걸 알게 해준 할아버지, 이제는 언제 돌아가셨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 외할아버지, 수업이 끝나면 병원에 가 찾아 뵈었던 외할머니, 갑작스럽게 떠나신 외삼촌까지. 어려서부터 숱하게 접한 가족들의 장례식에 나는 내 또래들보단 죽음에 대해 초연하다고 자만했다. 하지만 큰아빠의 영정 사진 앞에 서니 그 자만심이란 얼마나 알량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인지 깨닫는다. 큰아빠의 절하자는 소리에 제사상을 향해 절을 몇 백 번은 했을 텐데, 그 오랜 시간 동안 언젠가는 큰아빠에게 절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못 했으니까. 손님들이 떠나간 후의 장례식장에서 가만히 큰아빠의 얼굴을 들여다 보니 그제서야 ‘편지를 드렸어야 했는데’하는 후회가 밀려 온다.


 옛날에 팔던 오렌지 쥬스 유리병에 보리차를 담아오고 싶었어요. 어릴 적엔 보리차가 싫어서 하얀 물을 달라고 땡깡 부렸던 거 같은데 지금은 일부러 보리차를 만들어서 마셔요. 큰집 선반에는 항상 안성탕면이 쌓여 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자 절하고’ 하셨던 목소리가 아직도 선한데 이제 제사를 안 드려서 들을 일이 없네요. 아직도 1년에 한 번 쯤은 큰집에서 먹는 짬뽕이 제일 맛있었단 이야기를 하는 거 같아요.

keywor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