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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 Mar 13. 2020

있거나 없거나!   많거나 적거나!

가족과 고국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

외국에 살면서 정말 외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1년이 다 돼가도록 외계어로 들리는 현지어와 여전히 유치원 아이처럼 떠듬떠듬 읽을 수밖에 없는 거리의 간판들은 언제 어디서나 내가 외국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하지만 현지 생활에 조금씩 스며들수록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없거나, 생각지도 않은 것들이 지나치게 많이 있는 것들 보게 될 때 '아 여기가 외국이구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태국 전체가 아니라 필자가 살고 있는 우돈타니에서의 실제 생활 경험을 기초로 쓴 글임을 밝혀둔다.)


혼자 살게 되니 아무래도 이것저것을 만들어 먹게 된다.

외국 음식이란 게 한 두 달은 호기심으로 먹을 수도 있지만, 날이 갈수록 우리 음식을 찾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 같다.   수십 년을 우리 음식을 먹고살았으니 당연하지.

그래서 혼자서 이것저것 만들다 보면 당연히 현지 시장을 가게 되는데, 다행히도 숙소 근처에 큰 시장이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장을 본다.   거기에는 우리 식재료와 맛에 큰 차이가 없는 배추, 무, 감자, 고추, 당근, 양파, 쪽파 등등이 있어서 정말 좋다.   (물론 돈만 있으면 순창고추장부터 고춧가루, 된장은 물론 우리 식자재를 언제나 구할 수 있기도 하다.   방콕에서 택배도 가능하다는...)   


요리 초보자라 인터넷을 보고 이런저런 반찬과 음식 만들기를 배우는데, 내가 자주 보는 '하루 한 끼'는 거의 모든 반찬과 음식에 대파가 들어간다.   하루 한 끼 요리사가 대파 농사를 짓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음식에 대파가 이렇게 많이 쓰이는 줄은 미처 몰랐다.   하지만 나름 이 동네에서 제일 크다는 태국 시장엘 가보면 정말 대파가 한 뿌리도 없다.   눈에 띄는 것은 모두 쪽파뿐이다.   태국 사람들이 그 맛있는 대파 맛을 모르나?


시장에서 대파를 못 찾다가 우연히 백화점 같은 곳의 지하에 있는 대형 마트에 가서야 간신히 대파를 찾았다.   

green onion이 아니라 기분 나쁘게 japanese leek라고 쓰여 있는데, 가격이 쪽파의 5~6배 정도나 한다.   


대파, 태국에는 아니 내가 사는 우돈타니엔 있기는 있지만 흔하지 않은 존재다.

오늘 저녁엔 어제 끓여 놓은 김치찌개에 대파를 좀 많이 썰어 넣고 한소끔 끓여서 상큼 달콤한 대파 맛을 즐겨보자.


태국에는 세웬 일레웬(줄여서 세웬)이 많다.   실제로는 세븐 일레븐이 많지만...

(태국 사람들은 영어의 V 발음을 W로 하기 때문에 seven은 세웬(sewen)으로 발음한다.   그럼 태국에서 제일 유명한 우리나라 아이돌은?   맞다!   '갓 세븐'이 아니고 '갓 세웬'이다.)


물론 아주 시골에는 세웬같은 편의점 대신 정말 시골스러운 구멍가게만 있지만, 태국의 웬만한 곳에는 온 천지에 세웬 일색이다.   태국엔 세웬 말고도 미니 빅씨, 패밀리마트, 테스코 로터스 익스프레스, 탑스 데일리 그리고 로손 108 같은 다양한 편의점들이 있긴 하지만 세웬 일레웬이 태국 편의점의 거의 8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어쩌다 먼 길을 가다가 주유소에 들리면 거의 모든 주유소 옆에 세웬이 있다.   세웬 옆에 주유소가 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인터넷을 보다 보면 세웬에서 꼭 사 먹어봐야 할 것, 세웬에서 살 만한 기념품, 세웬에서 추천하는 생활필수품 같은 글들이 많다.   다른 편의점 얘긴 사실상 거의 없고...


우돈타니를 포함해 태국엔 세븐 일레븐 아니 세웬 일레웬이 정말 많다.   정말 '갓 세웬 일레웬'이다!


태국엔 빨랫비누가 없다.

물론 세탁기용 가루세제나 액체세제가 있긴 하지만 정말로 고체로 된 육각형 빨랫비누는 없다.

우돈타니에 있는 대형마트 5군데를 다 돌아다녀보고 재래시장, 세웬, 동네 구멍가게까지 다 찾아봤지만 정말로 없다.   친한 태국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어디서 파는지 모른단다.   심지어는 그런 물건은 본 적이 없다고도 한다.


언제까지 계속할지는 모르지만 요즘 건강관리를 위해 매일 운동을 하기 때문에 빨랫비누가 꼭 필요하다.   땀에 절은 옷을 쌓아 두자니 냄새가 나고, 세탁기용 세제로 빨자니 거품도 잘 안 나고 뭔가 찝찝하다.   그렇다고 숙소 공용 세탁기를 매일 돌리자니 한 번에 20밧 씩이나 내야 하는 돈도 만만치 않다.


이리저리 찾다가 우리나라의 11번가 같은 태국 인터넷 쇼핑몰인 '라짜다'에서 고체 빨랫비누를 살 수는 있었지만 이게 일본 수입품이라 그런지 한 개에 5천 원이 넘었다.   이건 아니야!


태국엔 고체형 빨랫비누가 없다.   정말로 없는 것 같다.   아마 손빨래를 안 하는 문화가 정착된 것 같다.


태국엔 대파, 빨랫비누, 탁구장은 없거나 흔하지 않고 세웬 일레웬, 일본차, 개, 복권, 마사지 삽은 너무너무 많다.    너무 많거나 적거나 없는 것들은 언제나 이 곳이 외국임을 알려준다.   

대파를 듬~~~~~뿍 넣고 끓인 빠~~알~~~간 육개장이 있는 우리 동네 그 식당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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